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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목조기와 형태로 된 정자. 이 정자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이며, 청계(淸溪) 이세후(李世垕)가 1902년에 목조기와형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곳에 있는 정자라 하여 계상정이라고 칭한다. 이세후가 관직생활 중 다른 여러 관료들과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이견이 발생하자,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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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자. 1941년 이기환이 지은 목조 기와형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만수정(晩修亭)이란 이름은 뒤늦게 인격을 수양한다는 시의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기환은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이 재실을 짓게 되었는데, 그의 선조들은 근면, 빈객 맞이, 그리고 제사 등에 있어서 향리사람들로 칭송을 받는 이들이었다. 또한 명리 보다는 의리를 중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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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초문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방어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에서 방산재로 부르게 되었다. 1967년에 재령이씨 이상열이 선조의 별세 후에 이 재실을 지었다. 그의 선조는 신의가 두텁고 가풍을 중시하는 점에서 향리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이들이었다. 또한 명리보다는 의리를 중시하였고, 이웃사람들과 잘 지내는 다정다감한 성품도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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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소재한 봉남서원의 기둥과 벽에 장식으로 붙여진 한시. 자연적 환경이 수려한 곳에서 학문에 정진한다면 학식과 덕망이 훌륭한 사람이 배출될 것이 분명하니, 『시경』과 『예경』의 중요함과 수덕(修德)의 필요성을 노래한 것이다. 한시는 중재(重齋) 김황(金榥)이 지었다. 8언 8행으로 된 한시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봉산 굽이굽이 서리고 솟아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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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자. 어려움에 대처하는 지사의 뜻과 기상을 말하는 점에서 세한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1924년에 재령이씨 이성률(李聖律)의 백부인 청호처사(淸湖處士) 이씨가 지은 목조기와형 건축물이다. 청호는 문장에 집착하는 선비가 아니고 평소 덕행에 힘쓰는 인물이었으며, 세한정은 생전에 학문과 덕행을 닦는 서실로 지었다. 추운 겨울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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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봉대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86년에 이현도·이현금이 지은 목조기와형 건축물이다. 이서규의 호를 따서 송강재라 부르게 되었다. 이서규는 학행과 효행이 모범적이어서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들은 처사였는데, 그의 후손들이 선조의 모범적인 삶을 이어받고 기리기 위하여 건축한 재실이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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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거곡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76년에 지은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조상 묘의 소재지인 송현과 독계의 이름을 따서 송계재라 이름을 지었다. 재실을 지은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기문이 없어 이종호가 기문을 붙였다. 선조들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후손들이 힘을 모아 세우게 된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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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거곡마을에 있는 재령이씨 재실. 이병기가 그의 9대조인 이형규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1984년에 건립한 재실이다. 이형규는 영명하고 지혜로움이 뛰어나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의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오래 그 관직에 있지 아니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수신에 힘쓴 사람이었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한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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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청주한씨의 열행을 기록한 비와 비각. 한응(韓譍)의 딸 청주한씨의 절개를 기념하기 위해 1736년에 세웠고, 1985년에 중건한 정려이다. 1593년 6월 16일, 왜적이 청주한씨를 끌고 가려하였지만, 끝까지 거부하다 자결하였다. 이에 영조가 정려를 내렸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746-4번지에 있다. 세월이 오래되어 비각이 훼손되자 1985년에 중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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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에 있는 열녀의 기념비. 칠원윤씨 문중 여인의 종부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1870년에 건립되었다. 칠원윤씨 돈암공의 5대손부이고 한석건의 부인인 윤씨가 남편이 병으로 숨을 거두자 자신도 곧 따라 죽으니 영조가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 고전적인 기와정려 형태로 8개의 기둥을 사용하여 건축하였으며, 안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의 입구에 세운 점과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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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초문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87년 초문마을에 살아 온 재령이씨 후손들이 선조들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세운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성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넉넉한 음식을 차려 놓아도 후손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모아 재를 세우는 일을 하였는데, 이러한 일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떳떳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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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1920년 청원마을에 삶의 터전을 닦아 온 재령이씨의 후손들이 지은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선조들의 덕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후손들이 힘을 모아 건립하였다. 청원마을은 재령이씨가 300여년을 세거하던 땅이다. 고전적인 기와집 안채와 바깥채 2채로 건축하였으며, 방의 주변에 마루가 둘러져 있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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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치재(致載), 호는 농아(聾啞). 이만형의 2남이다. 어릴 때부터 자율적인 학습태도로 공부하므로 주위 사람들이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평을 하였고, 밖으로는 중후하고 안으로는 민첩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부지런한 학행을 통해 과거에 응시한 적은 있었으나, 곧 뜻을 바꾸어 향리에서 부모를 봉양하면서 모범적인 일상활동을 하였다. 이원조가 쓴 『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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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사영(士英), 호는 묵인당(黙忍堂). 할아버지는 이태형, 아버지는 이용이다. 진주 초문리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학행과 덕행에 힘써 당시 향리에 이름이 났으며, 이것은 그의 행장에 있는 자질이 청아하고 선을 즐기며, 시기를 멀리하는 수행에 전념함이라는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또 제자에 대한 공부가 엄격하고 제자의 능력과 적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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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재령. 자는 사영(士英), 호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이희만이다.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고 강개하고 대범한 면모를 갖추었더니 1592년 임진왜란 때 아우인 이분, 종제인 이홍훈과 더불어 곽재우를 따라 화왕산성에 들어가 왜적에 대항하였다. 또, 이순신을 따라 바다에서 싸워 군공을 세웠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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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달후(達厚), 호는 갈모당(葛茅堂). 갈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종손이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성리학에 뜻을 두고 깊이 연구하였다. 외삼촌인 모계처사 조석기(曺錫基)와 광양의 김성탁으로 부터 갈암 이현일의 학문을 배웠다. 말년에는 자기의 방에 갈모(葛茅)라는 문자를 붙이고 끝까지 학문에 정진하였다. 특히 대학의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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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대래(大來), 호는 청사(淸榭). 할아버지는 이현근, 아버지는 이정규이다. 갈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배소 광양에서 이현일에게서 수학하였고,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또한 시와 예절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행장에 나타나 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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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이중광, 할아버지는 이현재, 아버지는 이명규이다. 1681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영조 병오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좌랑에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향리인 진주에서 뜻있는 학우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특히 향약을 수립하는 등 미풍양속을 선양하는데 심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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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재령. 할아버지는 현감 이공보(李公輔), 아버지는 이득분(李得賁), 남편은 이유성(李惟誠)이다. 진주 초문에 살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지성으로 섬겼고, 시집가서도 부인의 도리를 잘 지키면서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지아비가 죽자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빈소에서 16일 동안 엎드려 쌀알 하나도 목으로 넘기지 않았다. 3년상을 치르고 난 후 3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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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경현(景顯), 호는 행정(杏亭). 할아버지는 이간, 아버지는 이유성이다. 어머니 이씨부인은 현모양처로 그 행실이 『진양지(晋陽誌)』에 잘 나타나 있다. 6세와 9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이대기 아래에서 품행이 단정하고 영리한 소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하였다. 꾸준한 수행의 과정을 거쳤으며, 향시에 합격한 후에 향리인 진주에 머물면서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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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부. 본관은 재령. 이중광(李重光)의 딸이며, 한시회(韓時晦)의 부인이다. 시부모를 섬기는데 지극한 효성으로 하였다. 시부모가 돌아가자 친정으로 와서 부모를 섬김에 또 효성을 다하였다. 나이 70이 되었어도 의복과 음식을 친히 마련하였으며 부모가 돌아가자 3년상을 치렀다. 숙종 대에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복호(復戶)를 주고 숙부인(淑夫人)을 증여하였다. 『진양속지(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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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경휘(景輝), 호는 행와(杏窩). 할아버지는 이간, 아버지는 이유성이다. 이중광(李重光)은 그의 아우이다. 어머니 이씨부인은 현모양처로 『진양지(晋陽誌)』에 그 행실이 잘 나타나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아래서 성장하며, 성실하게 학문을 익히고 실천하였다. 유일(遺逸: 재야의 어진 선비)로 천거되어 재랑(齋郞)을 제수 받고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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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재령. 아버지는 이태로(李台老)이다. 하응림(河應霖)의 아내로 일찍이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를 홀로 봉양하며 살았다. 늘 남편의 후사가 없는 것을 한탄하다가 남편의 기일을 맞아 제사를 지내고 곡을 하고는 자결하였다. 효열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를 받았다. 『삼강록(三綱錄)』에 실렸고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녀조(烈女條)」에도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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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재령. 아버지는 이덕관이다. 영조 대 무과급제이후 전중시어사, 사헌부 감찰, 웅천군수, 기장군수 등의 관직을 거쳤다. 부임하는 지역마다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다. 그의 행장에는 ‘임기가 되어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자 백성들이 길을 막고 머물기를 원함’이라고 쓰여 있어 지방관으로서 모범적인 면모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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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낙천(樂天), 호는 송재(松齋). 정랑(正郞) 이세후(李世垕)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이홍필, 아버지는 이동연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학문에 진력하였다. 향리에서 조용히 수행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선비로 예의범절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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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재령. 자는 이문(以聞), 호는 제헌(霽軒). 성재(誠齋) 이예훈(李禮勛)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이강, 아버지는 이중복이다. 어버이가 병들었을 때 변을 맛보아 가며 보살피고, 하늘에 쾌차를 빌었다. 상을 당했을 때에는 여묘에서 제를 마쳤다. 이러한 행실로 인해 향리에서 유학의 실천이 우수하다는 평을 들었다. 특히 이형의 행장에는 ‘품성이 강직하고 행동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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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재령. 자는 백건(伯建). 할아버지는 이종이고, 아버지는 이희억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가동(家僮)을 거느리고 화왕산성 진지로 달려가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 제수되어 왜적에 대항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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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자. 이이로(李彛老)가 증조부 송재공(松齋公)을 위해 지은 목조기와형으로 지은 정자이다. 손자인 이기환이 후에 이건하여 현재의 위치에 이 정자를 두었는데, 초기에 건축한 장소가 가파르고 땅이 비좁아 불편한 점이 그 이유였다. 후손들이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마하고 심신을 수양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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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재령이씨의 정사(精舍). 미암공(薇庵公)의 아들 이종호·이일호가 선친을 기리기 위해 1938년에 목조기와형으로 지은 수학(修學)과 수행(修行)의 장소이다. 청원마을의 한 지명인 죽동을 따라 죽동정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종호와 이일호가 지은 목조기와형 수학 수행처이다. 미암공은 학문에 독실하고 의리 있는 행동을 중요시하는 선비여서 마을 사람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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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재령이씨의 서당. 이 정자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이며, 1970년에 이철호, 이기환이 지은 목조기와형으로 지은 학문연마의 장소이다. 청원마을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1627~ 1704] 선생이 도의(道義)를 강론하던 곳이며, 후일이 그의 영향을 받은 도내의 선비들이 모여 유계를 조직하였는데, 주선자는 후손 이철호, 이기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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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재령이씨의 재실. 이 정자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이며, 1853년에 건축된 목조기와형 재실이다. 맑은 계곡을 끼고 있어서 청계재라 부른다. 쳥계재는 건축 당시에 3간이었으며 그 뒤에 5간으로 증축되었다. 그 후에 이 재실의 뒤에 서실을 짓고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고전적인 기와집 형태로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방과 대청마루가 있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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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봉면 봉곡리에 있는 정자. 이 정자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초문마을이며, 1986년에 건축된 목조기와형 재실이고, 제사 회의 강학 등의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청사 이선생의 호에 따라 청사정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랜 전에 청사정사가 있었는데, 3백년이 지나자 다시 손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에 후손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3간으로 재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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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수면 청원리에 건축했던 사당. 이 사당의 소재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이며, 조선시대에 건축되었던 사당이었으며, 고종시에 철폐되어 현재 복건사업이 진행 중이고, 비석이 남아있다. 성종시의 명신인 홍문관 부제학 이관재와 그 후손인 행와 행정을 배향하여 제사지내던 사당으로 조선시대에 건축되었다. 그 후 고종시에 이 사당이 철폐되었는데, 후손인 이기환이 이 사실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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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목조기와 형태의 정자. 1885년에 이중광이 건립한 것으로, 이중광의 호를 따라 행정(杏亭)으로 불린다. 행은 복숭아와 은행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로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가르친다는 말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학문교육의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 행정 이중광은 인목대비 폐모론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당시 관직에 있었다. 비록 의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