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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302
한자 浦口
영어의미역 Por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집필자 주석봉

[정의]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있는 배가 드나드는 길목.

[개설]

포구는 ‘개’, ‘금이’, ‘구미’ 또는 ‘금’, ‘기미’, ‘지미’, ‘짐’이라고도 한다. 여수 지방에서는 ‘기미’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을 의미하며 주로 해변에 인접하여 위치한다. 전라남도 여수 지역은 해안선이 복잡하여 포구가 많이 발달·산재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현황]

1899년에 발간되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전라남도 여수군읍지』에 의하면 당시 여수 지역에는 종포, 국포, 장생포, 신근포, 모사포, 굴포, 만흥포, 기질을포, 탄잠포, 성창포, 조음포, 복포, 며포, 항포, 하적량포, 대포 등의 포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종포(宗浦)는 현재의 종화동 일대로 전라좌수영성에서 동쪽으로 3리에 있었으며 어망 만드는 것을 주요 업으로 한 포구였다고 한다.

국포(菊浦)는 현재의 국동 지역으로, 전라좌수영성에서 서쪽으로 10리에 있었으며 돌산군과 통하는 나룻배가 있었다고 한다.

장생포(長生浦)는 현재의 소호동 일대로, 전라좌수영성에서 서쪽으로 20리에 있었으며 고려 때 왜구가 쳐들어와 이 포구까지 이르렀을 때 유탁(柳濯) 장군이 병사를 거느리고 와 물리치니 군사들이 기뻐서 장생포가를 불렀다고 한다. 신근포(新根浦)는 현 신월동 지역으로 전라좌수영성에서 서쪽으로 15리에, 모사포(毛沙浦)는 현 오천동 지역으로서 동쪽으로 20리에 있었으며, 굴포(掘浦)는 현 국동 지역으로서 서쪽으로 10리에 있었으며 어량(魚梁)이 있었다고 전한다.

만흥포(萬興浦)는 현재의 만흥동 지역으로, 전라좌수영성에서 동쪽으로 15리쯤에 있었으며 그 외 기질을포(其叱乙浦), 탄잠포(呑潛浦), 성창포(城倉浦), 조음포(助音浦) 등의 포구도 있었다고 전한다. 복포(伏浦)는 현 소라면 복산리 일대로 전라좌수영성에서 서쪽으로 10리에, 며포(旀浦)는 현재 여수 선소 지역으로서 서쪽으로 20리에, 항포(杭浦)는 현 소호동 항호 지역으로서 서쪽으로 25리에 있었다고 한다.

하적량포(下赤良浦)는 현재의 삼일동 일대로, 전라좌수영성에서 북쪽으로 30리에 있었으며 돌산군과 통하는 나룻배가 있었다고 한다. 대포(大浦)는 현재의 소라면 대포리 지역으로 전라좌수영성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으며 수철점(水鐵店)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기록인 1953년도에 발간된 『여수향토사』에 의하면 화양면의 나진포(羅陣浦)와 계두포(鷄頭浦), 율촌면의 수문포(水門浦)도 있었으며 현 여수국가산업단지 지역에는 적량마을 앞의 군장포(軍藏浦), 묘도동의 온돌포(溫突浦)와 수항포(水項浦) 등의 포구도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여수 지역의 포구는 여수반도의 복잡한 해안선과 잘 발달된 갯벌, 적당한 간만의 차 등으로 인하여 여러 개의 포구가 골고루 흩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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