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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801
한자 禾長洞遺蹟
영어의미역 Hwajang-dong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 임118
시대 선사/청동기,고대/고대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물산포지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 임118 지도보기
소유자 여수시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지.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화장동 유적은 구 여천시에서 국가 산업단지에 대한 이주 사업 계획을 수립함에 따라 1995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면서 알려졌다. 이후 발굴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조사는 1996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의 주관 하에 목포대학교 박물관과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이 참여하여 실시되었다. 2차 조사는 2000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의 주관 하에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이 참여하여 주거지에 집중되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 53기, 석곽묘 6기,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의 주거지 88기, 통일신라시대의 와요지 2기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

고인돌은 남방식과 개석식의 구조이며, 그 매장 주체부는 석곽형이 많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송국리형이다. 삼국시대 주거지는 원형계의 평면 형태가 다수를 점하고 있으며, 4세기 후반대 이후에는 방형계가 유입되고 있다.

화장동 대통(가)고인돌군에서는 30여기의 고인돌이 구릉 사면을 형성하고 있었다. 민묘 부근에 불규칙적으로 9기가 분포하고 1기는 북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장동 대통(나)고인돌군에서는 10여기 이상이 구릉 정상부에 형성되었다. 대통마을로 가는 길 중간쯤에서 우측 민묘 주변에 남-북 1열로 5기가 배치되었다.

화장동 대통(다)고인돌군에서는 3기가 구릉 정상부에 형성되었다. 여기는 당초 발굴지점에서 대부분 이동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화장동 주동 고인돌군에서는 4기가 구릉지역에 형성되었다. 4기는 동-서 1열을 이루고 있으며 뚜껑돌이 대부분 반파된 상태인데 그 모양은 괴석형으로 땅 위에 밀착되어 있었다.

화장동 화산(가)고인돌군은 2기가 구릉의 민묘 바로 옆에 각각 1기씩 1열로 분포되었다.

화장동 화산(나)고인돌군에서는 5기가 구릉사면에 형성되었다. 장축방향은 동-서 1열을 이루고 있으나 그중 1기는 밭둑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비교적 방형에 가까운 큰 뚜껑돌 아래에는 굄돌이 각각 5개, 3개씩 고여 있고 일부 뚜껑돌에서는 밑이 드러나 보이는 것도 있었다.

[출토유물]

유물은 비파형 동검, 관옥, 소옥, 석촉, 무문토기, 숫돌, 경질 무문토기, 적갈색 연질 토기, 가야계 토기, 통일신라시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화장동 유적여수반도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 가운데 청동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문화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고인돌에서는 최고의 위세품인 비파형 동검과 옥이 출토되어 고인돌 사회가 계층 사회임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제공해준다.

주거지는 2세기에서 5세기까지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5세기대의 주거지에서는 가야계 유물이 출토되어 화장동 지역이 가야와 긴밀한 교류 관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와요지는 희소한 예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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