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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동 내동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235
한자 鏡湖洞內洞堂山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Nae-dong Village, Gyeongho-dong
이칭/별칭 내동마을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경호동 내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12월 30일(음) 자시
의례장소 마을 입구 쪽 언덕에 위치한 당집
신당/신체 해송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경호동 내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제사.

[개설]

경호동 내동마을 당산제는 음력 12월 30일 자시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당산제에서 모셔지는 신을 ‘당산’ 혹은 ‘할머니’, ‘우리당산’이라고 부른다. 당산제를 지내는 제관은 당주 1명과 부당주 1명으로, 음력 12월 29일에 2명을 선정한다.

당주는 제를 주관하는 사람이고, 부당주는 당주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당산 제일에는 마을에 소리가 나면 안된다. 따라서 육지와의 교통수단인 나룻배도 저녁 8시부터는 운항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엄격함 속에 당주와 부당주 둘만 조용히 당산제를 지내고 내려온다.

[연원 및 변천]

언제부터 당산제를 지냈는지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으나, 딱 한 번 당산제를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15년 전 마을에 생기복덕한 사람이 없어 그 해 당산제는 지내지 않았다. 대신 이장이 당산나무에 술을 한 잔 올리고 절을 한 후, “올해 당산제의 당주가 될 생기복덕한 사람이 없어, 다음달 보름에 제를 지내겠습니다.”라고 고했다. 그리고 같은 해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냈다. 이외에는 지금까지 날짜와 시간이 변동되거나 해를 걸러 제를 지내는 일은 없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의 수호신이 좌정된 신체는 당산나무로 수종은 해송이다. 이 당산나무는 여수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시에서 나무의 건강 등을 관리해 주고 있다. 나무의 수령은 500년이고, 수고 15m, 가슴둘레 3.6m, 수관폭 1.5m이다.

본래 당산나무에서 제를 지냈으나, 날이 추워 당집을 짓고 그곳에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당집은 총 2칸으로 이루어졌다. 왼쪽 방은 제를 지내는 방이고, 오른쪽 방은 제물을 장만하는 부엌이다. 부엌에는 제물을 장만하기 위한 솥, 그릇 등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절차]

음력 섣달 그믐날 밤 10시경 마을에 인기척이 없을 때를 맞춰 당주와 부당주는 당집으로 올라간다. 당주는 먼저 당산나무 몸통에 둘러져 있는 금줄에 마른 명태를 꽂는다. 이는 ‘지금부터 당산제를 지내겠습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당집의 부엌에서 메를 짓고, 이외의 제물은 대부분 당주집에서 장만하여 온다.

자시가 되면 제물(과일, 나물, 포, 생선(굴비), 탕, 국, 밀씨(삶은 것), 목화씨, 초, 향 등)을 진설한다. 제주는 당주가 전날 직접 빚은 막걸리를 사용한다. 그리고 메 두 그릇을 올리는데, 이는 할머니 외에 외동마을의 당산신인 할아버지도 같이 참석하여 드시라고 준비한 것이다.

진설이 끝나면 초헌-아헌-종헌 순으로 제를 진행한다. 종헌까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모아서 당산나무 옆의 돌 속에 묻는다. 이것을 ‘물밥’이라고 한다. 이렇게 당산제가 끝나면 당주와 부당주는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각자 제물을 가져가 당집 앞에 놓고 상쇠의 굿소리에 따라 할머니에게 절을 하면서 인사를 올린다.

개인은 물론 마을 모두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고, 소원 등을 기원한다. 이후 밀(삶은 것)과 목화씨를 가지고 액을 방지하기 위해 굿을 치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돈다. 마지막으로 선착장에 도착하면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각자 상을 차리고 인사하는 동안, 굿에 따라서 밀과 목화씨를 주변에 뿌린다.

[축문]

당산제를 모시는 것은 자기 정성을 들이는 것이기에 대부분 초헌을 한 후 축문을 읽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그 해 당주에 의해 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대행사]

선착장에서 인사가 모두 끝나면 굿패는 당주집으로 가서 문굿부터 시작하여 정재굿까지 한바탕 굿을 쳐준다. 이는 그 해 당산제를 지내준 수고에 대한 답으로 필수적이었다. 굿을 치는 동안 당주는 음식을 내와서 그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이후 횟집이나 굿을 쳐달라고 부탁하는 집이 있으면 그 곳에 가서 굿을 쳐준다. 이렇게 지신밟기는 끝난다.

제가 끝나면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음복을 한다. 당주가 제의 전날에 빚은 막걸리를 가져와서 모두 나누어 마신다. 당산제에 대한 결산보고는 마을 총회에서 통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보고한다. 내동마을에서는 마을 총회를 1년에 2번 한다. 6개월마다 마을에 대한 일들을 의논한다.

[현황]

몇 년 전에 경호동 경제개발과에서 당산제 터를 구입하려고 하였으나, 주민들이 극구 반대를 하여 계획을 취소하였다. 당산제를 모시는 며칠간은 교회에서도 종을 치지 않는 등 금기를 지키고 있다. 비록 당주에게 부여된 금기가 너무 엄격하여 힘이 들지만, 당산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에도 마을 앞바다를 지날 때 동네 배는 제당 부근에서 기계를 끄고 당산을 지나면 다시 시동을 켜고 간다고 한다.

[참고문헌]
  • 인터뷰(경호동 내동마을 이장, 여정식, 남, 61세, 2007.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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