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봉건, 반제국주의 투쟁에 주안점을 둔 농민들의 민족운동. 여기서는 일제강점기 때의 농민운동을 말한다. 조선 후기의 농민운동은 반봉건 사회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봉건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으로 토지 소유와 분배 구조의 모순에 대항하여 토지의 재분배를 주장하였다. 조선 후기 광주부의 농민항쟁은 반외세적인 문제보다는 봉건사회 모순인 삼정문...
-
1919년 3월 28일 대왕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가 본적인 이시종(李時鍾)은 농사에 종사하던 중 송파시위에 참가한 후 대왕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조선독립신문」의 독립에 관한 기사를 가지고 수서리에 돌아와 동리의 이재순(李載淳), 이규문(李揆文) 등 100여명을 규합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만세를 고창하면서 면사무소에 집결하였고...
-
조선 후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일제강점 후 주권을 되찾고자 벌였던 일련의 반외세, 반봉건을 지향한 운동가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주의운동은 대내적으로 반봉건적인 모순을 제거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외압으로부터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근대 민족주의운동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개...
-
1919년 3월 27부터 3일간 한백봉, 한순회, 남태희 등이 돌마면과 낙생면의 면민을 규합하여 진행한 연합적 만세시위운동. 돌마면과 낙생면 면민의 연합시위는 규모나 영향력이 지대한 것으로 파급효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시위를 주도하기 이전에 봉화와 횃불을 통해 상호 교감을 일으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시위운동의 주도자들은 3월 28일에도 봉화를...
-
1919년 3월 27일 돌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돌마면의 시위운동은 천도교인과 농촌의 지식인층 일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이 특색이다. 이로써 참가자가 증폭하였고 낙생면과의 연합시위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과 과천시 모계동 경계인 청계산 정상 근처에 있는 대. 조선 초 고려 유신 조견(趙狷)이 전 왕조인 고려 왕실을 염모하였던 곳으로 전하는 곳이다. 조견은 조선조 성립 후 매일 이곳에 올라 고려 수도 개성을 바라보면서 통곡으로 나날을 보냈다고 전하는 곳으로 세상사람들이 망경봉(望京峰)을 망경대라 부르게 되고, 당시 「망경대가(望京臺歌)」가 널리 유행하였다고...
-
새 집을 지을 때 지경돌로 집터를 고르고 지반을 단단하게 다지며 부르는 노래. 「지경닫는 소리」, 「지점이소리」, 「상량가」라고도 하는데, 성남지역에서는 분당구 이매동에 있었던 자연마을인 이무술마을의 집터다지는 소리가 알려져 있다. 최근에 유경험자 윤명용씨가 중요무형문화재 19호 선소리산타령의 보유자인 황용주씨의 고증을 통해 복원하였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일대가 포함된 신도시 개발 사업. 위례택지개발은 2005년 정부의 8·31부동산종합대책에 따라 추진한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을 말한다. 2007년 말 계획을 수립하고 2008년 실시 계획 승인을 거쳐 추진되었다. 위례택지개발지구는 처음에 ‘송파거여택지개발예정지구’ 혹은 ‘송파신도시’라고 불렸는데,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가 송파로 묶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
-
?~1864년(철종 15). 조선 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장조(莊祖)[사도세자]의 아들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다. 상계군(常溪君) 이담(李湛)의 양자이고, 친아버지는 풍계군(豊溪君) 이당(李瑭)이다....
-
1919년 3월 27일 중부면 단대리, 탄리, 수진리 일대 주민이 벌인 만세시위운동. 중부면의 만세시위운동은 남한산성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일제하 중부면은 면소재지 산성리를 비롯하여 13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919년 3월 27일 새벽을 기하여 남한산에서 횃불을 밝히고 이를 신호로 하여 단대리, 탄리, 수진리의 주민 300여명이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들은 남한산성...
-
1874년(고종 11)~?. 광주군 중대면 송파진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 천중선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일명 중선(仲善)으로도 지칭되었다. 1919년 46세 때 송파진헌병주재소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한 결과 1년 징역형에 처해져 수감 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