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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101
한자 鳳溪洞支石墓群
영어의미역 Dolmen of Bonggye-dong
이칭/별칭 봉계동 지석묘군,장석거리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4|528|537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장여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인돌군
양식 남방식
건립시기/연도 청동기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64[대곡지구]지도보기|봉계동 528지도보기|봉계동 537[월앙지구]지도보기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위치]

봉계동 고인돌군은 봉계동 대곡지구와 월앙지구의 평지에 위치한다. 봉계동에는 약 6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으며, 호랑산전봉산에서 뻗은 지맥들의 구릉이나 쌍봉천과 봉계천 변에 형성된 평지에 수 기 또는 수십 기씩 무리지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7년부터 시작된 경지 정리 사업으로 고인돌의 일부가 훼손되거나 파손됨에 따라 1988년 3월 대곡지구와 월앙지구에 위치한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조사는 1988년 3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20일간 실시되었다. 발굴된 고인돌은 대곡지구 4기, 월앙지구 10기 등 모두 14기이다. 대곡지구의 고인돌은 봉계동 185·171·169·164번지에 22기가 동서로 군집되어 있었으나, 164번지의 4기만이 발굴 조사되었다.

나머지 고인돌은 경지 정리 사업 때 파괴되거나 묻혀버려서 발굴되지 못하였다. 조사 결과, 4기의 석실과 상석이 없는 석실 1기 등 5기의 석실이 확인되었다. 석실들은 상석의 방향과 같은 동서 장축으로 일렬을 이루고 있었다. 월앙지구의 고인돌은 경지 정리 지구 내에 위치한 10기의 고인돌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7기의 석실이 확인되었다.

[형태]

1) 대곡지구 고인돌

1호 고인돌은 대곡지구 고인돌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다. 상석의 규모는 동서 길이 240㎝, 남북 너비160㎝, 두께 150㎝이며, 북쪽 일부가 깨진 상태이다. 평면 형태는 반원에 가까운 삼각형이나 원래는 방형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단면 형태는 위와 아래가 편평하고 양측면이 수직 방향에 가까운 괴석형이다.

상석 남쪽에는 2매의 지석이 받치고 있으나 북쪽에서는 보이지 않아 유실된 것 같다. 지석의 안은 잡석들로 채워져 있다. 상석 아랫니 하부 유구는 240×190㎝의 장방형 적석이 노출되어 있다. 지석은 2개가 확인되었으며, 크기 40~50㎝, 높이 30~40㎝ 정도의 다듬어진 괴석형이다. 적석들은 파괴가 심했으며,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

2호 고인돌은 1호 고인돌에서 서쪽으로 1.5m 지점에 위치한다. 상석의 규모는 남북 길이 240㎝, 동서 너비 200㎝, 두께 180㎝이다. 남북 장축의 사다리꼴 평면 형태이며, 단면 형태는 방형에 가까운 괴석형이다. 상석 아래에는 뚜렷한 석실은 나타나지 않는다. 상석의 남쪽과 서쪽에서 지석이 1개씩 확인되었다. 지석의 규모는 길이 40~50㎝, 높이 40㎝이다. 상석은 이동된 것으로 보이며, 출토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3호 고인돌의 상석 일부가 2호 고인돌과 함께 돌무더기에 덮여 있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150㎝, 너비 220㎝, 두께 130㎝이며, 평면이나 단면 형태는 모두 장방형이다. 석렬 사이에서 봉부가 유실된 석촉 1점과 석렬 바깥쪽에서 석검의 검심을 2차로 전용한 석창 1점이 출토되었다. 석실의 동북쪽 석렬 외곽의 교란된 곳에서는 유병식 석검편과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뚜껑 1점이 발견되었다.

4호 고인돌의 상석은 논바닥 위에 노출된 상태였으며, 들려져 있는 곳은 잡석들이 쌓여 있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370㎝, 너비 310㎝, 두께 150㎝이다.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이며, 단면 형태는 위가 편평한 장타원형이다. 상석의 아래에서 지석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뚜껑돌과 적석을 이룬 돌들이 상석을 직접 받치고 있었다. 뚜껑돌은 판석들로 석실 전체를 덮었는데, 모두 상석의 무게에 의해 깨진 상태여서 파편들이 석실 안에 박혀 있었다. 판석은 4매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고인돌의 하부에서는 석실 중앙 바닥에서 석검 1점과 세장형 석촉 6점이 함께 출토되었다. 석검은 완형으로 유병식이다. 검신과 병부는 단이 져 연결되어 있으며, 등날은 검신에 뚜렷이 나 있고 병부에도 희미하나마 확인이 된다. 석검은 총 길이 26.5㎝이고, 검신은 길이 16.5㎝, 너비 4.2㎝, 두께 1.2㎝이며, 병부는 길이 10㎝, 너비 3.8㎝, 두께 1.3~1.5㎝이다.

세장형 석촉 6점 중 4점은 완형이고 2점은 반파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석촉은 모두 유경식으로 세장형에 속한 형식이나 크기가 모두 다르다. 크기는 각각 길이 16.1㎝, 11.1㎝, 10.7㎝, 10.1㎝, 9.4㎝, 9.1㎝, 최대 너비 1.7㎝, 1.6㎝, 1.8㎝, 1.6㎝, 1.7㎝, 두께 0.6㎝, 0.4㎝, 0.5㎝, 0.5㎝, 0.5㎝, 0.6㎝이다.

2) 월앙지구 고인돌

1호 고인돌은 월앙지구 고인돌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180㎝, 너비 170㎝, 두께 80㎝이다.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까운 마름모형이고, 단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은 남북 방향이다. 석실은 석곽형으로 동쪽 일부가 유실되었다. 규모는 길이 90㎝, 너비 20~40㎝, 깊이 40㎝ 정도이다. 석실의 방향은 동서 방향이다.

서벽은 소형 할석을 2~3단 쌓아서 축조하였으며, 북벽은 3매의 할석 편평면을 이용하여 세우고 그 사이를 소형 할석으로 메워서 축조하였다. 남벽도 2매의 할석 편평면을 이용하여 세우고 조그마한 돌을 보강하여 축조하였다. 석실 내부에는 10㎝ 내외의 잡석들로 채워져 있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2호 고인돌의 상석 규모는 길이 150㎝, 너비 110㎝, 두께 80㎝로 소형이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우며, 단면 형태는 장방형이나 단축면이 삼각형이다. 상석 아래의 뚜껑돌은 판상석 2매로 석실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판상석의 규모는 1매는 길이 66㎝, 너비 46㎝, 두께 7㎝이며, 또 1매는 길이 80㎝, 너비 37㎝, 두께 9㎝이다. 바닥은 10㎝ 내외의 잔자갈을 띄엄띄엄 깔았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3호 고인돌의 상석 규모는 길이 190㎝, 너비 115㎝, 두께 100㎝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단면 형태도 장방형으로 위와 아래가 편평하며, 장축은 동서 방향이다. 상석의 아래에서는 55×40㎝ 크기의 지석 1개와 이중으로 된 지석이 확인되었다. 상석은 북쪽 지석의 남쪽 일부에 약간 걸쳐 있었으며, 배치 상태로 보아 원래는 2개 정도의 지석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석의 아래에서는 길이 80㎝, 너비 60㎝, 깊이 40㎝ 정도의 석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4호 고인돌 상석은 봉계동 594-4번지에 위치해 있었다. 발굴 전에는 경지 정리 작업으로 인해 농로 옆에 걸쳐져 있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230㎝, 너비 200㎝, 두께 120㎝이다. 평면 형태는 반원에 가까운 삼각형이며, 단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다. 상석의 아래에서는 길이 160㎝, 너비 50㎝, 깊이 40㎝의 석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5호 고인돌은 봉계동 528번지에 위치해 있었으나, 경지 정리로 인해 상석 하부가 흙에 묻혀 있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320㎝, 너비 230㎝, 두께 190㎝이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단면 형태는 괴석형이다. 상석의 하부에서는 3개의 지석이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주변의 고인돌 중 가장 규모가 크나 석실의 흔적이 없어 묘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유적으로 추정된다.

6호 고인돌의 상석 규모는 길이 250㎝, 너비 170㎝, 두께 180㎝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단면 형태는 괴석형이다. 장축은 북동-남서 방향이다. 하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출토유물도 없다.

7호 고인돌의 상석 규모는 길이 220㎝, 너비 160㎝, 두께 120㎝이다. 상석의 위와 아래는 편평하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장축 단면은 장방형이나, 단축은 방형에 가까운 괴석형이다. 장축은 동서 방향이다.

하부는 판석들로 석실이 덮여 있었으나, 서쪽 일부는 유실되어 있었다. 뚜껑돌은 3매의 판석이 남아 있으나, 원래는 4매 이상의 판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돌은 이중으로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158㎝, 너비 40~43㎝, 깊이 50㎝이다. 석실 내 중앙부에서 석촉 1점, 뚜껑돌 아래에서 석검 병부편이 발견되었다. 또한 석실 내에서 무문토기 저부·구연부·동부편 등 10여 점이 출토되었다.

8호 고인돌의 상석 규모는 길이 220㎝, 너비 200㎝, 두께 50㎝이다. 평면 형태는 원래 원형으로 추정되며, 단면 형태는 윗면이 편평한 판석형이다. 장축은 동서 방향이다. 상석의 아래에서는 석곽형의 석실이 발견되었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180㎝, 너비 35~40㎝, 깊이 40㎝이다. 석실 내에서는 석검 병부편 1점과 무문 토기편 2점이 출토되었다.

9호 고인돌의 상석 규모는 길이 320㎝, 너비 200㎝, 두께 160㎝이다. 상석의 위와 아래는 편평하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고, 단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까운 괴석형이다. 장축은 동서 방향이다. 상석 아래에서 190×100㎝의 적석이 확인되었으며, 적석 중에서 6개가 상석을 받치고 있었다. 석실은 석곽형이며, 납작한 할석을 이용하여 세웠다. 벽석의 축조 상태는 북벽은 3매의 자연석을 세웠으며, 남벽은 편평석을 세우거나 쌓아서 축조하였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290㎝, 너비 40㎝, 깊이 35㎝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10호 고인돌의 상석은 봉계동 538번지에 위치해 있었다. 상석은 일부가 약간 깨졌으나 원형이 보존되어 있었다. 상석의 아래에는 1개의 지석이 노출되어 있었으며, 잡석들로 채워져 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290㎝, 너비 270㎝, 두께 220㎝이다. 평면 형태는 원형이고, 단면 형태는 괴석이며, 장축은 동서 방향이다. 석실은 서쪽 부분과 남동 모서리가 유실된 석곽형이며, 편평한 할석을 이용해 1단이나 2단으로 축조하였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180㎝, 너비 45~53㎝, 깊이 40㎝이다.

유물은 석실의 동쪽 바닥석과 중앙 바닥석 사이에서 벽옥제 관옥 14점, 서쪽에서 소옥 1점·관옥 1점·동검 봉부편 1점이 출토되었다. 비파형 동검 봉부편은 소편이나, 등대의 단면이 6각형으로 비파형 동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길이는 3.8㎝이다. 소옥 1점은 천하석제이며, 지름이 0.8㎝로 약간 큰 편이다. 관옥 15점은 서쪽 바닥석 위에서 소옥과 함께 조사되었으며, 소형의 벽옥제로 길이는 0.3~1.0㎝이다.

3) 계원 지구 고인돌

계원 마을 입구 밭에 3기가 위치하고 있으며 훼손된 흔적은 없다. 도로변에는 『여수의 고인돌』에 13기의 고인돌이 있다고 기록되었으나 현재는 큰 개석 5기 정도만 방치되어 있다. 기존의 고서에는 보이지 않으나 농지 정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 개석 3기가 저수지 아래 도로변에 방치되어 있다.

[출토유물]

유물은 대곡지구 고인돌에서 석검 2점(완형 1점)·석촉 7점(완형 6점)·석창 1점 등 총 10여 점이 수습되었다. 특히, 4호분에서는 유병식 석검 1점과 세장형 석촉 6점이 발견되었다. 월앙지구 고인돌에서는 동검 봉부편 1점·관옥 15점·소옥 1점·석검편 2점·석촉 1점·무문 토기편 10여 점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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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봉계동 고인돌군여수반도에서 처음으로 발굴 조사된 유적인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발굴 조사를 통해 비파형 동검편과 옥류가 출토됨으로써 이 지역 고인돌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봉계동 고인돌군은 5기의 무덤방에서 석검이 출토되거나 수습되어 보성강 유역처럼 석기 중 석검이 부장품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비파형 동검과 옥도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월앙 8호분에서 출토된 석검 조각은 손잡이 끝부분이 과장된 형식으로 경상남도 무계리나 부산 괴정동의 것과 비슷하다. 대곡 4호분에서 출토된 석검은 그 형식이나 석질에서 경상남도 의창 진동리 출토품과 흡사하여 남해안 지역에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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