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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941
한자 赤良部曲
영어음역 Jeongnyang-bugok
이칭/별칭 적량이동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집필자 장여동

[정의]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고려시대에는 부곡을 특수 지방 행정 단위로 조직화하여 목축·농경·수공업 따위에 종사하게 하였으며, 양민들과 한곳에서 살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적량부곡(赤良部曲)의 위치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순천도호부 고적조에 따르면 삼일포향의 동(東)에 있다고 전해진다.

[변천]

적량부곡은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적량동이다. 적량은 상적(上積), 하적(下積) 및 군장(軍藏)으로 이루어졌는데 일반적인 부곡이나 향의 범위로는 너무 협소하여 원래의 위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적량부곡에 대한 변천은 여말선초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당시 주위의 역사적 변화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진례부곡돌산현이 역할 변화로 수군진(水軍鎭)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적량부곡도 이러한 변화를 겪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경상도 남해군의 창선도에 설치된 연대 불명의 수군부대 적량(赤梁)만호진이 있었는데, 적량진은 적량리 군장(軍藏)에서 수군으로 창설되어 창선도에 주둔한 부대로 여겨진다. 고대부터 국난이 있을 때마다 전라도 수군의 활동은 항상 거국적으로 국가 보전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관련기록]

적량부곡의 변화는 문헌자료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정의를 할 수 없다. 현재까지 지리지 이외에 최근의 적량부곡에 대한 문헌으로는 순천 송광사 소장(順天松廣寺所藏) 「고문서형지기(古文書形止記)」가 있다. 이 문서 역시 명칭만 있을 뿐 위치에 대한 기록은 없다. 적량부곡의 본래 위치는 위에서 가정한 바와 같이 묘도에 있었고 치소는 읍동이었는데 고려 말에 왜구로 인하여 지금의 적량리로 이동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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