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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김원권 애양원 원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D030202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무성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한 지 사반세기가 넘게 활동한 애양원 김인권 원장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평생 둥지를 튼 것은 1980년 공중보건의로 군 생활을 한센병 환자들의 보금자리인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에서 하게 된 데서 연유한다. 입대 전 결혼한 부인까지 동참시켜 3년 내내 소록도 관사에서 살았다. 제대한 뒤 1983년 5월부터 국내 최초의 한센병 치료기관인 애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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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원장

모교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에서 제의한 교수직까지 물리쳤다. 살림집도 병원에서 가까운 순천에 마련했다. 이러한 부모의 뜻을 따라서인지 딸과 아들도 서울 생활에 대한 미련 없이 지방 도시에서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개척하며 만족스러운 청년기를 보내면서, 출세욕보다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인생의 큰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김인권 원장에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바쁜데다가 행복하고 만족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후회할 틈이 없다’며 해맑은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하였다. 일생을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데에 헌신하였던 장기려 박사의 모습이 그에게 재현되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 오뚝한 콧날 때문에 가끔 환자들로부터 ‘웬 외국인 의사냐.’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저 때문에 환자들 상황이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면 금세 힘이 난다.’고 하였다. 김인권 원장은 남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안하는 일에 더 매달린다.

지금도 아침 9시 45분이면 어김없이 수술실로 간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번까지 인공 관절 대체 수술을 하는 ‘체력 짱’이다. 매달 250여 건, 일 년이면 3,000여 건이다. 지금껏 애양원에서 4만여 건을 수술했다. 하지만 임상 관련 논문이나 학술 발표는 되도록 미룬다. 그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애양원 선배 의사들로부터 직접 현장에서 배워서 실행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성 싶지 않는 삶을 김인권 원장은 애양원에서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현장에서 몸으로 행하고 있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웠고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한 대형 병원이 입원이 급박한데도 입원비가 없다 하여 의술 행위를 미루었다가 많은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자선을 강조한 종교 집단에까지 맘몬 사상이 침투하는 현실이 심각한 위기라는 지적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 이때에 김인권 원장의 헌신적인 의술 행위는 애양원의 미래를 밝게 비추어 주는 등대이다.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이는, 불교 용어로 하심(下心)을 통해 애양원이 단지 기독교만의 성지가 아니라 다른 종교 사람들이 쉽게 발길을 머물게 하는 이유를 김인권 원장의 모습에서 느낄 수가 있다. 보통사람들이 사는 방법에 대해 김인권 원장은 이렇게 강조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현실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생활하면서 남을 조금 배려하는 생각과 행동에는 인색한 것 같다. 평소에 조금씩 돕고 살아야 한다.”

애양병원 한상인 경리과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원장님은 지존으로 통한다. 수술도 잘하지만 독서량이 워낙 많다 보니 고고학이나 동서양 역사 등에서 전문가 수준을 넘는다.”며 칭찬의 말이 가득하다. 이런 찬사의 말에 애양원뿐만 아니라 애양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한다. 신용 사무국장은 “원장님이 정말 화가 나서 가장 심하게 한다는 말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질문하면서 눈에 힘줄 때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

김인권 원장의 생활신조는 성실로 요약된다. 술이나 담배는 남이고, 취미 생활은 수술이고, 그 활동 무대는 병원이다. 직원들을 집이나 사무실로 초대해 직접 커피를 끓여주고,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하면서 아이들 장래에 관해서도 조언하기도 한다.

지난 2003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들이 장한 동문들에게 주는 ‘장기려 박사 의도상(醫道賞)’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했으나 고사하였다. 결국 주변 인사들의 간곡한 권유에 밀려 마지못해 수락하였다. 세상의 명예와 부귀와는 거리가 먼 선비적 정신을 소유한 이 시대의 참 스승이다. 존경할 만한 스승이 거의 없는 현시대에 이런 사람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파에 퇴락한 현대인들에게 맑은 청량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참 인품을 갖는 사람의 향기는 천 리를 간다는 옛 속담도 김인권 원장을 직접 접촉해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의료 행위로 부를 축적하는 일부 의료인들이 있지만 김인권 원장에게는 전혀 해당 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교수로서 명성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애양원을 선택하였다.

말은 쉽지만 이를 행동으로 보이기에는 많은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냥 단순하게 결정한다. ‘의료인들도 욕심 내세우지 말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진료해야 하고 급여로 받은 돈의 일부를 기꺼이 희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후배 의사들에게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은 정부 예산 한 푼 받지 않고도 8명의 의사와 48명의 간호사, 43명의 행정직원, 그리고 90병상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적잖은 규모의 흑자로 재정의 건전성이 높아가고 있다. 이 돈으로 병원에서 운영하는 88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이용하는 무료 양로원과 20명이 생활하는 재활직업훈련장의 살림살이에 보탠다. 김인권 원장은 ‘항상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산다. 평범한 일에 감사하고 기도하면서’라며 긴 여운을 남기면서 서둘러 수술실로 향한다. 의사로서의 직무에 오늘도 충실하고 있다.

김인권 원장은 애양원이 맞고 있는 새로운 전환점에서 중요한 매김이 될 수 있다. 한센병 환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형과 신경 등 분야에서 다른 의료 기관과는 차별화된 애양원으로서 나아가는 데 새로운 디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디딤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전의 축적된 의료 시술로 대중에게 최선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애양원은 당초 개원한 취지에 따라 사회에서 천대받은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까지도 의료 수진이 가능하도록 해 온 의사와 직원 그리고 환자들의 공동체적인 정신은 그 전통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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