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009
한자 全州李氏
영어의미역 Jeonju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을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을
집성촌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을|화양면 이천리 감도마을|소라면 대포리|소라면 복산리 조산마을
입향시기/연도 1580년대
성씨시조 이한(李翰)
입향시조 이원인(李元仁)|이징(李澄)|이희부(李希富)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인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은 신라에서 사공 벼슬을 지냈으며, 이성계(李成桂)의 21대조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름으로써 세계가 번성하여 파조도 대단히 많다.

[입향경위]

전주이씨 여수 입향조는 양녕대군(讓寧大君) 후손 이원인(李元仁)이다. 이원인은 1580년대에 담양에서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을에 정착했다. 이징(李澄)은 성녕대군(誠寧大君)의 후손으로 선조 때 임진왜란을 피하여 순천에 살다가 화양면 이천리로 옮겼다. 양도공(襄度公)의 후손 이희부(李希富)는 광해 정변 때 담양에서 둔덕동으로 와 살았다.

효종 때 이상하(李相夏)는 광주(廣州)에서 소라면 대포리로 내려왔다. 익안대군(益安大君)의 후손 이명민(李命敏)은 숙종 때 양주에서 신월동으로 와 후진을 가르치며 살았다. 영조 때는 광평대군(廣平大君) 후손 이재진(李載震)이 광주에서, 효령대군(孝寧大君) 후손 이성우(李聖愚)가 완산에서 소라면 복산리로 이거했다.

효령대군(孝寧大君) 8세손 이인후는 1673년(현종 14) 선원동 무선마을에, 덕흥대원군의 후손 이형신과 이형중 형제는 1700년대에 안산동소호동 항호마을에, 이동원은 1750년대 순천 서면에서 중흥동 당산마을에, 이경조는 1800년대에 소호동 소지개마을에 각각 입향했다. 이후에도 전주이씨가 다수 여수로 들어왔다.

[현황]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을은 입향조 이원인이 마을을 만들어 전주이씨의 집성촌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직도 이징의 후손은 화양면 이천리 감도마을에, 이상하의 후손은 소라면 대포리에, 이성우의 후손은 소라면 복산리 조산마을에 그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다만, 이희부와 이명민 그리고 이재진의 후손은 세거지가 도시화되어 시내 여러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관련유적]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을에 춘포재가 있다. 춘포재는 입향조를 추모하기 위하여 1957년에 세워진 전주이씨 문중 재각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