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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285
한자 改新敎
영어의미역 Protestant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석봉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설]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반발하는 종교개혁에 의해 성립된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등 기독교의 여러 종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호남 지역의 기독교 복음 전파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북장로교 소속의 언더우드 선교사였다. 현재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의 주요 분파로는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교 등이 있다.

[연원]

1. 장로교

구한말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장촌리의 유지였던 조일환, 이기홍, 박경주 등 3명이 이민을 위해 한양으로 갔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자 미국인이 경영하던 세브란스병원으로 피신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도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1905년 조일환의 집에서 변요한 선교사와 함께 예배를 보고 장천교회를 설립한 것이 여수 지역 장로교의 시초이다.

2. 성결교

경상남도 사천시의 성결교회 교인이었던 박명오 장로가 여수로 이사하여 청과조합을 경영하던 중 여수 지역에 성결교회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가족들과 함께 교인들을 규합하여 1949년 11월 22일 여수시 군자동에 셋집을 얻어 개척 예배를 본 것이 여수 지역 성결교회의 시초이다.

3. 감리교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전까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는 감리교회가 세워질 수 없었다. 개신교의 한국 전래 초창기의 감리교와 장로교 간 네비우스 방법에 의한 선교 지역 분할 정책으로 감리교의 선교 지역이 서울·경기도·강원도 일부·황해도 일부 지역으로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51년 1·4 후퇴 당시 미군의 상륙용 배(L.S.T)에 승선하여 북한 지역에서 여수 지역으로 온 6,000여 명의 피난민에 섞여 있었던 70여 명의 감리교인들이 둔전감리교회[현 돌산중앙감리교회]를 창립한 것이 시초이다.

4. 순복음교

1952년 2월 1일 김운경 전도사가 취임하여 여수시 공화동 370-4번지에서 천막을 치고 첫 예배를 본 것이 여수 지역 순복음교의 시초이다. 당시 교회 이름은 오순절역전교회였으나 1984년 8월 교회 명칭을 은현교회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침례교

1965년 9월 30일 구두원 선교사와 황범재 전도사가 여수 지역의 침례교회 개척을 합의하고 12월 20일 여수시 중앙동 351번지에 여수침례교회를 설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6. 안식교

안식교의 정식 명칭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이다.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의 안식교는 1947년 2월 17일 문서 전도인 독고삼이 강공수의 집에서 집회를 시작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1950년 초대 사역자로 유재목 목사가 부임하였으며 1954년에는 호남평의회에서 여수교회로 승격되어 현재 여수중앙교회로 이어지고 있다.

[변천]

1. 수난사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 신교육령의 발표를 통하여 기독교 학교에서의 성경 교육을 금지했던 일제가 193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신사 참배까지 강요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여수 지역에서도 1940년 11월 15일 애양원교회의 손양원 목사, 여수교회김순배 목사, 남면 우학리교회의 이기풍 목사 등을 비롯한 순천노회 소속의 목사 17명이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을 펼치다 검거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기풍 목사가 순교하였다.

여순 사건이 한창이던 1948년 10월 21일에는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인 손동인·손동신 형제가 예수를 믿는 학생이라는 죄목으로 총살되었다. 6·25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의 여수 지역 장악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지켰던 애양원교회의 손양원 목사, 덕양교회의 조상학 목사, 장천교회의 지한영 전도사와 그의 아들인 지준철, 제일교회윤형숙 전도사, 군내리교회의 허상용 집사, 우학리교회의 곽은전 집사·안경수 성도·백인수 성도 등이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2. 장로교의 분열과 통합

광복 이전 일제에 의한 신사 참배가 강요되면서 한국의 장로교가 분열되었다. 이와 더불어 여수 지역의 장로교도 재건노회 측 교단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수재건교회가, 조선신학대학교 측 교단에서는 여수중부교회가, 고려신학대학교 측 교단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수충무동교회가 각각 설립되면서 분열되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서로 반목하면서 침체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 11월 27일 여수성광교회에서 장로교 여수노회가 창립되면서 이와 같은 분열이 종식될 수 있었다. 여수노회는 창립 직후 최우선 사업으로 손양원·조상학 목사 순교 기념 교회당 건립을 결의함과 동시에 그 교회당의 명칭을 충신교회로 하였다. 이후 1994년 11월 3일에는 여수시 미평동 577-3번지에 여수노회의 회관을 준공하여 개관식을 거행하였다.

[주요 활동사항]

1. 개신교 선교 단체의 설립

1945년 11월 15일 여수읍교회[현 여수제일교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여수YMCA를 창립하였다. 1947년에는 여수기독학생회와 여수기독학생회연합회가 조직되어 각 학교에서 매월 월례회를 개최하는 등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1년에는 전정우 상임 간사를 대장으로 하여 여수YMCA의 소년부서인 제13애림소년대가 발족하였다. 1958년 대한기독공보사가 여수 지역에 지사를 설립하여 여수 지역의 교계 소식과 선교 활동 상황을 홍보하였다. 1959년에는 반공 사상 고취를 위한 대한기독교 방공위원회 여수특별위원회가 설립되었다.

2. 개신교 교육기관의 설립

1945년 10월 9일 여수부녀관장(여수중앙교회 전도사) 임춘자가 여수중앙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56년 2월 15일에는 순천노회 여수지방회가 여수제2교회[현 중앙교회] 예배당에서 여수보통성경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같은 해 4월 2일에는 여수YMCA회관에서 여수고등성경학교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1960년 3월 2일에는 애양원교회 서현식 목사가 학원 설립 인가를 받아 여수여흥여자중학교를 설립하였다.

[현황]

1980년대 이후로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개신교는 교단의 다양화와 더불어 신자 수와 교회 수가 많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1982년 구 여수시의 경우 교회 수 46개에 신자 수는 12,19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1997년 구 여천시의 경우 교회 수 99개에 신자 수는 9,499명인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당시 구 여천군의 정확한 통계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98년 새로운 통합 여수시로의 개편 이후인 2001년의 여수시의 경우 교회 수 472개에 교직자 수만 해도 54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현재 전라남도 여수시의 교회 수는 총 471개이며 교직자 수는 모두 711명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3.20 침례교 부분 수정 오 : 여수시 중앙동 351번지에 여수교회[현 여수침례교회]를... 정 : 여수시 중앙동 351번지에 여수침례교회를...
2010.12.20 개신교 해방을 광복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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