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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당고개의 지명 유래 전설. 통일신라 때 서원경(西原京)으로 향하는 고갯마루의 양쪽 길가에 객줏집이 마주하고 있었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던 객줏집의 주인은 함씨(咸氏)였고, 남쪽에 있던 객줏집의 주인은 원씨(元氏)였다. 추운 어느 겨울밤에 함씨의 객줏집 문을 두드리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함씨는 문을 열고 여인을 보았다. 여인의 몸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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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상당구 금천동과 용담동 사이에 있는 ‘호무골’이란 마을에 얽힌 전설. 조선 말기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이 지금의 남쪽으로 향한 야산 기슭의 지세를 보니 장차 번창할 지형이었다. 그는 그 곳에 집을 지을 결심을 하고 잡목을 베고 터를 닦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근처에 물이 나는 곳이 없음을 알고 터 닦는 일을 그만두고 떠났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남면 궁말에 살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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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1948년 인봉스님이 현재의 절터에 띳집을 짓고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건한 것이다. 1976년 서원학회(西原學會) 조사단이 현 관음사 사역에서 발굴한 철확(무쇠솥)과 여러 형태의 연화문, 수막새 등에서 계향지사(桂香之寺)나 월고사(月姑寺)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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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의 관음사에 있는 철솥. 관음사는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牛岩山)[338m]의 서쪽 중턱에 있는 조계종(曹溪宗)에 속한 사찰로 1943년에 창건되었다. 고문헌(古文獻)의 기록이 없어 옛 절터(古寺址)에 대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경내에서 출토되는 철확과, 옛날 기와조각, 토기조각, 청자조각 등을 통하여 대략 통일신라 말기에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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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없는 집에서 아들 낳기를 비는 민간신앙.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제(家父長制)에서 아들이 없으면 대(代)가 끊어진다고 하여 아들을 선호하는 사상과 여자가 아들을 못 낳으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로 쫓겨나는 관습에서 기자신앙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 형태는 크게 치성(致誠), 적덕(積德), 주술(呪術)로 나누어진다. 치성은 명산대천의 산신당이나 용왕당 또는 효험이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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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에 과일 나무에 돌을 끼워두는 풍속. 정월 보름날에 대추나무나 감나무 등 과일나무가 있는 집에서는 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운다. 이렇게 하면 그 해 과일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이것을 보통 ‘나무 시집보내기’라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과일 나무의 가지 친 곳에 돌을 끼워두면 과일이 많이 열리는데 이를 가수(嫁樹), 즉 ‘나무 시집보내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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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있었던 돌다리.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가설시기에 대해서는 기원전 57년이라는 설이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청주읍성의 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량이라고 볼 때 대략 고려시대에 가설되었으며, 무심천(無心川)의 범람 때마다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함으로써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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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청주대학교내 용암사와 흥덕구 개신동 충북대학교박물관내에 있는 석조물. 돌로 만든 개 형상(犬像)을 말하는 것으로 남석교 교안(橋岸) 양쪽에 두 개 씩 모두 4개가 있었다고 한다. 석조 견상을 만든 시기를 추정하기는 어려우나 남석교의 가구식 기법, 백자 조각(白磁片), 철종 연간의 개건(改建)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남석교는 조선시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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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14일 밤에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놀이. 정월 14일 해가 지기 전 일찍 오곡밥을 먹은 후 인근 내[천(川)]에 놓인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며 다리밟기[답교(踏橋)]를 한다. 다리밟기는 자기 나이와 같은 회수를 왕래하면 좋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1년 내 다리 병이 나지 않고 튼튼하며 액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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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밤에 높은 산에 올라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 정월 보름날 밤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면 그 해의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여 횃불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 ‘망월여, 망월여’하며 달뜨기를 기다리는데, 이것을 ‘망월본다’ 혹은 ‘달맞이[망월(望月)]’라 한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가 그 해 소원을 달에게 기원하는 의미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깡통을 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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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산(唐羡山)에서 관행제(官行祭)로 치렀던 성황제. 관련 자료를 통해 당이산(唐羡山)에 성황당(城隍堂)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社稷壇在州西 文廟在鄕校 城隍堂在唐羡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淸州牧)」). 그러나 1914년 일제에 의해 성황당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신사(神社)가 건립되면서 단절되었다. 그런데 동자료에서 당이산(唐羡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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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 현재 청주향교 자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의 터. 지금의 청주향교 자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사찰의 터인데, 문헌기록과 명문유물이 없어 절 이름과 유래를 알 수 없으나, 향교 일대에서 발견된 사찰과 관련된 기와 조각과 석조물들로보아 향교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주향교의 여러 건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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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 충청북도지사 관사 내에 있는 석등. 충청북도 도지사 관사의 정원에 있는 석조물이다. 당초 이 석조물이 위치한 옛 절터(寺址)에 대한 문헌기록이나 명문유물(銘文遺物)이 없어 절 이름(寺名)과 유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 산재한 기와 조각(瓦片)과 석조물(石造物)들로 보아 대략 고려시대(高麗時代)에 불사(佛事)가 이루어졌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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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의 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불상. 1979년 상당구 수동 우암산(牛岩山)[338m] 기슭 대한불교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동남방 담장 밖에 있던 옛 절터(古寺址)에서 석조대좌(石造臺座)와 같이 출토되었다. 석불은 모두 높이가 40㎝ 미만인 작은 불상들로 머리가 없는 좌불(坐佛) 4구(軀)와 불두(佛頭) 2구(軀)가 있다. 불두와 불상이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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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날 해 뜨기 전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더위를 파는 풍속.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을 보면 급히 부르고,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곧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하는데, 이를 매서(賣暑), 즉 더위팔기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더위를 팔면 그 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더위팔기는 정월 15일 해 뜨기 전에 한다. 해가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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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도안현(道安縣)은 현재의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5 잡지 제4 지리2)에는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의 영현(領縣)인 도서현(都西縣)이라 하였다. 본래 고구려의 도서현(道西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쳐 도서현(都西縣)이라 하였다. 고려 때 도안현(道安縣)이라 하여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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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사이에서 농기를 빼앗는 민속놀이. 농촌의 각 마을에는 두레가 있고, 두레에 딸린 농기가 있게 마련이다. 이 농기에 인격을 부여하여 오래된 농기일수록 선배가 되어 “형”이나 “선생”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여름철에 들로 일하러 나갈 때 으레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을 울리는데, 이 때 먼발치라도 이웃의 선배 농기와 마주치면 먼저 절을 해야 한다. 만일 절을 하지 않으면 선배 쪽 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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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백제 때 대목악군(大木岳郡), 신라 때 경덕왕(景德王)이 고쳐 대록군(大麓郡)이라 하였다. 고려 때 다시 목주군으로 고쳐 청주목에 속했던 2군(郡), 7현(縣) 중의 하나이다. 1172년(고려 명종 2)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성종(成宗) 때 달리 신정(新定)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려사(高麗史)』). 목주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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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밤에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웃어른께 배례를 올리는 세시풍속. 섣달 그믐날 밤을 흔히 ‘제야(除夜)’라고 한다. 예로부터 섣달 그믐을 밝아 올 새해를 하루 앞둔 그 해의 마지막 날이라 하여 여러 가지 행사와 의식을 진행하는 풍습이 있었다. 예컨대 다가오는 설을 보다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는데, 우선 집 안팎을 깨끗이 손질하고 거두었으며, 특별한 세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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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을 근거로 발생한 신앙. 미륵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제자로 부처가 되었는데, 미륵의 범어(梵語) Maitreya에 ‘자비(慈悲)’라는 뜻이 있어 미래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에서 그 신앙이 크게 발전하였다. 우리나라 민속에서 미륵신앙은 바위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던 암석신앙의 한 유형인 선돌신앙이 불교가 전래된 뒤에 석불신앙으로 옮겨지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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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靈柩)가 집을 떠나 묘지로 가는 절차.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루기 위해 마을 전체가 동원된다. 그러다보니 장례 뒤에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는 예도 많았다. 여기에 3년 상까지 하게 되면 더더욱 생활형편이 어려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1973년에는 가정의례준칙까지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마을에는 장례를 치를 노동력이 부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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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백운사의 입구에 봉안된 불상. 이 불상은 원래부터 이곳에 봉안된 것은 아니었다. 백운사의 신도가 자신의 친정(화단 : 속리산 가는 길)에서 옮겨온 불상이라고 한다. 이 불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全高) 91㎝, 불상 높이(佛像高) 80.5㎝, 귀 길이(耳長) 12.5㎝, 광배 두께(光背厚) 11.5㎝이다. 배 모양인 커다란 광배[舟形擧身光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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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들이 김매기를 모두 마친 후에 택일하여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고 나누어 먹으며 노는 민속놀이. 백중은 음력 7월 보름날을 뜻하며, 음력 1월 보름을 상원(上元), 10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 불렀던데서 중원(中元)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湖西俗 以十五日 老少出市 飮食爲樂 又爲角力之戱(호서속 이십오일 로소출시 음식위락 우위각력지희: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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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서 수습된 고려시대 불교 관련 석조물.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흥덕구 사창·복대지구 구획정리사업(청주고등학교와 옛 청주과학대학 사이)을 하는 중에 수습된 고려시대 불교관련 석조물이다. 대좌 형태인 석조물은 흥덕구 개신동 충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석재의 윗면은 편평하지 않은 자연면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고 요철이 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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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에 방문 위에 조리를 걸어두는 풍속.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난 후나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조리 장수들이 마을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복조리를 사라고 외친다. 설날 이른 아침에 조리를 사면 1년 내내 복이 있다고 하여 서로 앞 다투어 산다. 사들인 조리는 두 개를 엇갈리게 묶어서 안방 위에 걸어둔다. 상당구 산성동 성안마을에서는 헝겊으로 세모지게 복조리를 만들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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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15일 아침에 딱딱한 과실을 깨무는 행위 부럼이란 말은 부스럼에서 온 말이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이를 ‘부스럼을 씹다’는 뜻의 ‘작절(嚼癤)’이라 하였고, 또 부럼을 깨물면서 이가 단단해진다고 하여 ‘이를 단단하게 하는 방법’, 즉 ‘고치지방(固齒之方)’이라고 기록하였다. 정월 15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두, 밤, 잣, 땅콩과 같은 딱딱한 과실을 깨물어 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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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사뇌사지에서 출토된 유물. 1993년 10월 흥덕구 사직동 용화사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무심천변의 제방도로를 확장하기 위하여 전신주를 이설하던 중에 「사뇌사(思惱寺)」명 반자를 포함한 고려시대의 일괄 금속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들은 대형의 금동광배편을 위시하여 소종, 향로, 촛대, 숟가락, 금강령, 주자 등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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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사뇌사의 터.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에 "서원부사뇌사하안거(西原府思惱寺夏安居: 서원부 사뇌사에서 여름철 안거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여서 고려에 청주에 있던 대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물이 발견된 곳은 대찰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어서 원 사지는 지금의 용화사 주변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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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상정말에 있는 고려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계획한 청주 산남3지구 일원에 대한 택지 조성 공사에 따라 실시된 지표조사(1994년)에서 확인된 유적이지만, 2004년 택지개발과정에서 제외된 지역으로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룡산(九龍山)[163.6m] 아래쪽 상정말마을의 뒷편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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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의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있는 석탑.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흥덕구 산남동 속칭 원흥리 마을 뒤편(동쪽)에 있는 낮은 야산에 있었다. 당초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이웃마을(도 교육청 서쪽)의 이름이 탑곡(塔谷)인 점으로 보아 옛 절터(寺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이 위치한 곳이 택지개발 지구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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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인 삼신을 모시는 신앙. 옛날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삼신봉에 삼신당(三神堂)이 있어 그 곳을 찾아가 비손을 하거나 삼신굿을 하기도 하였으나, 삼신당이 없어지면서 삼신굿은 사라지고 지금은 우암산(牛岩山)[338m]이나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굿당을 찾아 삼신굿을 한다. 즉 삼신은 가신 중에서 주부가 가장 정성을 드리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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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서운사 자리에 있었던 사찰.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현재의 서운사 자리에 서기암(瑞氣菴)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방리조에는 서기암(瑞氣菴)이 관문의 북쪽 13리에 있으며 편호는 12호에 남자 16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사찰조에는 고을 북쪽 10리 율봉역(栗峰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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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키는 가신(家神)인 성주를 모시는 신앙형태. 가옥의 안전을 위하여 새로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면 반드시 성주를 모시는데, 이를 ‘성주받이’라고 한다. 성주받이는 원래 좋은 날을 잡아 삼일 전에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부정을 막고 무당을 불러 ‘성주받이굿’을 한 뒤 성주를 모신다. 청주에서는 드물게 단지에 쌀을 담아 성주단지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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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의 절터에서 출토된 금동 불상. 흥덕구 성화동(옛 농촌동)에서 발견되어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불상이다. 수인(手印)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는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으로,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머리 부분이 몸에 비해 크게 조각되었다. 나발(螺髮) 위에 둥그렇게 생긴 육계(肉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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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먹는 음식. 세찬은 준비하는 집안 형편에 따라 그 종류와 양은 각각 다르지만, 세찬 중에서 어느 집이나 빼놓지 않는 것은 흰떡이다. 떡국과 함께 세찬으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인데, 설에 준비하는 술을 특별히 세주(歲酒)라 한다. 도시에서는 대개 정종을 준비하고 농촌지역에서는 아직도 설에 집에서 동동주를 담가 먹는 집이 있다. 이 밖에 만두, 다식, 약과, 식혜, 수정과 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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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의 터. 이 절터에 대한 문헌기록이 전혀 없어 사찰의 명칭은 물론 창건 및 폐사시기를 알 수 없으며, 단지 주변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통하여 대략 고려시대에 작은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도축장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덤박골고개에서 남쪽으로 약 200m 지점으로 신봉동과 송절동 사이에 형성된 야산의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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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안 곳곳에 등촉을 밝혀놓고 밤을 새우는 풍속. 수세(守歲)는 도교에서 12월 경신일(庚申日)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소위 경신수세(庚申守歲)의 유속(遺俗)이다. 그래서 섣달그믐에 윷놀이, 옛날이야기, 얘기책 읽기 등 흥미 있는 놀이로 밤을 새웠다. 잡귀의 출입으로 인해 새로운 한 해에 닥칠 수 있는 액운의 방비는 물론 새로운 한 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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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재앙을 막거나 물리치기 위하여 행하는 주술. 개인적 주술로 음식주술과 행위주술이 있다. 음식주술은 정월 보름 아침에 귀가 밝으라고 찬술을 먹는 ‘귀밝이술[耳明酒]’,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딱딱한 과실을 깨물어 뱉는 ‘부름[腫果]’, 동짓날에 먹는 팥죽 등이 있다. 행위주술은 설날 아침 대문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이는 ‘세화(歲畵)’, 용(龍)·호(虎)를 써 붙이는 ‘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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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 에 신라 웅주(熊州) 연산군(燕山郡) 영현(領縣)의 하나였다고 한다. 본래 백제 때 두잉지현(豆仍只縣)으로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연기현으로 고쳐 연산군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이 되었고,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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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燕山郡)은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문의면(文義面)지역으로, 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에 따르면, 본래 백제 때의 일모산군(一牟山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연산군으로 고쳐 고려에도 그대로 쓴다고 하였다. 연산군의 영현(領縣)은 연기현(燕岐縣)[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과 매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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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부모산 정상 부근에 있는 사찰. 현재의 연화사는 1928년 금강산 유점사에 주석하던 청암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그러나 1950년대 대웅전 중창불사를 하는 과정에서 ‘蓮月寺 重二斤 貨主○○’이라고 적힌 공양용 불구가 발견됨에 따라 옛 절터임을 알게 됐다. 2대 주지인 보안스님이 1955년부터 보안사에 주석하며 현재의 도량을 일궈냈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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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었던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가 추진한 청주 용암2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에 대한 문화재 부존여부의 파악을 위해 1995년 국립청주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시 고려시대 경질토기편 등 약간의 유물이 채집되면서 용담동 유물산포지로 이름붙여졌다. 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1999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시굴조사(택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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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었던 용두사에서 사용하였던 금구.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보살사(菩薩寺) 금구(錦口)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옛 경신(庚申) 8월에 고을 사람이 땅을 파다가 옛 종을 습득하였는데 ‘대안육년용두사금구(大安六年龍頭寺錦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그 형태가 기이하고 소리가 몇 리 밖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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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용두사의 터. 청주시내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는 국보 제41호인 철당간이 남아 있는 관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두사의 창건과 폐사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단지 1천년 이상을 제자리에 서있는 철당간의 당간기가 있어 절 이름뿐만 아니라 고려 초기의 상황을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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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날 아침에 우물물을 뜨는 풍속. 정월 15일 새벽에 남보다 먼저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온다. 이런 행위를 보통 ‘용알 뜨기’라고 하는데, 청주에서는 ‘우물물 뜨기’라고 한다. 보름날 뜨는 물을 ‘용알 뜨기’라고 한 것은, 14일 밤에 천상에 있던 용이 지상에 내려와 우물에 알을 낳는다는 속신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운수가 대통하고 농사가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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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용화사 경내에 있는 석탑. 층급받침은 3단이나 각 단이 높고 넓은 것이 특징이다. 초층탑신석(初層塔身石)은 1매(一枚)로 조성되었다. 전면(前面)에는 우주(隅柱)가 없고 중심부에는 방형(方形)의 감실(龕室)이 마련되었으며 나머지 3면(面)에는 우주가 각출(刻出)되어 있다. 초층 지붕돌[옥개석(初層屋蓋石)]과 2층 탑신석(二層塔身石)은 1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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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줄여서『직지』는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이다. 원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直指心體)』, 『직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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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의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 남석교(南石橋)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옛 청주읍성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성안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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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절(流頭節)을 기해 참외밭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의식. 일종의 기풍제(祈豊祭)로서 흔히 ‘외제’라고 한다. 기풍제는 크게 답제(畓祭)와 전제(田祭)로 나눌 수 있다. 전자로서 용신제(龍神祭), 농신제(農神祭), 논굿, 논고사, 유두고사, 유두제 등이 전승되고 있으며, 후자로서 외제, 수박제, 등이 전국적으로 광포하여 전승되고 있다. 참외가 영글 무렵에 참외밭에서 직접 국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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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사로 재직할 때에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특히 재물의 씀씀이를 절약하였는데, 백미 20섬, 현미 70섬, 좁쌀 80섬, 메밀 30섬, 베 1천 필을 얻어 그것을 밑천으로 이식을 취하여 이 고을의 의재(義財)를 마련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색의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 명환조」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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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날 대문이나 들보, 기둥, 천장 등에 써 붙이는 글귀. 입춘에는 입춘이 드는 시간을 따져서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 천장 등에 좋은 글귀를 써서 붙이고 입춘을 송축하는데, 이것을 입춘첩(立春帖) 또는 춘첩자(春帖子), 춘축(春祝)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 입춘 날에는 관리들에게 1일 휴가를 주었고, 입춘 하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신하에게 춘번자(春幡子)를 나누어 주었고, 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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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도량참법’의 바른 전달과 배우는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오는 어려운 글자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集解)한 책. 『직지』를 인쇄한 동일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바탕 책(底本)으로 하여 목판으로 다시 인쇄(飜刻)한 책으로, 그 저본은 『직지』보다 먼저 인쇄되었거나 비슷한 시기에 청주에서 간행된 책이다. 자비참도량(慈悲懺道場: 참법(懺法))이란, 밀교적인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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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淸州) 속현(屬縣)의 하나. 백제 때 구지현(仇知縣)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금지현(金池縣)으로 고쳐 불렀으며, 웅주(熊州) 대록군(大麓郡)[충청북도 천안시 목천면]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때 전의현으로 고쳐 청주(淸州)의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1395년(태조 4) 처음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1414년(태종 14) 연기(燕岐)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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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정진원(情盡院)이 있던 터 원(院)이란 전국 각 역(驛)에 둔 숙박시설로 정진원(情盡院)이 이에 해당한다. 원의 설치목적은 공무연락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공적임무를 띤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었다. 정진원은 청주에서 회인-보은- 문의-부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숙박시설이었다. 정진원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남쪽 남석교 건너에 있었다.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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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다스리는 제석을 모시는 신앙. 제석(帝釋)은 범어 Sakra devanam Indra-석가제환인타라(釋迦提桓因陀羅)의 한자말로 불교에서 수미산 꼭대기 희견성에 있으면서 32천을 다스리는 하늘의 신이다. 사찰에서는 제석을 ‘곡식의 신’이라 하여 곡간에 “제석환인지위(帝釋桓因之位)”라는 위패를 모셔놓고 쌀을 넣고 꺼낼 때마다 예배를 한다.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일반적으로 조상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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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을 다스리는 가신(家神)인 조왕을 모시는 신앙. 도교(道敎)에서 조왕이 일 년 동안 집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여 매년 12월에 옥황상제에게 보고한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부엌에 조왕의 그림을 붙여놓고 제사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새집을 지어 입주하거나 이사할 때에 제일 먼저 주부가 불씨를 갖고 들어와 부엌에 놓고 조왕을 모셨다고 하여 ‘불의 신’ 또는 ‘주부를 보호하는 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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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날 밤에 좀생이별과 달의 위치를 통해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 세점(歲占). 세점은 일 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인데, 여기에는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사점과 일 년의 운수를 점치는 운수점이 있다. 좀생이점은 농사점에 해당한다. 이외 농사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정월 보름 아침에 닭이 열 번 이상 울면 풍년이고 그 이하로 울면 흉년이라고 여겼다. ② 입춘날에 보리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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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두 패로 나눠 굵은 줄을 서로 잡아당겨 승패를 가르는 민속놀이. 줄다리기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등 동아시아 일원에 널리 분포하는 놀이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물을 관장하던 용신(龍神)이다. 줄다리기는 줄을 용으로 여겨 암용(암줄, 여자를 상징)과 숫용(숫줄, 남자를 상징)의 만남과 결합으로 온 마을과 지역이 하나가 되는 대동(大同)의 계기로 삼아 풍년과 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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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열나흘과 설날 밤에 주로 하던 놀이. 구멍을 뚫은 깡통에 관솔을 미리 넣어 놓았다가 정월대보름날 달이 떠오를 때 짚으로 불을 붙여 여러 사람이 들로 나가 쥐불놀이를 한다. 논둑을 따라 또는 밭둑을 따라 쥐불이 퍼지다가 내의 둑이나 다리 앞에 이르면 이웃마을에서 놓은 쥐불과 맞닿게 되는데, 이때 대개 쥐불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쥐불싸움은 쥐불을 공중에서 회전시키면서 공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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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속현(屬縣)의 하나. 진주현(鎭州縣)은 진천(鎭川)의 옛 이름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地理)에 따르면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은 달리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하였다. 본래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흑양군으로 고쳤다. 금물노군(今勿奴郡)은 달리 만노군(萬弩郡), 수지(首知), 신지(新知)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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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터. 이 절터에 대한 문헌자료의 기록이 없어 연혁을 알 수 없으나 1980년의 지표조사에서 ‘천흥사(天興寺)’라 쓰인 기와 조각이 수습되어 절터와 함께 옛 절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절터에 대한 학술조사가 이루어지 않아 사역의 범위와 가람의 구조 등을 알 수 없지만, 주변에서 고려의 기와편이 다수 발견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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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한 속현(屬縣)의 하나. 청당현(淸塘縣)은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안면(淸安面) 지역이다. 청당현은 달리 청연현(靑淵縣)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고려 초에 청당현으로 고쳐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으로 삼았으며, 후에 감무(監務)를 두어 도안현(道安縣)을 함께 다스리게 하였다. 1405년(태종 5) 백성이 적고 땅이 좁다하여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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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청주목 관아의 누각. 망선루는 객관(客館)의 동쪽에 있었는데, 옛 이름은 취경루(聚景樓)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1361년(공민왕 10)에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하였다가 이곳에 옮겨와 수개월 동안 머물렀었다. 도적이 평정되자 문과와 감시(監試)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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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의 봉황사에 있는 불상. 현재 이 불상은 목암사가 폐사(廢寺)되었기 때문에 주지인 송파스님의 발원으로 2002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봉황사를 신축(新築)하여 모셔두고 있다. 석불입상의 머리는 최근에 후보된 것이나 나머지 부분은 보존이 양호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으며 몸 전체에 양감이 부드럽게 드러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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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방서동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문중에서 세운 정자. 최초의 무농정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청주한씨의 시조인 한란이 농사에 대한 교육과 농사일을 독려하기 위해 청주시 방서동 속칭 ‘큰대머리’ 마을 언덕 위에 건립하였다. 그러나 폐허가 되자 1688년(숙종 14) 후손 한익저(韓益著)가 그 터 옆에 유허비를 세웠다. 1949년 후손들이 정자가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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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네모난 우물.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인 한란이 살던 마을에 있던 우물의 이름으로 너비 47.5~62.5㎝, 길이 153.5㎝의 네모진 샘이다. 무농정에서 약 200m 떨어진 청주한씨 종중회관이 있는 골목 안쪽에 있다.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우물보호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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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의 서기사(瑞氣寺)에 있는 불상. 결가부좌(結跏趺坐)하여 정면(正面) 직시(直視)한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나발(螺髮)의 머리에 낮은 육계(肉髻)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마에는 백호(白毫)를 표현하였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양볼에는 살이 쪄 있어 원만한 상을 이루었다. 입은 굳게 다물었으며,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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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인데, 압각수라는 이름은 잎의 모양이 오리류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과 나무뿌리가 물오리의 발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어 있어 생겼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오리발나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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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의 용화사 미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7구의 불상. 용화사의 미륵보전 안에 봉안된 이 석불상군은 모두 7구의 석불로 미륵칠체불 또는 칠존미륵불로 불려지기도 하나 본래는 운천동·사직동 일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석불들을 1902년(광무 6)에 용화사(龍華寺)를 창건하면서 옮기어 봉안한 것이다. 따라서 칠존불로 동시에 조성된 것은 아니며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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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하동 마을 앞 도로변의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다. 속칭 돌산으로 불리는 바위산에서 돌출된 판석형의 자연암반에 선각(線刻)으로 조성한 마애불로서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불상의 윗부분 바위에 보를 끼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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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청주인 경진(慶珍)으로 고려 명종 때에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그 아들인 경대승(慶大升)은 청렴한 인물로 장군이 되어 정중부의 횡포정치를 제압하고 쇄신정치를 하였다. 청주경씨의 1세(世)는 경번(慶蕃)으로 고려 고종조에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평장사에 이르고 청주에 세거하였으며 2세는 경수(慶綏)로 통례문사를 지내고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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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신라 헌강왕 때에 시중을 지낸 곽상이다. 4세(世) 곽원(郭元)[?~1029]은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를 거쳐 참지정사를 지냈으며, 6세 곽상(郭尙)은 추밀원 좌승선을 거쳐 호부상서·참지정사에 오르고 두 아들로 문충공 탄(坦)과 진정공 여(輿)를 두었다. 누전하여 11세인 곽예(郭預)[1232~1286]는 문한학사와 지밀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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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 성종 대의 12목, 현종 대~고려 말까지 8목 중의 하나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국초에는 지방세력이 강대했던 반면 중앙 행정력이 극도로 미약했기 때문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고, 중앙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태조(太祖)는 지방세력이 강한 지역에 대한 조치로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치고,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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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손씨총원록(孫氏總源錄)』에 의하면 시조는 구례마(俱禮馬)로 여섯 촌장 중 한 분으로 신라 시조 혁거세를 추대하였고, 유리왕 9년에 손씨(孫氏) 성(姓)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누전하여 흥덕왕 때 효자인 문효공 손순(孫順)을 손씨의 비조(鼻祖)로 하였다. 『청주손씨세보』에 따르면 중시조인 손필영(孫弼榮)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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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송유충(宋有忠)으로 충숙왕 때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으며 아들 송훤(宋暄)은 조선조 개국공신으로 서원군(西原君)을 습봉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그 후 누대가 실전되어 송승은(宋承殷)을 1세조(世祖)로 하고 있다. 청주에 본관을 두고 있으나 청주 근교에 세거한 흔적을 찾지 못했으나 송승은이 조선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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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이능희(李能希)로서 고려 개국공신이며 벽상삼한삼중대광태사이다. 6세손 이공승(李公升)은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7세손은 정숙공(貞肅公) 이춘로(李椿老), 8세손은 대장군 이장(李粧)이다. 9세손은 판밀직사 이창우(李昌祐)이다. 이창우는 두 아들 낭성군(琅城君) 이계감(李季瑊)과 보은백 이계성(李季成)을 두니 10세손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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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 본관을 둔 성씨.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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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했던 속현(屬縣)의 하나. 청천현(淸川縣)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에 따르면 상주(尙州) 삼년군(三年郡)[현재의 충청북도 보은군] 소속이었다. 본래 살매현(薩買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궁예전(弓裔傳)」에 ‘靑州[或云靑川]’가 두 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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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파일[浴佛日]을 기해 석가의 탄신을 경축하는 의미로 사찰에서 재(齋)를 올리며 연등(燃燈)을 하는 놀이. 고려시대에 대단위 규모의 공의(公儀)로 궁중을 중심으로 행해졌다.『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039년(문종 21)에 흥왕사(興王寺)의 낙성을 계기로 한 연등회를 “등화수광조여주(燈火樹光照如晝)”라고 형용하고 있으며, 공민왕 때에도 신돈(辛旽)이 자기 집에 무려 백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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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8월 15일로, 우리나라 고유 명절의 하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 나라 안 6부(六部)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가르고 두 왕녀를 각각 우두머리로 삼아 음력 7월 기망(旣望 ; 16일)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마지막 8월 15일에 승부의 판정이 나면, 진 편에서 이긴 편에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밤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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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에 칠성신(七星神)을 대상 신격(神格)으로 삼아 가정의 복락을 기원하는 풍속.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1930년대의 자료에서 충북지역 칠성제(七星祭)의 전승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운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 칠성제를 올렸으며, 제주는 집안의 부인으로 보통 할머니들이었다. 제일(祭日)은 칠석날 밤이었으며, 제장(祭場)은 칠성의 신체(神體)를 모셔놓은 뒤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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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하룻날을 기해 콩을 볶는 기풍주술(祈豊呪術)적 성격의 세시풍속. 콩 볶기와 같은 기풍주술은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주술 행위를 말한다. 개인적 주술과 집단적 주술로 나눌 수 있는데, 농사를 시작하기 전 봄철에 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적 주술은 정월 14일 작은 소나무를 베어 마당에 세워놓고 나뭇가지에 여러 곡식의 이삭과 목화를 주렁주렁 걸어놓는 볏가리대(禾木), 정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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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의 터. 청주시 상당구 탑동의 일신여자고등학교 북쪽의 주택가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의 터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개인주택 안마당에 남아 있다. 문헌기록이 없어 절의 이름과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절터에 남아있는 오층석탑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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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를 지키는 가신(家神)인 터주를 모시는 신앙. 터주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지키는 오방지신(五方之神) 중에서도 특히 중앙을 지키는 신이다. 흔히 한자로 ‘토주(土主)’라고 쓰나 ‘대주(垈主)’로 쓰기도 한다. 청주에서 터주신앙은 집을 지을 때 제일 먼저 개토제(開土祭)를 지내고 집을 다 지은 뒤에는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뒤뜰이나 장독대 옆에 터주단지를 모신다. 그런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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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치는 맹인. 판수의 어원은 ‘운수(運數)를 판단(判斷)해 준다’는 ‘판수(判數)’에서 온 말이라고 하나, 알타이어(Altai語)에서 남자무당을 가리키는 ‘paksi’에서 분화된 순수한 우리말이다. 예로부터 맹인들이 생계 수단으로 점을 치는 것은 직업으로 하였는데, 우리나라 맹인의 점은 중국에서도 용하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맹승(盲僧)으로 불리는 삭발한 맹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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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광종 때 청주지방의 호족세력이 세운 학원(學院)을 관장하던 차관 격의 관직.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약 100년간 전국의 지방에는 ‘호족(豪族)’이라고 불리는 토착세력들이 반독자적인 사회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청주지방 역시 강력한 호족세력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 경제적으로 중앙정부의 간섭을 별로 받지 않는 독자적인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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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초 청주지방의 호족세력이 세운 학원(學院)을 관장하던 관리. 학원낭중(學院郞中)은 청주 호족들이 건립한 ‘학원’이라는 관부를 관장하던 관리의 하나로서 낭중(郞中)은 본래 신라의 중앙관직으로서 집사성(執事省)이나 병부(兵部), 창부(倉部) 등에 속한 관직으로 사지(舍知)로부터 내마(奈痲)가 이에 임명되었으며, 고려 때에는 상서성, 육조에 속한 정 5품의 벼슬이었다. 신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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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한식일(寒食日)에 지내는 제사. 한식일은 대개 음력 3월에 들기도 하나 대개 2월에 든다. 이 날은 조상의 묘에 과일과 떡 등을 차려 놓고 ‘한식차례(寒食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文化洞)의 송시열(宋時烈) 종가에서는 사당을 모시고 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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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삼짇날에 진달래를 뜯어다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지져 먹는 시절음식. 화전(花煎)은 원래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꽃, 국화꽃, 복숭아꽃, 매화꽃과 같이 색과 모양이 아름답고 향기 그윽한 여러 가지 꽃잎을 위에 얹고 지져 꿀에 재운 것인데, 얹은 꽃의 이름을 따서 진달래화전, 국화화전, 복숭아화전 등으로 부른다. 진달래화전은 산과 들에 진달래꽃이 곱게 피어나는 음력 3월 삼짇날 들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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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했던 속현(屬縣)의 하나. 본래 백제의 미곡현(未谷縣)으로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매곡(昧谷)으로 바꾸고 연산군(燕山郡)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초에 회인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에 포함된 2군(郡) 7현(縣) 중의 하나이다. 후에 회덕(懷德) 감무(監務)가 함께 관할하게 하였으나, 1383년(우왕 9) 따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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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의 터. 1980년의 지표조사에서 발견된 「흥천(興泉)」명 기와 조각을 통하여 이 절터가 고려에 있었던 ‘흥천사(興泉寺)’의 터였음이 밝혀졌다. 옛 절의 이름이 흥천사로 밝혀지기는 하였으나 흥천사가 어떠한 절이었는지는 역사의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 단지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대개 고려시대의 기와 파편들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