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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210
한자 板屋船
영어음역 Panokseon
영어의미역 Upper Deck
이칭/별칭 판옥전선,전선(戰船)
분야 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병호

[정의]

조선시대에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운용되었던 널빤지로 지붕을 만든 군선(軍船).

[개설]

조선 전기의 군선은 조운(漕運)을 겸하는 맹선(猛船)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군용으로서 제구실을 못했다. 특히 16세기에는 삼포왜란·사량왜변·을묘왜변 등 변란이 속출했는데, 맹선으로 왜구를 제압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군선 개발에 부심한 결과, 1555년(명종 10)에 새로 개발해 낸 것이 판옥선이다.

[형태]

판옥선의 크기와 구조는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왕에게 올린 보고서에 전선에 대해 언급된 내용이 있다.

“여수 통영의 제일 큰 전선인 상선(통제사가 타는 배)의 치수는 배의 길이 105자, 너비 39자 7치이다. 아래층의 신방도리에서 위의 패란[방패 위에 있는 도리를 말하며 언방(偃防)이라고도 한다]까지의 높이는 5자이다. 또한 수영(水營)에 속해 있는 각 관읍(官邑)과 진포(鎭浦)의 전선의 치수는 배밑 길이 65자, 한판 너비 15자, 이물 쪽 너비 12자 5치, 고물 쪽 너비 7자 5치이고, 배의 한판 높이 8자이다.

여수 통영의 좌선이나 부선의 멍에는 16개씩이고, 배밑은 15개를 이어 붙였다. 각 관읍이나 진포의 전선의 멍에는 15개씩이고 배 밑은 12~13개의 나무를 이어 붙였다. 이물비우는 직판(直板) 널빤지로 15쪽을 이어 붙였다. 그리고 뱃전 위에 멍에를 걸었다. 양쪽 뱃전의 멍에 뺄목에 큰 노를 9척씩 걸고 젓도록 되어 있다. 배 밑은 네모진 통나무 15개를 이어 붙였는데 물속에 잠겨 있으므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물돛대와 고물돛대가 있고, 고물꼬리에는 널판을 깔지 않고, 난간이 없이 비어 있다.

판옥선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삼판 7쪽을 이어 붙여 올린 뒤 멍에를 걸고 그 위에 귀틀을 짜고 겻집을 깐 곳까지를 이른다. 2층은 멍에 뺄목 위에 신방도리를 걸고서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판옥이나 다락을 꾸민 데까지를 이른다.

상장(上粧) 위에는 이물과 양쪽 뱃전을 따라가면서 여장을 설치하였다. 상장의 언방 위에 뱃집 멍에를 걸고 널빤지를 까는데 이것을 청판(廳板)이라고 한다. 상장의 청판에서 이물돛대와 한판돛대를 뉘었다 세웠다 할 수 있게 장치를 하였다. 또 청판 위 한가운데에 다락을 만들었고, 그 위에 좌대를 만들고 가마지붕을 씌운 뒤 장막을 쳤다. 통제사는 이 좌대에서 모든 배와 군사를 지휘한다. 이 좌대를 장대라고 한다.”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보면, 임진왜란 이후 전함이나 관용선의 이물비우는 세로다지 곧은 널판이나 곡목의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가로다지로 되어 있는 보통 배와 구별된다. 또 전함 삼판의 꼬리 부분이 위로 솟구쳐 올라간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전함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나, 현호를 늘리기 위한 조선기법으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여수의 전함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는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에는, “전선에 전영 측(昃)자 제1호 판옥전선은 본판의 길이가 주척(周尺)으로 70자니 옹정 13년 을묘 4월에 새로 물으니 좌우 노가 24자, 군병이 207명인데, 기패관 2인, 포도관 1인, 훈도 1인, 사부 15명, 화포장 10명, 포수 24명, 사공 8명, 능노군 144명, 선직 1명”이라 하였다.

[특징]

판옥선은 구조와 기능 등 모든 면에서 종래의 군선과는 아주 다른 전투함 성격의 배이다. 우선 그 구조에 있어서 종전의 군선인 맹선은 갑판이 1층뿐인 평선(平船)인 데 비하여, 판옥선은 선체의 상면(上面)에 상장을 가설하여 2층 구조로 만든 배이다. 갑판 위로 올린 구조물을 ‘판옥’이라고 한 데서 ‘판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건물의 2층과 같은 공간을 이루고 있어서 노역(櫓役)에 종사하는 노군(櫓軍)들이 상하 갑판 사이의 안전한 장소에서 마음 놓고 노를 저을 수 있고, 전사(戰士)들은 상갑판(上甲板) 위의 높고 넓은 자리에서 노군의 방해를 받지 않고 효과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구조로 인해 적이 접근하여 배에 뛰어들기 어렵게 되었다. 종래의 군선에 비하면 선체가 커서 노군의 수를 증가시킬 수 있었고, 이에 노 1자루 당 5명의 노군이 배치됨에 따라 기동성이 좋아졌다.

이러한 판옥선은 임진왜란 시기에 각 해전에서 일본의 수군을 격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즉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해전·부산해전 등 주요 해전에 동원된 군선 중에서 3척의 거북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판옥선이었다. 그때 판옥선의 크기는 저판(底板) 길이 50~55척, 탑승 인원 130명 정도로 파격적으로 컸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크기가 점점 커져 정조 때는 통제사가 탑승하는 통영상선(統營上船)이 저판 길이 90척, 일반 판옥선이 저판 길이 70척 정도였고 탑승 인원도 160명 내외로 늘었다. 그 이후 판옥선은 전선(戰船)으로 개명되었다.

거북배와 비교할 때, 2층 판옥이 있다는 점만 다를 뿐 기본적인 구조는 유사했다. 다만 거북선의 역할은 적의 지휘선을 공격하고 적 함대의 전열을 흩뜨리는 기동 돌격대의 성격이었다면, 전선은 그 뒤를 이어 막강한 화력으로 본전투를 이끄는 전함이었다. 대중소 세 가지 규모가 있었으며, 대형은 화포 중 천자총통·지자총통·현자총통·황자총통을 모두 적재하였고, 중형은 지자총통·현자총통·황자총통, 소형은 황자총통만을 적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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