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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답진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군내리의 지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C020107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종길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방답진(防踏鎭)은 1523년(중종 18)에 설치되어 임진왜란 때 최전방에서 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던 전라좌수영 휘하의 첨사진이었다. 1896년 돌산군 창설 때까지 374년이나 되는 오랜 기간에 조선 수군의 진이었다. 군내리에는 지금도 방답진 당시의 많은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서 나라를 구했던 선조들의 이야기와 생활상을 전하고 있다. 방답진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지명들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서외마을 앞에 있는 ‘굴강’은 ‘갱안’ 이라고도 하는데, 전선들이 썰물 때에도 항시 출전이 가능토록 바닥을 깊이 파서 배를 띄워 놓았던 곳인데, 전선 9척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굴강이란 말은 바다에서 육지로 굴처럼 깊이 바닥을 파서 강처럼 물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위에 큰 정자나무 다섯 그루가 있는데 거북선을 매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주위에는 군량 창고와 병기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방답진성을 중심으로 성을 드나들었던 성문이 있던 곳의 이름도 전해 온다. 동문과 동문안, 동내마을, 동문안골, 동문안샘 등은 모두 동문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영남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는 남문은 문루의 대형 주춧돌 일부가 아직 남아 있는데 남문과 남문밖 마을인 남외마을 이름이 전해 오고 있다.

서외마을도 성의 서문 밖에 있던 마을이며, 주변에 서문터, 서문, 서문안이란 지명들이 서문과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전해 온다. 방답진 군사들의 생활을 알려주는 이름으로 무예 훈련을 하였다는 연무정터와 활을 쏘는 훈련장이었다는 솔통이 전해 오며, 서울에 임금이 돌아가시면 곡을 하였다고 하는 망곡간과 수군의 무사안일을 빌었다는 용제단터가 전해 온다. 관리들이 정자에서 시를 짓고 놀았다는 망월대벽송정방답진 시절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이름들이다.

이밖에도 가뭄 때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우단 터와 마을의 풍수가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지형이라는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의 지세를 비보하기 위해 소대각시를 비롯한 세 여신을 모신다는 당집인 성황사가 있으며, 금을 도금했다는 도금터, 배를 만들었다는 조선터라는 이름이 전해 오고 있다.

방답진이 있던 성 주변 세 곳의 우물인 동문안샘·관청샘·서문골샘과 네 군데에 다리를 세워 이웃 사랑과 상부상조의 정신을 잘 보여준 삼정사교비(三井四橋碑)에 기록된 다리와 우물의 이름도 당시의 방답진의 모습을 나타내 주는 이름들이다. 군내리 읍사무소 부근에 전해 오는 사창터·불무통·객사터·옥터·이방청 등의 지명도 방답진의 역사가 묻어나는 땅이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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