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20
한자 張鳳翰
영어공식명칭 Jang Bonghan
이칭/별칭 문거(文擧),개옹(㝏翁),개옹 선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6년연표보기 - 장봉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9년 - 장봉한 회연초당에 가서 정구의 문인이 됨
활동 시기/일시 1593년 - 장봉한 의병을 일으킴
활동 시기/일시 1594년 - 장봉한 곽재우와 악견산성을 보완 증축
활동 시기/일시 1610년 - 장봉한 박이립의 무고에 대해 스승 정구를 변무하는 상소 올림
활동 시기/일시 1618년 - 장봉한 서재 구지재를 지음
몰년 시기/일시 1644년연표보기 - 장봉한 사망
출생지 장봉한 출생지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수학|강학지 회연초당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이양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지도보기
성격 유생
성별
본관 인동(仁同)
대표 관직|경력 의병장

[정의]

조선 시대 성주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문거(文擧), 호는 개옹(㝏翁). 할아버지는 장잠(張潛), 아버지는 호조참의에 증직된 장곤(張崑)이다. 부인은 창원 유씨(昌原兪氏) 유수지(兪遂之)의 딸이며, 아들은 장이유(張以兪)이다. 장홍한(張鴻翰)은 동생이고, 장사진(張士珍)은 육촌 동생이다.

[활동 사항]

장봉한(張鳳翰)[1566~1644]은 1566년(명종 21) 인동부(仁同府) 인의방(仁義坊)[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에서 6남 중 5남으로 태어나 성주에서 살았다. 8세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에게 『소학』을 배웠다. 24세에 회연초당(檜淵草堂)에 나아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를 배알하고 평생 스승으로 모셨고, 25세에 회연초당에서 『근사록(近思錄)』을 읽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북도 지례(知禮)의 의병 군영(軍營)에서 송암(松庵) 김면(金沔)을 만나 왜적 토벌을 의논하였다. 왜군이 성주를 함락하고 불승 찬희(贊熙)와 찬숙(贊夙)에게 성주 내의 여러 사무를 맡겼다. 얼마 후 찬희는 피살되었지만 찬숙은 세력이 강력했고, 총병(摠兵) 유정(劉綎)과 전라 의병장 임계영(任啓英) 등도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수세에 처하였다.

이에 장봉한이 1593년에 상주판관에 재직하던 막냇동생 장홍한 및 군위 의병장이던 육촌 동생 장사진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후, 찬숙을 사로잡아 지례의 김면에게 보내는 군공을 세웠다. 김면이 임금이 있는 행재소에 이를 알리려 했지만 장봉한은 극구 사양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의롭게 여기며 장봉한, 장홍한, 장사진을 일문삼의사(一門三義士)라 불렀다.

1594년에는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를 만나 악견산성(岳堅山城)[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을 고쳐 쌓는 일을 의논하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41세 때는 부인 유씨의 논밭 문서를 불살라 버렸다. 원래 부자이던 처가의 밭과 땅이 여러 고을에 걸쳐 있었는데, 전쟁 중에 다른 사람들이 가로챈 것이 매우 많았다. 이때 장봉한이 “본래 내 소유가 아닌데 하필 남과 다투어서 무엇 하겠는가”하면서 분쟁의 소지가 있는 문서를 불살라 버린 것이었다.

45세 때는 정구를 변무(辨誣)하는 상소를 올렸다. 정구와 절교한 같은 고을 사람 박이립(朴而立)이 정인홍의 사주를 받아 도리에 벗어난 말로 정구를 모함했고, 정구가 관아에 엎드려 상소를 올리고 처벌을 기다리자, 경상도 유생들이 궁궐에 나아가 장봉한이 지은 상소로 변무하였다. 그 이전 정인홍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비방했을 때 영남의 유생들이 올린 상소도 장봉한이 지은 글이었다. 그래서 당시 영남 지역의 사림이 장봉한개옹 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 53세 때는 성주 가곡 인근의 두주동(斗珠洞)에 작은 서재를 짓고 구지재(求志齋)라고 명명하였다. 1644년(인조 22)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개옹선생문집(㝏翁先生文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있는 이양사(伊陽祠)[이양서원으로 개명]에 제향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