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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3001
한자 歸還村
이칭/별칭 귀환정(歸還町)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61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태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광복 이후 일제강점기 때 해외로 갔던 동포들이 여수로 귀환하면서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일대에 만들어진 정착촌.

[명칭유래]

1945년 광복이 되자 일본 등 외국에서 돌아온 동포들 중 오갈 데 없던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귀환촌 또는 귀환정(歸還町)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귀환촌은 일본을 비롯한 만주나 해외에서 많은 귀환동포들이 쏟아져 들어와 여수건국준비위원회에서는 구항 부두에 귀환동포임시접수소를 마련하고 이들을 맞아들여 수정동 연탄공장부지 일대와 자산공원 밑에 있는 일본군병사 및 고소동 이충무공비각 밑에 있었던 해월루 등에 수용했다. 그리고 신월리 일본군부대에서 식량과 모포 등을 가져와 이들을 구호했다.

형성 이후에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유입, 마을이 형성되어 주로 외지에서 여수로 이주한 도시 빈민들의 일시적인 보금자리 마을로 정착되었다.

광복 이후 일본에서 귀환하는 동포들이 임시로 머물기 위해 지었다가, 철거 당시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며 사는 곳이었다. 마을주민 전체가 공동화장실을 사용하였으며 여수지역 마지막 판자촌이었다.

이곳은 철도청 소유로 33㎡도 되지 않은 판잣집이 거주민의 전재산이었기에 겨우 허름한 건물만 힘겹게 보듬고 살아왔던 곳이다. 1969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이틀 동안 덕충동 철도 인근에서 대책 없는 이주 정책에 항의하는 큰 시위가 벌어져 경찰과 투석전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경찰 측도 21명이 주민들이 던진 돌에 맞고 중상을 입는 등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았다.

[현황]

2009년 당시 107세대 22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2012여수세계박람회 부지 공사로 인해 모두 이주하였다. 지금은 엑스포역세계박람회장으로 변모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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