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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249
한자 大浦里新基號神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Singi Village, Dapo-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신기마을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8월 15일 오전 10시~11시
의례장소 가마봉 굴바우
신당/신체 굴바우[여성신]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신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소라면 대포리 신기마을 호신제는 매년 공동으로 모시는 마을 제의이다. 제를 지내는 날짜는 음력 8월 15일(추석)로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제를 모신다. 제주는 제를 모시기 일주일 전에 마을회의를 통해서 선정한다. 궂은일을 하지 않은 깨끗한 사람으로서 제주 1명과 집사 3명이다. 예전에는 제주가 지켜야할 금기가 많았으나 지금은 금기가 약화되어 스스로 궂은일을 가리며 근신한다.

제비는 마을 공동자금을 이용하는데, 가끔 출향민들이 희사하는 경우도 있다. 제사비용은 대략 50만 원이다. 여기에는 당일 마을 잔치할 때 나눠 먹을 음식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제를 모시기 3일 전에 제장 주변과 마을 안팎을 청소한다. 예전부터 금줄을 치거나 황토를 뿌리지 않았다.

상수도가 각 가정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마을 공동우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장은 제를 지내기 2~3일 전에 부녀회장과 부녀회원들이 여수 시장으로 보러 가며 물목기를 작성해 간다. 제물로 사는 것들로는 돼지머리, 곶감, 대추, 배, 사과, 생선포, 나물, 시루떡 등이다. 제물을 살 때는 절대로 값을 깎지 않는다. 제주로는 소주를 사용한다.

제물장만은 제를 모시는 당일 아침 일찍 마을회관에서 한다. 음식 장만은 부녀자들이 모여서 하는데, 궂은일을 한 사람은 오지 못한다. 음식을 만들 때는 침이 튀지 않게 말을 거의 하지 않으며,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한다. 또한 고춧가루를 치지 않고 간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제기는 스테인리스로 된 마을 공동 그릇을 사용한다.

[연원 및 변천]

오랜 세월 동안 호신제를 지내왔기 때문에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제를 모신 이후로 중단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를 모시는 장소는 한 곳으로 마을 뒤쪽에 있는 가마봉 중턱의 큰 바위 아래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굴바우’라고 부른다. 굴바우에 특별한 신격이 있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성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가마봉이라는 산 이름에서 가마는 여자가 시집을 갈 때 타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신은 여성신이라는 것이다.

[절차]

제를 모시는 날 아침 제물장만이 끝나면 제주와 집사가 제장으로 이동한다. 제물을 차에 실고 산 아래까지 이동한 다음에 제주와 집사가 제물을 하나씩 들고 제장으로 올라간다. 이때 스스로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따라 간다. 제장이 산에 있기 때문에 주로 남자들만 제에 참석한다. 제주가 입는 제관복은 따로 없으며, 평상복 중에서 깨끗한 옷을 입는다. 예전부터 호신제를 모실 때는 조용하게 모셨기 때문에 굿을 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제장에 도착하면 제주와 집사가 진설을 한다. 이때 차리는 제물로는 돼지머리, 사과, 배, 곶감, 대추, 생선포, 나물, 시루떡, 메 한 그릇, 탕 한 그릇, 술 한 잔 등이며, 시루떡은 시루째 올린다. 진설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제를 지내기 시작한다. 먼저 제주가 술을 한잔 올리고 절을 한다. 다음으로 제주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구축으로 빈다. 제주의 구축이 끝나면 같이 제에 참석한 사람들도 술을 한잔씩 올리고 절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술을 올리고나면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어 사방으로 던지는데, 이를 ‘물밥’이라고 부른다. 물밥을 주고 나면 제가 끝나게 된다. 그 이후로 제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제물을 음복하고 남은 음식을 회관으로 가지고 가서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제주는 제를 모시기 전까지만 궂은일을 가리며, 제가 끝나고 나면 금기에서 해방된다.

[부대행사]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날 마을에서 줄다리기를 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전승이 끊겼다고 한다. 또한 정월달이 되면 집집마다 굿을 쳐주고 다니면서 집안의 액운을 몰아내는 ‘지신밟기’를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대포리 신기마을 이장 김정한, 남, 67세, 2007.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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