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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5월 1일[음력 3월 26일]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에 있는 백산에서 개최한 동학 농민 혁명 출정식. 고부(古阜)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과 수탈을 계기로 고부에서 봉기한 민중은 무장(茂長)에서 전열을 정비한 뒤, 호남 각지에서 온 민중이 백산에 모여 혁명군으로서의 조직을 갖추었다. 또한 혁명의 대의를 밝힌 격문(檄文), 강령에 해당하는 사대 명의(四大名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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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피해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청동 소녀상.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부안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는 2019년 4월 13일에 부안군청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부안 군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모금을 시작한 지 131일 만에 주민 1,000여 명과 83개의 단체가 기부하여 8,000여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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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출신의 사족 기행현이 1866년부터 1911년까지 45년간 쓴 개인 일기. 기행현(奇幸鉉)의 본관은 행주, 자는 성첨(聖瞻), 호는 홍재(鴻齋)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출신의 사족(士族)으로, 기묘명현 기준(奇遵)의 형 기진(奇進)의 11세손이다. 기행현은 부안 입향조 기종와의 손자 기사운과 부안 김씨 김명황(金命璜)의 딸 사이에서 1843년 4월 20일에 태어났으며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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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30일과 4월 18일에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과 줄포면에서 일어난 부안 지역의 3·1 만세 운동.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이에 호응하여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도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3·1 만세 운동은 지역 천도교인들이 이웃한 정읍 등의 천도교계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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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 22일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일어난 좌익 세력의 24시간 총파업 투쟁. 1947년 3월 22일 전국에서 24시간 총파업 투쟁이 일어났다. 전라북도 부안에서도 총파업 투쟁이 일어났으나 부안 남로당의 확대 해석으로 총파업의 규모가 군민 항쟁 형태로 확대되었다. 3·22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후 남로당 간부들은 경찰에 쫓겨 대부분 피신했고, 영문도 모른 채 총파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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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된 제헌 국회 의원 선거의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 선거. 1945년 광복 이후 한국 문제 처리를 둘러싼 미국과 소련 간의 갈등이 결국 한국의 분단으로 귀결되면서, 1948년 유엔의 결의에 따라 5·10 총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5·10 총선거는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 남한 지역에서만 실시된 선거였고, 전체 의석 200석 중 4·3 항쟁이 진행 중이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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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제신(高濟臣)[1883~1943]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자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 1910년 초반부터 부안, 고부, 김제, 고창 등지를 주요 무대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거나 독립 자금 마련에 힘썼다. 특히 1919년 상하이 임시 정부가 수립되자 군자금 조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본관은 제주(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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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평(高平)[1886~?]은 1919년 중국 길림성 연길에서 광복단을 조직하여 간도 지방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의군부를 조직하고 중부의군부 참모장이 되어 일본군에 타격을 입히는 등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장흥(長興)으로 충렬공(忠烈公)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후예이다. 9대조 고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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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금융조합 건물. 금융조합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순종 1)에 서민들을 위한 금융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907년 「지방금융조합 규칙」과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관한 건」이 공포되면서 광주지방금융조합이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1910년(순종 4) 금융조합은 130개로 늘어났으며, 1945년에는 912개까지 있었다. 이후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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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금융 기관 건물. 금융조합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순종 1)에 공포된 은행 조례에 의하여 서민층에게 금융 지원을 시행하고자 설립되었다. 주요 업무는 대출과 예금, 정기 적금, 화물 보관업 등이었다. 이들 금융 기관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1907년 통감부에서 「지방금융조합 규칙」과 「지방금융조합 설립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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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창고 건물. 우리나라에서 도정 공장은 일제 강점기에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전국 곳곳에 도정 공장을 지었다. 전라북도와 부안 지역에는 구마 모토 농장[熊本農場], 척식 농장(拓植農場), 오오키 농장[多木農場], 바츠바밀 농장[松場密農場] 등이 다투어 들어와 백산 지역을 거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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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일어난 국민 보도 연맹 가입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 국민 보도 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9년 6월 4일 정부 주도로 좌익 전향자들로 구성하여 발족시킨 관변 단체이다. 발족 목적은 남아 있는 좌익 세력을 뿌리 뽑고, 좌익 사상을 갖지 않은 불만 세력들도 정부의 관리 체계 속에 편입하여 미연에 반정부화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결성 당시 가입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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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김경태(金京太)[1886~?]는 1909년(순종 3) 서응오의 의병대에 들어가 부안군 일대에서 무장 투쟁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경태는 부안군 우산내면 중계리[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출신 농민으로, 1907년(고종 44) 7월 한일 신협약[정미칠조약]이 체결되고 비밀 조항에 따라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대거 참여하던 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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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김낙선(金樂先)[1881~1925]은 고부와 태인, 정읍, 부안 등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의병이다. 1909년(순종 3) 3월에는 이용서(李用西) 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싸우다가 총상을 입었다. 같은 해 7월 이용서 의병부대의 선봉장으로 부하들을 지휘하여 싸우다가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고,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본관은 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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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김낙선(金洛先)[1884~1913]은 부안군 소산면 운곡리[현 부안군 주산면]에서 태어났다. 25세 때인 1909년(순종 3) 2월 서종채(徐鍾蔡)의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으며 4월부터는 국호남(鞠湖南)의 의병 부대로 옮겨 부안과 흥덕[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의 옛 고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4월 15일 김낙선은 국호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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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안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역사학자. 김노수(金魯洙)[1878~1956]의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는 광언(光彦), 호는 경암(敬庵)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갑중(金甲中)이다. 김노수는 1878년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으로 이사하였고, 만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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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김병선(金炳善)[?~1921]은 지금의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388번지에서 태어났다. 노적메[상서면 청림리]에 사는 진사(進士) 박필환(朴弼桓)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였는데, 박필환이 의병 운동에 뛰어들자 김병선 등의 제자들도 함께 의병 운동에 뛰어들었다. 김병선의 형 김병희(金炳喜)는 이 과정에서 사망하였으며, 호적에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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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안에서 활동한 한학자. 근대의 격변기에 살았던 김억술은 20대 초반에 계화도[현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로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수학하였으며, 1922년에 전우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우리 사문(斯文)이 장차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통곡했던 전우의 열렬한 마지막 문도(門徒)였다. 김억술(金億述)[1899~1959]의 본관은 부안(扶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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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옥남(金玉男)[1910~1934]은 지금의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에서 태어났다. 송림보통학교 4년을 마친 후 농업에 종사하였는데, 1920년대 부안 지역의 야학·농민·노동 운동의 영향을 받고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1928년 부안노동조합협의회에 참여하였으며, 1931년 백남철, 박병득(朴丙得), 박예동과 함께 사회주의 연구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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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김재선(金在善)[1879~?]은 부안 출신으로 1907년(고종 44) 이백겸(李白謙)의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무장, 전라남도 영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재선은 부안군 우산내면 중계리[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서 살면서 나무장수[신매상(薪賣商)]로 생계를 이었다. 김재선이 의병으로 활동한 시기는,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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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김철수(金錣洙)[1893~1986]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넘나들며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유학 중에는 반일 단체를 조직했고 국내에 들어와서는 사회혁명당을 조직했다. 조선공산당 책임 비서로 활동했으며, 임시 정부 개조파(改造派)의 일원으로 국민 대표 회의에 참가했다. 1930년부터 두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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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소설가. 김태종(金泰鍾)[1911~1952]은 부르주아(bourgeois)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사회주의 운동에 나선 인물이다. 사진을 찍고 소설을 썼던, 신문화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했다. 광복 후 민선 부안 읍장을 지냈고, 남조선 노동당[남로당(南勞黨)] 부안군당 책임도 맡았다. 1947년에 전라북도 부안에서 24시간 총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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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안 출신의 한학자. 김현술(金賢述)[1898~1971]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희숙(希叔), 호는 봉산(蓬山)이다.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죽계(竹溪) 김횡(金鈜)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김낙찬(金洛瓚)이다. 김현술은 1898년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하입석리에서 태어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세상을 떠난 후,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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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서 농민 조합을 조직하려다 발각·투옥된 사건. 당상리 농민 조합 운동은 일제 강점기인 1932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서 김한동(金漢童) 등이 혁명적 농민 조합을 조직하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른 사건이다. 3·1 운동 이후 농민들은 수탈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소작인 조합 등의 단체를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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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부안에서 봉건적 착취·수탈과 일본 등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일어난 민중의 자주적 사회 변혁 및 근대화 운동.· 동학 농민 혁명은 1893년 11월 전라도 고부(古阜)에서 결의한 ‘사발통문 거사 계획’에 이어, 이듬해 1월 10일의 고부 봉기와 3월 20일의 무장 기포를 거쳐, 3월 26일의 백산 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동학 농민군은 황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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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등용에서 소값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벌인 농민 투쟁. 1978년 ‘수입 자유화 기본 방침’이 확정되었고, 1980년대 들어서는 수입 개방 농정으로 350여 종의 농축산물이 국내에 수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육우 17만여 마리, 젖소 3만 5000마리, 소고기 2억 7000여만 근이 수입되어 소값이 폭락하였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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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에 있던 일제 강점기 병원 건물. 부안군청 앞은 일제 강점기에 본정통으로 불리던 곳이다. 이곳에는 부안금융조합이 있었고, 일본식 거리가 형성되었으며 후면에 무송병원(茂松病院)이 있었다. 현재는 개발되어 금융조합 건물만이 남아 있다. 무송병원은 부안군 부안읍 부안군청 옆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된 상태이다. 무송병원 건물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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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9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전라북도 부안군을 포함한 남한 지역을 미군이 통치한 시기. 광복 후 일제 강점기의 질곡에서 벗어난 한국인들에게는 친일파 청산과 자주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의 해결이 중요했다. 그러나 미국은 자본주의 세계 질서의 유지 및 재편성을 목표로 광복 이전부터 한국에 대한 신탁 통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당시 한국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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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병득(朴丙得)[1906~1945]은 1926년 부안청년동맹(扶安靑年同盟)에 가입하며 청년 운동에 참여했고, 노동자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1932년 부안노동조합협의회 결성 관련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치안 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박병득은 1906년(고종 43) 1월 7일 전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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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한국 신탁 통치 결정에 대한 전라북도 부안 지역 우익 세력의 반대 운동. 반탁 운동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협정으로 채택된 한국에 대한 신탁 통치안(信託統治案)을 반대하여 1945년 12월 27일에 한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대중 운동이다. 처음에는 반탁 입장에 섰던 좌익 세력이 찬탁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신탁 통치 문제를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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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5월 1일[음력 3월 26일]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의 백산성에서 동학 농민 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을 대내외에 알린 대규모 군중집회.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과 수탈을 계기로 고부에서 봉기한 민중의 일부가 백산성(白山城)으로 이동하여 성을 수리하며 머물렀고, 전봉준(全琫準) 등이 무장(茂長)으로 이동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백산에 모임으로써, 동학 농민군이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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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와 김제시 부량면을 연결하는 일제 강점기 다리. 부안군 백산면과 김제시 부량면 사이에는 동진강(東津江)의 지류인 중복천이 흘러 차량이 통행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부안군 백산면과 김제시 부량면을 연결하는 다리 공사를 시작하여 1927년 11월 11일에 ‘백산교(白山橋) 낙성식’이 열렸다. 백산교는 부안군에서 김제나 전주, 서울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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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정기(白貞基)[1896~1934]는 1919년 만주 펑톈[奉天]으로 망명하였고, 베이징[北京]으로 거처를 옮긴 후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여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한국 대표로 참여하였다. 1933년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주중 대사를 비롯한 요인들이 모이는 곳을 습격하려다 붙잡혀서 복역 중 사망하였다. 백정기는 지금의 부안군 부안읍 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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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부터 2004년 2월까지 전라북도 부안 군민들이 벌인 핵 폐기장 설치 반대 운동. 2003년 7월 14일에 전라북도 부안 군수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핵폐기물의 처리·관리 시설인 핵 폐기장[방폐장]의 부안군 위도 유치를 신청했고, 부안에서는 핵 폐기장 건설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충돌하며 갈등이 시작되었다. 2003년 7월 24일에 산업자원부가 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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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었던 금융 조합. 일제는 러일 전쟁에 승리한 후 재정 고문을 파견하였다. 한국 정부의 재정을 장악하고 한국의 금융 체계를 제 입맛에 맞게 개편하려는 것이었다. 한국 금융의 주도권을 장악해 가던 1907년에는 지방 금융 조합을 설립하고, 관선 이사제(官選理事制)의 채택을 강제하여 금융 조합의 운영권 장악을 시도하였다. 금융 조합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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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에서 이루어진 농촌 계몽 운동. ‘브 나로드(v narod)’란 러시아 말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이다. 브나로드 운동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젊은 지식인층이 농민 공동체를 기반으로 사회주의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신념 아래, 농민의 계몽을 위해 벌였던 운동이었다. 1873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농민을 대상으로 급진적 혁명 사상을 통한 계몽과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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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28 수복 이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좌익 세력의 유격대. 빨치산은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빨치산은 여수·순천 사건의 잔류 세력, 탄압을 받은 좌파 인사들, 6·25 전쟁 후 인민군 잔류 세력 등이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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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후로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시작된 새만금 간척 사업에 대한 환경 운동 단체 및 주민들의 반대 운동. 새만금 간척 사업 반대 운동은 환경 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갯벌 살리기와 해양 생태 환경 파괴 방지를 주장하며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이다. 새만금 간척 사업은 1991년 11월 28일에 시작되었고, 그 반대 운동은 2000년 전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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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여객선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서해 훼리호 참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362명을 태운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침몰하여 292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다. 희생자들은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주민과 주말을 이용해 바다낚시를 즐기러 온 낚시꾼들이었고, 구명조끼 등을 제대로 입지 못해 희생자가 크게 늘어났다. 사고 후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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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소작농이 지주를 상대로 전개한 소작 조건 개선 운동. 1920년대 이후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부안소작공제회, 원천소작동우회 등의 단체를 조직하고, 지주를 상대로 소작권 이전 및 소작료 인상 등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조선은 개항과 함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강제로 편입되고 자본주의 상품이 범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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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안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신일용(辛日鎔)[1894~?]은 전라북도 부안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운동가로 활동했다. 1922년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를 조직했고, 『신생활』 창간 이후로는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한 글들을 기고했다. 1922년 『신생활』이 사회주의 사상을 퍼트린다 하여 「신문지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 형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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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과 행안면 지역에서 이루어진 야학 운동.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도 청년들을 중심으로 문맹 타파 및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야학 운동이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설립·운영된 원천리 노동야학회 및 삼각독서회와 행안면 진동리에서 설립·운영된 노동 야학을 들 수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의 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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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조직되어 활동한 농민 단체. 원천소작동우회는 1925년 9월 7일 설립되어 지주와 소작인 간에 발생한 소작 관련 문제에 관여해서 해결하고, 일반 회원에게 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소작 관련 강연회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소작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였다. 원천소작동우회는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 주민 대부분이 소작농임에도 불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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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은희송(殷熙松)[1894~1952]은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 만세 운동을 촉구하기 위하여 독립 운동 취지문을 작성하여 고부면 사무소와 소성면 사무소에 송부하는 한편 직접 고부로 내려와서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은희송은 지금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 안국동에서 살고 있던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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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이경선(李京先)[1858~1911]은 이성화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남도 지도군(智島郡)[현 전라남도 신안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경선은 부안군 하서면 구지산리(九芝山里)[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고부[현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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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호(李承鎬)[1890~1966]는 1920년 상하이 임시 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3,600원이라는 거금을 지원하였고 지역에서는 빈민 구휼에 앞장섰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운암(雲岩)이다. 아버지는 중추원 의관을 지낸 이낙선(李樂善)이다. 이승호는 지금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제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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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 초인 1914년에 전국적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전라북도 부안군의 행정 구역도 19면에서 10면으로 개편되었다. 상서면(上西面)·하서면(下西面)·건선면(乾先面)은 그대로 두고, 동도면·하동면을 합해서 부령면(扶寧面), 남하면·소산면을 합해서 주산면(舟山面), 상동면·이도면·일도면을 합해서 동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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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한(林鍾翰)[1906~1941]은 1927년 조선청년총동맹 전북연맹, 고려공산청년회 부안 야체이카, 신간회 부안지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1928년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 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고조할아버지 임순(林洵) 대에 부안에 뿌리를 내렸다. 아버지는 임창규(林昌圭)이고, 어머니는 부안 김씨(扶安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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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안에서 활동한 학자. 전우(田愚)[1841~1922]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고옹(蠱翁)·양하왕인(陽下尫人)이다. 초명은 전경륜(田慶倫) 또는 전경길(田慶佶)이라 하였다. 아버지는 전재성(田在聖)이고, 어머니는 남원 양씨이다. 부인은 박효근(朴孝根)의 딸 밀양 박씨이다. 전우는 1841년 전주부 청석리(靑石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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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정판용(鄭判用)[1880~?]은 김영진(金榮振)의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무장[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일대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고 1909년(순종 3) 1월 체포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판용은 부안군 좌산내면 사동[현 부안군 변산면 일원]에서 태어나 농업을 생업으로 하였다. 한일 신협약[정미칠조약]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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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에서 1950년 6·25 전쟁 전후 시기에 전라북도 부안에서 발생한 좌익과 우익 간의 대립. 광복 직후 전라북도 부안에서는 악질 친일파를 청산하려는 청년들의 활동과 함께, 좌익이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미군이 들어온 뒤에는 우익도 힘을 가지며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와 함께 좌우익이 대립하기 시작했고, 국민 보도 연맹 사건을 계기로 좌우익 대립은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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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두영(崔斗榮)[1851~1933]은 부안군 산내면 진서리[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연강(蓮岡)이며 최일영(崔一榮)이라고도 불렀다. 1910년(순종 4) 나라가 병탄(倂呑)되는 치욕을 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1913년 2월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에게 치죄문(治罪文)을 발송하는 한편 일본 왕과 조선 총독,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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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상욱(崔相煜)[1922~2012]은 1943년 부안군에 있는 남선교통 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와 창씨 개명, 신사 참배를 비판하며 조선인의 민족 정신을 강조하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육군 형법 위반과 조언비어(造言飛語)[일본군과 관련하여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혐의]와 보안법 위반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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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최순환(崔順煥)[1911~1950]은 동진면 당상리에 있는 위친계를 농민 조합으로 바꾸어 농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 2년, 집행 유예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도 관심이 커서 문중 재각인 모성재에서 간이 학교를 열어 후진 교육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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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안 출신의 문관. 개항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 관리를 지낸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문관이다.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덕장(德章), 호는 학남(鶴南)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된 최석대(崔錫大), 증조할아버지는 이조 참의에 증직된 최진해(崔鎭海), 할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증직된 최시권(崔時權)이다. 큰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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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후반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에서 일제 침략에 맞서 전개한 의병 투쟁. 항일 의병 운동은 시기에 따라 일제 침략과 의병 전쟁 발단기의 전기 의병 운동, 일제의 반식민지적 강요와 의병 전쟁 전개기의 중기 의병 운동,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과 의병 전쟁 발전기의 후기 의병 운동, 대한제국 멸망과 독립군 작전기의 전환기 의병 운동, 일제 식민 통치 당시 유격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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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전라북도 부안군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광복 후 좌우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그에 따른 상처들이 컸다. 미국과 소련으로 인한 남북 분단과 함께 민족 간의 싸움인 6·25 전쟁까지 일어나며 서로에게 씻기 어려운 상흔을 남겼다. 이런 상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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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옥(洪淳玉)[1893~1951]은 1940년대 초 증산교에 입교하여 조선 독립을 위해 교리를 실현할 사람들을 모으는 데 힘을 쏟았고 묵도(默禱), 기원제(祈願祭)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홍순옥은 부안군 산내면 지서리[현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전선을 확대해 나가던 1940년대 초 증산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