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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巨文島)의 유래가 된 서도리의 학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B030402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호

거문도(巨文島)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큰 학문이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거문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거문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삼도(三島)’라 불렸다. 그러다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불법으로 1885년부터 1887년까지 거문도를 점령한 거문도 사건 당시 청나라의 정여창(丁汝昌) 제독(提督)이 거문도에 자주 상륙하여 섬 주민과의 회담이 있었다. 그런데 언어가 통하지 않자 한문(漢文) 필담(筆談)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섬 주민의 뛰어난 문장에 감탄한 정여창 제독이 조정에 청하여 ‘巨文島(거문도)’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면 정여창과 필담을 나눈 사람은 과연 누구였으며 무엇이 정여창을 감탄하게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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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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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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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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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그동안 필담을 나눈 사람을 귤은(橘隱) 김유(金瀏) 선생 혹은 만회(晩悔) 김양록(金陽錄) 선생이라고 했으나, 김유 선생은 거문도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84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김유 선생은 아니다. 서도리의 이(里) 서기를 하면서 노인들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이귀순[73세, 거문도뱃노래보존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김양록 선생은 필담을 나누는 장소에는 참석했으나 필담은 나누지 않았고, 당시 필담을 나눈 사람은 서도리 촌장이었던 윤성(允成)이라는 자(字)를 쓴 김현희(金賢喜)이었는데, 당시 나눈 필담은 정여창이 촌장에게 ‘귀하하세야(貴下何歲也)’라고 나이를 묻자, 촌장은 ‘아세사십야(我歲四十也)’라고 대답하지 않고 ‘아세초초사십야(我歲怊怊四十也)’라 하자, 정여창이 필체와 문장을 보고 궁촌벽지인 서도리 사람들의 학문 수준에 깜작 놀라서 학문이 높다고 칭찬하고, 고종에게 건의하여 섬의 이름을 ‘巨文島(거문도)’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거문도서도리뿐 아니라 고도동도를 포함한 삼도(三島) 전체를 부르는 땅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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