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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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歷史-記錄,三陟邑誌類 |
영어공식명칭 | Samcheok Eupjiryu, The Record of Samcheok Histo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의 시공간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요목별로 기록한 읍지.
[삼척 지역 읍지류]
읍지는 특정 지역의 시공간과 관련된 제반 사항, 다시 말하여서 어떤 지역의 인간 및 자연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 현상 및 역사 문물 전반 사항을 요목별로 기록한 지리지이다. 이러한 읍지는 조선시대에 전국지리지나 도지(道誌) 편찬을 위한 기초 자료로 작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 작성된 읍지는 매우 간략한 형태로 일정한 체제와 양식 아래에서 전국 또는 거도 차원에서 동시에 작성되는 관찬읍지의 간행 목적이 아니었다.
한편 16세기에 들어오면 전국지리지 편찬을 위한 기초 자료로서의 관찬읍지와는 다른 개인 편찬의 사찬읍지가 작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6세기 후반 이후에는 각 군·현에서 활발하게 편찬되었다. 이들 사찬읍지는 찬자(撰者)의 개성과 편찬 목적이 반영되어 있고, 수록 내용도 다양하고 풍부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따라 삼척 지역에서도 다양한 읍지가 편찬되었다. 삼척 지역의 읍지가 수록되어 있는 전국지리지로는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이 있다. 또 삼척 읍지가 수록되어 있는 도지로는 『관동지』가 있다. 한편 사찬읍지로는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陟州誌)』, 김종언(金宗彦)의 『척주지(陟州誌)』, 심의승(沈宜升)의 『삼척군지(三陟郡誌)』, 최만희(崔晩熙)의 『척주지』, 김정경(金鼎卿)의 『삼척향토지(三陟鄕土誌)』, 최만희·홍종범(洪鍾凡)의 『진주지(眞珠誌)』 등이 있다. 또 근래에 발간된 삼척 지역 관찬읍지로는 1985년 삼척군이 편찬한 『삼척군지』, 1997년 삼척시가 편찬한 『삼척시지(三陟市誌)』가 있다.
[허목의 『척주지(陟州誌)』]
허목이 남긴 『척주지』는 삼척 지역 최초의 사찬읍지이다. 허목은 삼척부사로 부임하고 약 1년 8개월이 지난 1662년(현종 3) 6월에 『척주지』를 편찬하였다. 허목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척주지』를 편찬한 것은 삼척 지역을 효율 높게 통치하는데 필요한 삼척의 역사·풍속 등 고사(古事)를 알 수 있도록 체계화해서 정리된 기초 자료 문헌이 없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삼척 관련 내용이 소략하여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 여러 지방의 읍지를 편찬한 그의 스승 한강정구(鄭逑)[1543~1620]로부터 내려오는 학풍에도 일정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와 함께 『척주지』 편찬에는 읍지를 통해 삼척 지역의 풍속을 교화시키고 나아가 안민(安民)과 선속(善俗)을 이루려던 허목의 의도도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허목은 관내 여러 지역을 직접 답사하며 부로(父老)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조사하여 편찬 자료로 활용하였고, 삼척의 노리(老吏)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잡기고사(雜記古事)도 입수하여 자료로 사용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을 『척주지』 편찬에 참고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편찬된 『척주지』는 상·하권 1책으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서문이 있고, 말미에는 울릉도 관련 내용을 기록한 부록이 첨부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타 지방 읍지와 달리 목록은 없고, 본문에서도 뚜렷한 항목 설정 없이 서술되었다. 수록 내용은 삼척 지역사와 이지(里誌)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는 당시의 다른 지방 읍지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체재(體裁)이다.
삼척 지방사는 1052년(고려 문종 6)부터 허목이 삼척부사로 재임하던 1662년 당시까지의 삼척 지역 역사 사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단순히 삼척 지역 역사 자체만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당시의 국정(國政)과 관련하여 서술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허목이 『척주지』에서 삼척 지역의 역사 서술에 중점을 둔 것은 그가 읍지 기능을 한 지방의 역사로 인식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지는 삼척 관내 10개 리(里)별로 각각 작성되어 있으며, 수록 내용이 다양하고 자세하다. 특히 각 리의 자연 환경과 풍속·예속 관련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매우 다양하고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군사 관련 내용 서술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행정, 경제 관련 내용은 다소 빈약하다. 이를 볼 때 허목이 『척주지』를 편찬한 목적이 단순히 지방 통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허목은 『척주지』 편찬을 통해 관내 각 리의 자연 환경, 산업, 역사, 문화, 주민성, 풍속 등을 파악하여 풍토 및 문화의 특징을 이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즉 허목은 삼척부사로서 원활한 통치를 통해 안민과 선속을 이루기 위해 관내 각 리의 풍토·문화·역사 조건을 파악하는 것이 요체라고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이지 중심의 『척주지』를 편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삼척 지역사와 이지 중심의 체재가 독특한 『척주지』는 당시의 타 지방 읍지들과 비교할 때 많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척주지』는 매우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활용하였다. 특히 자료를 인용할 때는 전거를 반드시 명시하였고, 어떤 항목을 서술할 때 다른 이설이 있으면 함께 수록하는 등 서술 내용의 객관성과 실증성을 높이려고 하였다. 둘째 일부 항목의 내용 서술에서는 허목 자신의 주관을 설명으로 덧붙이기도 하였다. 당시에 편찬된 읍지 대부분이 사실 자료만 제공하고 편찬자 자신의 주관 기술이나 설명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척주지』만의 독특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척주지』에는 허목의 학풍에서 오는 성리학, 불교, 도교의 영향이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다. 넷째 『척주지』는 당시의 다른 읍지들과 비교하여서 동해(東海), 조류(鳥類), 기후, 수토병(水土病) 등 자연 환경과 관련된 내용을 풍부하게 수록하였다. 다섯째 『척주지』에는 당시의 다른 지방 읍지들이 중요하게 여겨서 다양하고 자세하게 수록하던 인물 관련 내용이 매우 소략하다. 여섯째 당시의 타 지방 읍지들과 달리 『척주지』에는 삼척 지역의 지식 계층인 재지양반(在地兩斑) 또는 재지사족(在地士族) 관련 내용이 전혀 수록되지 않았다. 일곱째 『척주지』에는 당시 대부분의 읍지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던 시문(詩文)이 거의 수록되지 않았다. 여덟째 『척주지』에는 허목이 삼척부사로 재임하던 당시 삼척의 행정, 경제, 군사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가 않다.
이러한 특징의 『척주지』는 허목이 살던 당시까지 삼척의 역사, 문화 등을 집대성한 삼척 지역 최초의 사찬읍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에 따라서 『척주지』는 이후 삼척 지역에서 편찬되는 모든 읍지의 모범이 되었다. 또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사료 가치도 높아 삼척 지역의 역사와 문화 이해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종언의 『척주지(陟州誌)』]
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 거주하던 재지사족 출신의 송고(松皐)김종언도 삼척 지역의 읍지인 『척주지』를 편찬하였다. 김종언의 『척주지』는 상·하권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김종언이 『척주지』를 언제 편찬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본문 내용과 그의 사망 연대로 볼 때 19세기 후반에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상권에는 허목의 『척주지』 서문과 함께 김종언 자신이 쓴 서문을 수록하였다. 그다음에는 ‘동국팔로각군현주부도리기(東國八路各郡縣州府道理記)’, ‘기내성위궁전략(畿內城圍宮殿畧)’, ‘본주지(本州誌)’를 수록하였다. 그리고 말미에는 ‘본조국기(本朝國忌)’를 수록하였다. ‘본주지’에서는 허목의 『척주지』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면서 누락된 사항이나 소략한 부분, 허목 이후의 기사를 ‘추록(追錄)’ 또는 ‘부(附)’라는 부호를 달고 첨가하였다. 김종언은 서문에서 허목의 『척주지』에 빠진 내용이나 허목 이후의 기사를 채집하여 덧붙였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김종언의 『척주지』를 허목의 『척주지』 속편이라고도 한다.
한편 하권에는 먼저 삼척도호부의 위치와 건치연혁에 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고호(古號), 성씨, 산천, 사찰, 성지(城池), 진보(鎭堡), 봉수(烽燧), 단묘(壇廟), 능묘(陵廟), 궁실(宮室), 누정(樓亭), 형승(形勝), 도서(島嶼), 울릉도, 역원(驛院), 풍속, 고적(古蹟) 등을 수록하였다. 특히 각 항목과 관련된 시문을 풍부하게 수록하였다. 항목 대부분이 허목의 『척주지』에서는 누락되거나 소략한 부분이다.
[심의승의 『삼척군지(三陟郡誌)』]
『삼척군지』는 당시 삼척군수로 있던 심의승이 1913년부터 자료를 조사·수집하여 1916년 10월에 편찬한 삼척 지역의 사찬읍지이다. 등사본으로, 193쪽이다. 국한문 혼용이지만 한글에는 일본어를 병기하였다. 이 『삼척군지』의 편찬에는 심의승의 친지인 심지황(沈之潢)[1888~1964]과 당시 삼척군 직원들의 도움이 있었다.
심의승은 서문에서 『삼척군지』를 편찬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시대와 문물은 변화하는데 후배들이 참고하여 증명할 문헌이 없다. 둘째 허목의 『척주지』 이후 읍지가 편찬되지 않아 고을의 알릴 만하고 기록할 만한 것들이 정리되지 못하였다. 셋째 읍지가 없어 지방관들의 치적이 지지부진하고, 후배들의 선배 책망이 엄중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삼척군지』 목차에는 서문에 이어 삼척군, 부내면, 근덕면, 원덕면, 상장면, 하장면, 소달면, 노곡면, 미로면, 북삼면, 본군보유(本郡補遺), 삼척군선생안, 인물지, 사조(詞藻),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척군’ 항목에서는 연혁, 위치광무(位置廣袤), 산악하천, 해류조석(海流潮汐), 기상(氣象), 씨족, 행정, 산업, 교육, 군사, 교통기관, 재상이사(災祥異事), 명승구적(名勝舊蹟) 등을 다루었다.
‘인물지’에는 거족명조(巨族名祖), 각족시조(各族始祖), 달사(達士), 문사(文士), 효자, 일사유사(逸士遺事), 근대달사(近代達士), 현대인사 등을 수록하였다. ‘사조’ 항목에는 시문이 수록되었다. 이처럼 『삼척군지』는 면지(面誌)와 인물·시문 중심의 읍지이다.
[최만희의 『척주지(陟州誌)』]
최만희는 1946년 3월에 삼척 지역 사찬읍지인 『척주지』를 편집하였다. 등사본이며,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다.
목록은 건치연혁, 군명(郡名), 성씨, 풍속, 형승, 산천, 기후, 읍면리, 호구, 군액(軍額), 토지, 부세(賦稅), 토산(土産), 제언(堤堰), 도로, 교량, 궁실, 단사(壇祠), 신사(神祠), 공해(公廨, 관가 소유의 건물), 관공서, 창고, 성곽, 시장, 역원, 우편(郵便), 정거장, 봉수, 관방(關防, 요새), 고적, 교원(校院), 학교, 사찰, 누정, 영백(營伯), 읍재(邑宰), 인물, 문과, 무과, 사마(司馬), 음사(蔭仕), 수직(壽職), 우거(寓居), 적거(謫居), 유행(儒行), 문행(文行), 사원(詞苑), 필원(筆苑), 자선(慈善), 충의(忠義), 효행, 효부, 열행(烈行), 규행(閨行), 기류(妓流), 명석(名釋), 향안(鄕案), 능묘, 비판(碑版), 책판(冊板), 향음(鄕飮), 사변(事變), 재이(災異), 제영(題詠), 총담(叢談)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정경의 『삼척향토지(三陟鄕土誌)』]
『삼척향토지』는 1955년에 당시 삼척교육감으로 있던 김정경이 편찬한 삼척 지역 사찬읍지이다. 국한문 혼용이며, 총 432쪽으로 되어 있다. 김정경은 서문에서 일제의 강탈과 6.25 전쟁으로 삼척 지역의 향토 문화가 위기를 맞닥뜨림에 따라 지역 사회와 향토 문화, 경제 재건, 군민의 자립·자활에 도움이 될까 하여 『삼척향토지』를 편찬한다고 밝혀 놓았다.
목차는 서문에 이어 삼척군 연혁, 삼척군세일람(三陟郡勢一覽), 삼척군청 및 각 읍면, 총담, 재이, 사변, 관방, 성씨, 제언, 명승고적, 토산물, 풍속, 역원, 봉화(烽火), 각 관공서, 문화, 기업체, 정계(政界), 향교, 서원, 영백, 읍재, 인물록(人物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승고적’ 항목에는 형승, 천연물(天然物), 누정, 비(碑), 사찰, 능묘, 각(閣), 고적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문화’ 항목은 교육, 기계(棋界), 서도(書道), 화도(畫道), 언론기관, 보건, 체육 등으로 구성되었다.
[최만희·홍종범의 『진주지(眞珠誌)』]
『진주지』는 1963년 6월에 삼척군 유도회(儒道會)가 발행한 삼척 지역 읍지이다. 당시 편집은 최만희와 홍종범(洪鍾凡)이 맡았다. 4권 1책이며, 순한문으로 작성되었다.
1권에는 건치연혁, 군명, 성씨, 풍속, 형승, 산천, 읍면리, 호구, 군액, 토지․부세, 토산, 진상(進上), 제언, 도로, 영로(嶺路), 궁실, 단사, 공해, 관공서, 기업체, 창고, 성곽, 시장, 역원, 정거장, 발참(撥站)[소식을 빨리 전하기 위하여 말을 갈아타도록 운영된 역참], 우체(郵遞), 봉수, 관방, 조련홀기(操鍊笏記)[조련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 고적 등이 담겨 있다. 2권에는 누정, 교원, 학교, 사찰, 교회, 영백, 읍재, 찰방, 영장(營將), 경찰서장, 세무서장, 교육감, 참봉, 관원 등이 수록되어 있다.
3권은 문과, 무과, 사마, 음사, 수직, 우거, 적거, 문행, 필원, 자선, 충의, 효자, 효부, 효녀, 열행, 규행, 기류, 명석, 향안, 달사, 읍면장, 재임(齋任)[성균관이나 향교 같은 곳에서 숙식하며 그곳의 일을 맡아 하던 유생] 등으로 구성되었다. 4권에는 능묘, 비판, 책판, 문류(文類), 사변, 재이, 제영, 총담, 별곡(別曲) 등이 수록되었다.
[삼척군지편찬위원회의 『삼척군지(三陟郡誌)』]
『삼척군지』는 삼척군이 1985년 2월에 발행한 삼척 지역 관찬읍지이다. 당시 삼척군은 삼척군지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4년 동안에 걸친 자료 조사와 수집 끝에 『삼척군지』를 발행하였다. 이 『삼척군지』의 편집은 김일기(金馹起), 박재문(朴載文), 김진문(金振文) 등이 담당하였다. 면수는 총 857쪽이다.
목차는 서문·범례·고지도·원색화보에 이어 총론, 정치·행정, 경제, 교육·문화·체육·종교, 사회·보건, 고사(古事)·전설, 명승고적, 인물, 문예, 읍면리지(邑面里誌), 편년사 등 11개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척시지발간위원회의 『삼척시지(三陟市誌)』]
『삼척시지』는 삼척시가 1997년 12월에 발행한 삼척 지역 관찬읍지이다. 당시 삼척시는 삼척시지발간위원회를 조직하고 1년 동안의 노력 끝에 『삼척시지』를 발행하였다. 면수는 총 1500쪽에 이른다.
목차는 역사, 지리, 정치․행정, 산업·경제, 사회·교육, 문화·예술, 인물 등 총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읍면동지와 편년사가 첨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