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851
한자 醉時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42-2[충효동 396-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9년 - 권필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2년 - 권필 사망
배경 지역 취가정 -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42-2[충효동 396-1]지도보기
성격 한시(漢詩)
작가 권필(權韠)

[정의]

조선 중기 문인인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이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시집을 읽는 꿈을 꾸고 난 뒤에 지었다는 시.

[개설]

「취시가(醉時歌)」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무고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의 원통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취시가」와 권필의 화답 시는 '취가정(醉歌亭)'에 시액(詩額)으로 걸려 있다.

[구성]

「취시가」는 권필의 문집 『석주집(石洲集)』 7권에 칠언절구의 시서(詩序)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석주집』 7권에는 권필이 꿈에서 본 김덕령의 시와 권필의 화답 시를 쓴 경위를 담고 있는데, 「취시가」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꿈 속에서 작은 책 하나를 얻었는데, 곧 김덕령 장군의 시집이었다. 그 첫 번째 편이 「취시가」였는데, 내가 여러 번 반복해 읽어 뜻을 알게 되었다[몽득일소책(夢得一小冊), 내김덕령시집야(乃金德齡詩集也), 기수일편왈취시가(其首一篇曰醉時歌), 여삼복득지(余三復得之)].”며 꿈의 내용과 꿈에서 읽은 시가 설명되어 있다. 두 번째는 꿈에서 읽은 김덕령 장군의 「취시가」 원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잠에서 깬 뒤 서글픈 마음에 시를 지었다[其旣覺悵然悲之, 爲作一絶]는 내용으로, 꿈을 꾸고 난 뒤 시를 짓게 된 경위를 설명한 부분이다.

[내용]

권필이 꿈에서 읽은 김덕령「취시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취시가차곡무인문(醉時歌此曲無人聞)[취해서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를 듣는 이 없구나.]/ 아불요취화월(我不要醉花月)[나는 꽃과 달에 취하고 싶지 않고]/ 아불요수공훈(我不要樹功勳)[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다오.]/ 수공훈야시부운(樹功勳也是浮雲)[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구름이요]/ 취화월야시부운(醉花月也是浮雲)[꽃과 달에 취하는 것도 뜬구름이라.]/ 취사가무인지(醉時歌無人知)[취해서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아는 사람 없네]/ 아심지원장검보명군(我心只願長劍奉明君)[내 마음은 다만, 긴 칼로 명군을 받들길 원할 뿐이네.]

권필은 꿈에서 깬 뒤 다음과 같이 시로써 화답하였다고 한다.

장군석일파금과(將軍昔日把金戈)[장군은 지난날에 창을 잡고 나섰건만]/ 장지중최나명하(壯志中摧奈命何)[장대한 뜻 중도에 꺾이니 운명을 어이하랴]/ 지하영령무한한(地下英靈無限恨)[지하에서 영령이 품었을 끝없는 한]/ 분명일곡취시가(分明一曲醉時)[취시가 한 곡조에 분명히 드러나네.]

[특징]

「취시가」는 조선 중기 정철(鄭澈)[1536~1593]의 문인이자 시인인 석주 권필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웠으나, 이몽학(李夢鶴)[?~1596]과 내통하였다는 무고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의 시집을 읽는 꿈을 꾸고 난 뒤에 지었다는 시이다.

[의의와 평가]

「취시가」가 걸려 있는 취가정김덕령의 후손인 김만식 등이 1890년에 창건한 누정이다. 누정의 이름은 「취시가」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시는 국난에 큰 공을 세웠으나 결국 무고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김덕령을 후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기리고 안타까워하였는지를 잘 드러내는 시이다. 한편, 「취시가」정철의 문인으로서 뛰어난 시재를 가졌으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임진왜란을 거치고, 선조와 광해군 때의 험난한 정치적 상황을 겪으며 평생 벼슬을 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강화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살았던 권필의 삶과 접점을 이루면서 시의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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