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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재상.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우대언(右代言) 경사만(慶斯萬)의 아들이다. 아들에 경보(慶補), 경진(慶臻), 경의(慶儀)가 있다. 1354년 군부판서(軍簿判書)로 등용되었으며, 판추밀원사, 참지문하정사를 역임하였다. 지정사상의(知政事商議)로 승진하였는데, 이때 경성수축을 논의하자 그가 정세운, 유숙과 더불어 “병란과 기근으로 인하여 만일 축성하면 백성이 견디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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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1285년(충렬왕 11) 지공거 설공검(薛公儉) 밑에서 문과에 급제해 문한서(文翰署)에 속하였다. 충직하고 문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예(郭預)[1232~1286]의 손자이며, 한림원사(翰林院事)를 지낸 곽운룡(郭雲龍)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지태(郭之泰)가 있고, 손자에 곽충수(郭忠秀)가 있다. 원나라 세조(世祖)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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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선갑(先甲)이며, 호는 연담(蓮潭)이다. 초명은 왕부(王府)이다. 그의 아들에 곽운룡(郭雲龍)과 곽진(郭鎭)이 있는데, 곽운룡은 벼슬이 도진장(都津長)에 이르렀고, 곽진은 등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가 뒤에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었다. 1263년(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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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곽예의 신도비. 고려 후기의 문신 연담공(蓮潭公) 곽예(郭預)[1232~1286]의 생애를 기록한 비석으로 1884년(고종 21년)에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위치한 연담공 묘소 입구에 세워졌다. 비의 총 높이는 2.3m이며, 방형 받침돌[대좌] 위에 높이 176㎝, 폭 61㎝, 두께 32㎝의 오석이다. 금석문 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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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추암(秋巖)이다. 문하평장사 곽침(郭琛)의 아들이다. 1360년(공민왕 9)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정몽주(鄭夢周), 문익점과 동방(同榜)이었다. 1374년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1377년(우왕 3) 5월 곽추가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정희(鄭熙) 등 99명을 뽑았다. 1378년 밀직사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정당문학(政堂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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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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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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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승려. 전라도 고부 출생으로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가 1351년(공민왕 원년) 중국 원나라로 건너갔다. 1여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고승인 지공(指空)에게 법을 묻고, 석옥(石屋)선사를 찾아가 임제종(臨濟宗)의 선법을 전해 받았다. 1352년 귀국하여 1354년 황해도 해주 안국사(安國寺)에서 머물다가 1357년 입궐하라는 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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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살계법 범망경보살계본 합본(受菩薩戒法 梵網經菩薩戒本 合本)』 종이 앞·뒷면에 모두 인쇄되어 있는 등 인쇄상태 및 인쇄조건, 그리고 발문의 내용 등으로 보아 1306년 이후에 고려인들에 의해 원나라에서 판각하여 원나라 종이로 찍어낸 판본으로 추정된다. 후진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梵網經盧舍那佛說普薩心地戒品)』 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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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주 출신의 향리이자 효자. 청주의 향리로서 백성으로부터 조금도 재물을 취하지 않았다. 1378년(우왕 4) 왜구가 고을에 침입하자 어린 아들딸들이 옷을 붙잡고 울부짖었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달려가 모친을 업고 도망하여 숨어서 화를 면하였다. 이 일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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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4대 후손이다. 아들은 이자심(李資深)이다. 충렬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 사록(南京司錄)에 임명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우정언(右正言), 지내지(知內旨)를 역임하였다. 외직(外職)인 공주부사(公州副使)에 부임하여서는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여 백성들의 살림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다시 우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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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정주(貞州)이며, 자는 거실(居實)로 정주이씨의 시조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다방(茶房), 내시 등의 벼슬에 이어, 1217년(고종 4)에는 정융분도원사 조충(趙冲)의 막하로 있다가 그의 천거로 대영서승(大盈暑丞)이 되고, 백령도의 진장이 되어 처음으로 향교를 창설하여 제자를 교육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신호위 녹사에 올라 도병마사를 겸하고, 뒤에 우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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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익산(益山)이며, 상서좌복야 한림학사 승지 이주(李湊)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사록이 되고, 상서도사로 직사관을 겸하였으며, 뒤에 지홍주사(知洪州使)가 되었다. 원종(元宗) 때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포로가 되어 반란군의 선법(選法)을 맡았다가 김방경(金方慶)에게 붙잡혔으나 김방경의 아버지 이인의 제자였다 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그 후 청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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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청주사람으로서 본관은 청주이며, 자(字)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장경공(章敬公) 정해(鄭瑎)이고, 아버지는 청하군(淸河君) 정책(鄭幘)이며, 동생은 좌사간(左司諫) 정포(鄭誧)이다. 과거에 급제하고, 1330년(충혜왕 즉위년)에 성균관승(成均館丞)을 지내었으며, 이어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었으나, 내인 최안계(崔安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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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1363~1423]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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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곽예(郭預)[1232~1286]의 묘. 곽예는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좌승지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가는 도중에 죽었다. 시문에 능했으며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는데,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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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초명은 경(璟)이다. 고종 때 감찰어사(監察御使) 예부낭중(禮部郞中), 원종(元宗) 때 공부시랑(工部侍郞)·간의대부(諫議大夫),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조호(世子調護),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좌상시, 판삼사사(判三司事), 재추소사존(宰樞所司存),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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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의지(宜之)이다. 한강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낸 한사기(韓謝奇)이고, 아버지는 사숙공(思肅公) 한악(韓渥)이며, 아들은 문경공(文敬公) 한수(韓脩)이다. 형 한대순(韓大淳)과 동생 한중례(韓仲禮), 한방신(韓方信)이 있다. 음직으로 벼슬을 받고 충혜왕의 신임으로 호군에 특진하여 대호군(大護軍), 삼사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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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한강(韓康)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낸 한사기(韓謝奇)이고, 아버지는 사숙공(思肅公) 한악(韓渥)이며, 형 한대순(韓大淳), 한공의(韓公義), 한중례(韓仲禮), 아들로는 한휴(韓休), 한안(韓安), 한녕(韓寧), 한열(韓烈)이 있다. 과거에 급제하여 용략이 있어 상장군(上將軍)까지 올랐으며, 여러 관직들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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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명필가.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字)는 맹운(孟雲)이며, 호는 유항(柳巷)이다. 한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평간공(平簡公) 한공의(韓公義)이며, 중찬(中贊) 한악(韓渥)이 할아버지이다. 그의 아들은 한상환(韓尙桓), 한상질(韓尙質), 한상경(韓尙敬), 한상덕(韓尙德)이다. 1347년(충목왕 3) 나이 15세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필체가 뛰어나 충정왕이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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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문혜공(文惠公) 한강(韓康)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사기(韓謝奇)이며, 형은 한영(韓永)이다. 한악(韓渥)의 아들은 한대순(韓大淳), 한공의(韓公義), 한중례(韓仲禮), 한방신(韓方信)이다. 한대순은 관직이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에) 이르렀다가 충정왕 말년에 기장감무(機張監務)로 강직되었다. 한공의는 청성군(淸城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