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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309
한자 麗水巽竹島李大源祠堂
영어의미역 Chungnyeolsa Shrine for Yi Daewon in Sonjukdo Island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 1164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태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5월 27일연표보기 - 여수 손죽도이대원사당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여수 손죽도이대원사당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사당
양식 목조 기와집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 1164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군 이대원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

[개설]

1637년(인조 15)에 세워졌다거나 1590년(선조 23), 또는 1597년(선조 30)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모두 전거(典據)가 불확실하다. 이대원 장군이 순직한 해(1587)에 「손죽도 이대원 장군께 드리는 글(弔詞)」을 쓴 한천 정협(鄭恊)의 문장을 통해 당시 사당이 세워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정협의 문장 가운데 “누런 과일 붉은 과일 놓고 오늘 여기 꽃다운 혼백 위로하면서”라는 글귀로 보아, 이대원이 순직한 후 바로 제단, 또는 사당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여수 손죽도이대원사당에서 매년 봄과 가을 두 번씩 숭모제(崇慕祭)가 진행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제사가 중단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손죽도 주민들이 힘을 합해 사당을 다시 짓기로 합의하였다. 이기신(李起申), 김승구(金昇玖), 박오홍(朴五洪)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김치만(金致萬)이 유사가 되어 이상의(李商儀)의 찬조금으로 300여 년간 이어 내려온 여수 손죽도이대원사당을 다시 세웠다.

해방 이후에서 5·16군사쿠데타에 이르기까지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여수 손죽도이대원사당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1964년 박성욱(朴成郁)이 중심이 되어 마을 주민들이 사당을 다시 세웠다. 1982년에는 사당이 낡아지자 여천군의 지원금 100만 원과 부녀회 기금, 출향 인사와 주민들의 성금으로 6개월간의 공사 끝에 1983년 7월 3일 다시 세웠다. 당시 여천군은 여수 손죽도이대원사당을 충렬사(忠烈祠)라 하였다.

[형태]

한칸짜리 맞배지붕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당이 보인다. 문은 골판문으로 3단의 계단을 올라가면 있다. 대지 198m², 건평 16m²의 ‘충렬사(忠烈祠)’라는 현판을 단 목조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전면 3칸 측면 1칸짜리 집으로 양쪽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막돌 위에 둥근기둥을 올리고 빗살청판2분합 문을 달았다. 고목이 우거져 있는 경내를 기와 담장으로 둘러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담장 밖은 향우회 측에서 따로 비각을 세우고 경계석을 놓아 마감하였다.

[현황]

1990년 3월 경기도 평택에 사는 이대원의 11대 후손들이 손죽도 남쪽에 이대원의 묘를 썼다. 음력 3월 3일에는 이대원 장군 숭모제(崇慕祭)를 올리고 있다. 이대원과 관련하여 고흥군 녹동에 쌍충사(雙忠祠)가 있고, 여수시 남산동에 있는 영당(影堂) 등이 있다. 어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지키는 장군이라며 추모하고 있다. 2003년 5월 27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8.19 내용 수정 정협 한자 수정(201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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