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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김해 김씨 종중 재실 소금당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학자 김상정의 문집 책판. 곡천 선생 문집 책판은 창원 지역의 처사(處士)였던 김상정(金尙鼎)[1668~1729]이 지은 시문집의 목판이다. 김상정의 본관은 김해이며, 이견(以堅)의 아들로, 자가 덕삼(德三), 호가 곡천이다. 홀로 공부하여 얻은 것이 적음을 스스로 부끄러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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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회원군에 봉해진 창원공씨의 시조. 공소는 공자(孔子)의 54세손이다. 아버지는 공완(孔浣), 아들은 고려 후기 집현전 태학사로 평장사와 지응양군천우위대장(知鷹揚軍千牛衛大將) 등을 지낸 공여(孔帤)이고, 손자는 공부(孔俯)이다. 본명은 공소(孔昭)였으나 고려 4대 광종의 이름을 피하여 공소(孔紹)로 고쳤다. 공소는 원(元) 순제(順帝) 때 한림학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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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공우직은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감계리 사람이다. 공우직이 병사하자 공우직 처 이씨가 슬픔을 가누지 못해 남편이 죽은 날 목을 매 죽어서 남편과 한 무덤에 묻혔다. 이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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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과 북면에 걸쳐 있는 산. 구룡산은 창원시의 진산인 검산(檢山)에서 줄기를 이어 온 낙남정간의 기맥으로서 북쪽의 백월산으로 맥을 잇는다. 이곳에는 모두 3개의 산성이 있다. 염산성(簾山城) 혹은 구룡산성(九龍山城)이라 알려진 것이 대표적이며, 서쪽의 지개리 쪽 골을 안은 포곡식(包谷式) 산성과 또 하나는 동북쪽으로 약 1㎞ 떨어진 봉우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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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김수양 처 이씨는 창원도호부 서쪽 사율리(斜栗里)[현 경상남도 창원시 명곡동] 출신이다. 이씨는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받들고 남편인 김수양을 예를 다해 섬겼으나, 김수양이 세상을 뜨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김수양 처 이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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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에 있는 나주임씨 삼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조선 후기 정려비. 나주임씨 삼대효자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에 사는 임성립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머니가 병이 나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특효약을 구하던 중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도와주어 병을 낫게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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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곧고 맑은 품성으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남편 박경천이 해괴한 병에 걸려 앓게 되자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자신이 그 병을 앓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남편은 효력도 없이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배씨는 그날 밤 남편 박경천의 시신을 안고 따라 죽었다. 박경천 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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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문중 처 김씨는 창원 지역 사람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로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문중이 병에 걸려 죽자 3일 만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박문중 처 김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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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익천 처 배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안민동 출신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라고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익천이 죽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박익천 처 배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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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와 동읍 봉곡리·석산리에 걸쳐 있는 산. 백월산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초엽(707~709년)에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이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성도한 유적지이다. 정상은 사자암(獅子巖)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그 연원이 실려 있다. 원래의 이름은 화산(花山)이었는데, 당나라 황제가 백월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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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사화(沙火)는 ‘모래벌판’의 한자식 표기이다. 사화(沙火)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이곳이 모래벌판으로 이루어진 해안가 사장(沙場)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화포는 지이포의 초입에 해당되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도 과거 해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러한 지명을 통해 과거 창원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실제 창원대로 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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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창원의 문신. 손수경[?~?]은 1326년(충숙왕 13) 중랑장을 거쳐 1332년 대호군이 되었다. 충혜왕이 원나라에 불려갈 때 시종한 공로로 판종부 사사로 1등 공신에 책록되고, 토지 100결과 노비 10구 등 많은 은전을 받았다. 1342년과 1343년에 한종유(韓宗愈)와 함께 판밀직사사로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첨의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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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지역 역사.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옛 이름은 굴자(屈自), 의안(義安), 의창(義昌), 골포(骨浦), 환주(還州) 등이다. 지금의 창원(昌原)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은 1408년(태종 8) 때의 일이다. 통합 전의 창원 지역에 해당하는 의창현(義昌縣)과 마산 지역에 해당하는 회원현(會原縣)을 합하여 창원부(昌原府)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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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부터 1991년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행정구역. 창원 지역은 통일신라시대인 경덕왕 때는 의안군(義安郡)이었다. 1274년(원종 15) 원나라가 일본 정벌을 위하여 지금의 마산 지역인 합포(合浦)에 정동행성이라는 관청을 설치했는데, 정동행성의 활동에 기여한 공으로 1282년(충렬왕 8) 의안군은 의창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인 1408년(태종 8)에는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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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명. 1~2차에 걸친 여원연합군의 일본 원정은 합포(合浦)와 의안 지역을 기지로 하여 준비하고 단행되었다. 그러나 2차에 걸쳐 일본 원정이 실패한 이듬해인 1282년(충렬왕 8), 정부는 의안군(義安郡)을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를 회원현(會原縣)으로 고치고 현령을 파견하여 주읍(主邑)으로 승격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는 일본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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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본역을 두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로. 자여도는 창원도호부를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도호부, 서쪽의 함안군, 남쪽의 웅천현, 북쪽의 칠원현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의 교통로이다. 역로 개설의 특징은 대체로 자여도의 동서쪽 길은 낙동강 유역의 남쪽 외연을 동서축으로 연결하며, 남쪽 길은 고개를 넘어 해안선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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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 자여역은 경상남도 해안 지역의 동서 교통로를 형성하는 자여도의 중심 역원으로,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국가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자여역은 14개의 작은 역을 거느리며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시, 북쪽의 창녕군·밀양시, 서쪽의 마산시·함안군, 남쪽의 진해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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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열녀. 장귀 처 양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서 태어났다. 남편 장귀가 죽어서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장귀 처 양씨가 목을 매어 죽어 남편과 한 무덤에 묻혔다. 장귀 처 양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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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상북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포구. 지귀포는 지금의 상북동 지귀 상가 부근에 있었다.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등의 기록에 “지이포에 염전이 있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 일대가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오는 조간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 “염전[鹽盆]이 부의 남쪽 지이포에 있다.”라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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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진흥은 처 강씨는 창원도호부 봉곡[현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 사람이다. 강씨는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서 효부로 칭찬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남편 진흥은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수소문해 약을 구해 먹이고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남편을 살려 달라고 정성을 다해 하늘에다 빌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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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도호부 관내에 설치되었던 물품 저장 또는 보관 시설. 창고는 창원 도호부가 행정이나 군사 업무의 수행 과정에 필요한 곡물 및 무기류 등의 보관과 관리를 위해 관내에 설치·운영한 시설이다. 『창원 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당시 창원 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가량의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창원 도호부 관내의 창고들을 설치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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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의안군 소속의 지명으로 현재 마산 지역. 한자로 합포(合浦)가 합포(蛤浦)라고도 쓰였던 점을 고려하여 ‘합개’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는 포를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의미의 ‘개’로 보고, 조개 등 해산물을 상징하는 의미인 ‘합개’이지 않을까 하는 데서 근거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 이름이 신라 경덕왕 대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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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아버지는 황석기(黃石奇)이고, 아들은 황윤서(黃允瑞)이다. 황상은 충혜왕 때 호군이 되었으며, 공민왕 초에 밀직부사에 제수되고 추충익찬공신(推忠翊贊功臣)에 봉해졌다. 1354년(공민왕 3) 유탁(柳濯)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돌아와서 지추밀원사가 되었다. 1356년 적신 기철(奇轍)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