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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리 정서 밀양 손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80
한자 亭西里亭西密陽孫氏集姓村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 of Miryang Son Clan in Jeongseo, Jeongseo-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연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680년경연표보기
마을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정서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동성 마을
면적 2.25㎢
가구수 약 30가구[밀양 손씨]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밀양 손씨 집성촌.

[개설]

악양면은 서기 200년경 가야 시대에 부족 국가 소다사현(小多沙縣)의 중심지로서 다사촌이라 하였고, 1633년(인조 11) 기록에 따르면 상촌·성지촌(城址村)·성후촌(城後村)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북쪽으로 화개면, 동서는 적량면하동읍, 서남쪽은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과 이웃한다. 악양은 섬진강과 함께 넓은 들을 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 중국의 악양을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명칭 유래]

옛날 악양의 중심 지역이던 만수동(萬壽洞) 숲 속에 있는 큰 정자를 중심으로 서쪽을 정서(亭西), 동쪽을 정동(亭東)이라 칭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마을에는 우물터인 정서정(亭西井), 백제 영토였을 때 설치했던 감옥 터인 다사옥(多沙獄), 마을 뒷산 솔봉에 고려 때 쌓은 계명성(鷄鳴城)의 흔적이 있다.

[형성 및 변천]

1680년(숙종 6)경 밀양 손씨 중시조 손경훈(孫競訓)의 12세손인 손만태(孫萬泰)·손만임(孫萬臨) 형제가 정서에 옮겨 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정서가 속한 정서리는 청동기 시대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어, 삼한 시대 변한(弁韓)에 속해 악양 지역을 통치하던 낙노국(樂奴國)의 중심지였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 구역을 정비하면서 원정서(原亭西)·상신(上新)·주암(周庵)·성덕(城德)을 통합하여 정서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정서지리산 성제봉[1,115.2m]을 등지고 서남쪽으로 섬진강을 바라보며 악양면 중앙부에 깊숙이 자리 잡은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 앞에 흐르는 악양천 변에 취간림(翠澗林)이라는 인공 숲이 있고 숲 속에 현대식 정자인 팔경루(八景樓)가 있다. 옛날 섬진강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어 무딤이들로 불리던 넓은 평야는 제방 축조와 경지 정리로 우량 농지가 되었고, 산기슭에 있는 농경지는 묵계댐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는다.

[현황]

정서리 정서는 2010년 12월 현재 면적이 2.25㎢이며 총 198가구에 412명[남자 194명, 여자 21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밀양 손씨는 약 30가구이며 이 밖에 김씨, 강씨, 이씨, 박씨, 정씨, 노씨, 서씨, 오씨, 유씨, 조씨, 최씨 등이 서로 인척 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정서는 악양면사무소를 비롯한 농업협동조합, 우체국, 경찰 지구대, 초등학교, 중학교 등 공공 기관이 많아 이곳에 근무하는 다른 성씨들이 비교적 다양하게 분포한다. 해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밀양 손씨 후손들이 재실인 무송재(茂松齋)에서 입향조 손만임을 비롯한 선대 조상들에게 제사 지낸다.

정서리는 1960년대 잠업과 보리농사가 성했고 근래에는 대봉감의 명산지로 전국에 알려졌다. 마을 인근에 전국의 관광객이 찾는 최참판댁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정서를 중심으로 하동읍 방향으로 군도 4호선, 화개면 방향으로 지방도 1047호선,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방향으로 지방도 1047호선이 뻗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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