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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정조가 도봉산 만장봉 부근에 이르러 동행한 황승원에게 지어 준 칠언 절구의 한시. 「도봉로차증장주(道峯路次贈長洲)」는 1792년(정조 16) 9월 10일, 정조(正祖)[1752~1800]가 광릉(光陵)으로 가기 위해 흥인문(興仁門)을 나서 미아리와 도봉산 아래를 지날 때 당시 행차에 대사간으로 동행한 황승원(黃昇源)[1732~1807]에게 지어 준 한시이다. ‘장주(長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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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윤순거가 도봉 서원의 돌 받침을 가공하여 석지를 조성하고 지은 기문. 「도봉서원 석지기(道峯書院石池記)」는 1630년(인조 8) 조선 후기의 문신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1596~1668]가 도봉서원에 있는 돌 받침[石洀]에 구멍을 내어 석지(石池)를 조성하고 그것에 부친 기문(記文)이다. 「도봉서원 석지기」는 윤순거의 시문집 『동토집(童土集)』 권5에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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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9월 12일 정조가 도봉서원에서 제사를 올리게 하며 지은 제문. 「도봉서원 치제문(道峯書院致祭文)」은 1792년(정조 16) 9월 10일, 정조(正祖)[1752~1800]가 광릉(光陵)에 참배하러 간 일이 있는데, 이틀 뒤 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봉서원을 지날 때 승지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며 직접 지은 제문(祭文)이다. 「도봉서원 치제문」은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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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장시.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누원(樓院)의 인근에 생겨난 장시(場市)를 말한다. 조선 후기 이 지역에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을 살려 서울 인근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장시가 생겨났고 상업이 번창하였다. 누원점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340번지에 있었다. 누원점(樓院店)이 있었던 지역 인근에 누원이 있었다. 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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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숙박 시설. 원(院)은 조선 시대 수령, 공용 여행 중인 관원, 기타 일반민의 여행 등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요 도로상에 설치된 일종의 숙박 시설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경내에는 다락원[樓院]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터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으로 향하는 주요 도로가 있었다. 또한 각 도로는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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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숙박 시설. 덕해원(德海院)은 도성에서 함경도 및 경기 북부로 이어지는 대로상에 위치하던 원우(院宇)이다. 조선 전기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누원(樓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덕해원이 설치된 정확한 시기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조선 개국 초에 원의 설치를 건의하는 도평의사사의 상소를 통해 조선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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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 일대에서 시회(詩會)를 갖고 『도봉첩(道峰帖)』을 제작한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여중(汝中), 호는 심재(心齋). 고조할아버지는 영조의 장인이던 달성 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徐宗悌)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명백(徐命伯), 할아버지는 서신수(徐信修)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서유녕(徐有寧)이며, 어머니는 송의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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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교통 및 숙박 시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속해 있었고, 해등촌면이 도봉구의 전신에 해당한다. 해등촌면에는 조선 시대 도로망에서 역(驛)과 함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 원(院)으로 누원이 있었다. 원은 주로 역과 역 사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주로 공무상 여행 중인 관원과 지방 수령이 여정에서 숙박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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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이기(李祺)는 조선 세종의 9남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의 장남인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의 차남이다. 부인은 양주 조씨(楊州趙氏)로, 조방우(趙邦佑)의 딸이다. 후처는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이기는 연산군 대와 중종 대에 걸쳐 주로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 대에 나주 기생 출신의 나인 김숙화(金淑華)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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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도봉구 지역을 관할하였던 양주에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성주].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만사(晩沙). 선조인 이총언(李悤言)이 고려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워 장군으로서 성주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성주(星州) 지역에 뿌리를 내린 집안이다. 고조할아버지 이소원(李紹元)은 문과 급제 후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냈고, 증조할아버지는 전옥서 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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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치호(稚浩), 호는 첨재(瞻齋). 증조할아버지는 이광하(李光夏)이고, 할아버지는 이집(李㙫)이다. 아버지는 병조 판서 이주진(李周鎭)이며, 어머니는 민진원(閔鎭遠)의 딸이다. 이은(李溵)[1722~1781]은 1740년(영조 16)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음보로 남평 현감을 지냈다. 1759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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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산 일대에서 시회를 갖고 『도봉첩』을 제작한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중(聖中), 호는 지포(芝浦). 증조할아버지는 은진 현감을 지낸 이의규(李宜揆)이고, 할아버지는 호조 좌랑을 지낸 이보순(李普淳)이다.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숭우(李崇祐)로, 현감 이보흥(李普興)의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계보상 이보흥의 손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화천군(花川君) 김협(金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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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문보(文甫), 호는 탄옹(炭翁). 증조할아버지는 이갑(李搕)이고, 할아버지는 이광하(李光夏)이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집(李㙫)이며, 어머니는 군수 김수빈(金壽賓)의 딸이다. 이주진(李周鎭)[1692~1749]은 1714년(숙종 40)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725년(영조 1) 증광 문과에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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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노천(老泉), 호는 취촌(醉村). 증조할아버지는 이안눌(李安訥)이고, 할아버지는 이합(李柙)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판윤 이광하(李光夏)이며, 어머니는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딸이다. 이집(李 土+集)[1664~1733]은 21세 되던 1684년(숙종 10)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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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서(景瑞), 호는 하서(荷棲). 초명은 조준(趙㻐)이었으나 후에 조경(趙璥)으로 개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중운(趙仲耘)이고,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다. 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조상기(趙尙紀)이며, 어머니는 임취(任冣)의 딸이다. 형은 조경(趙瓊)이다. 조경[1727~1789]은 영조 대부터 정조 대에 걸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