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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대될 당시 여수 지역에도 「독립선언서」가 순천을 통해 율촌면과 여수읍 내로 전달되었다. 이후 4월 1일 쌍봉면·소라면·율촌면의 3개 면에서 산발적인 소규모의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또 그날 밤 돌산면·화정면·남면·삼산면 등 4개 면에서도 일부 어민들이 산발적인 시위 운동을 벌였다고는 하나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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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 4월 15일 영국이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19세기 중엽 산업자본이 독점자본으로 성장하면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서구 열강들의 각축은 더욱 치열해져 식민지 침략의 손길이 동북아시아까지 뻗치기 시작하였다. 1860년 러시아는 한반도 동해(東海)에 임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강점하였으나, 이 항구는 겨울철에 얼어붙어 해만(海灣)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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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정지의 함대가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해전. 고려 우왕 초기 바다에서는 나세(羅世)·최무선(崔茂宣) 등의 진포대첩, 그리고 내륙에서는 이성계의 황산대첩으로 왜구의 기세가 일단 진압이 되었다고는 하나 바다를 넘어다보는 왜구는 쉽사리 근절되지 않았다. 1383년(우왕 9) 해도원수(海道元帥) 정지(鄭地)[1347~1391]는 그의 함대를 거느리고 나주·목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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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내세웠으며, 유·불·선은 물론 민간 신앙과 천주교를 포용한 당시 사회사상의 합성체로 평민은 물론이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동학의 교리에는 개벽과 평등의 반봉건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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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9일 여수시 남면 두룩여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된 사건. 6.25전쟁 당시 전선이 여수 지방까지 남하하자 위기를 느낀 미군은 전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여수시 남면 소두라 인근의 두룩여 해상의 어민들까지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증언자들이 비교적 많이 생존하고 있고, 인근의 섬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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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일어난 로버트 김의 석방 및 구명 운동. 로버트 김[김채곤]이 미국의 국가 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미국연방수사국(FBI)에서 수사를 받고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것이 알려지자, 전라남도 여수시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석방 및 구명운동이 전개되었던 일이다. 미국 해군 정보국에서 정보 분석관으로 20년간 근무한 로버트 김이 북한의 동향 정보를 주미 한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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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종과 순종의 장례식에 통곡단을 조직하여 참석한 사건. 1864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왕조 제26대 왕에 등극한 고종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퇴위하기까지 43년 동안 실로 내우외환이 겹치는 국난 가운데서 초의한식(草衣寒食)으로 편할 날이 없다가 1919년 1월 일본인에 의한 독살설이 나도는 가운데 서거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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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9일 주민 투표에 의해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의 3개 행정구역의 통합. 여수 지역 행정구역 통합 논의는 여수상공회의소가 1983년 1월 여수시와 당시 여천지구출장소의 통합 당위성에 대한 용역을 하여 홍보하면서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수시 쪽의 일방적인 처사에 격분한 여천지구출장소 관내 유지들이 통합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94년 2월 14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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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년(선조 20) 손죽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와 전라좌수군이 벌인 전투. 1587년 1월 말경에 일본 규수의 오도(五島)와 평호도(平戶島) 출신들이 탄 왜선 두어 척이 흥양 녹도진[현재 고흥군 녹동] 앞바다를 침범했다. 보통 때 같으면 동남풍이 부는 4월 이후에 왜선이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예상을 깨고 일찍 침범했다. 녹도 만호 이대원이 경황이 없어 주장에게 보고하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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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소리도 해안에서 1995년 7월 23일 유조선의 침몰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 GS칼텍스[당시 LG정유]의 기름을 적재한 씨프린스호가 태풍으로 침몰하여 유출된 기름이 인근 양식장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연안의 환경 파괴를 불러온 우리나라 최대의 유류 해양 오염 사고이다. 1995년 7월 23일 오후 2시 10분경, 당시 전라남도 여천군 남면 소리도 동쪽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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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선진 시민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벌인 시민운동. 여수시에서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청결·질서·친절·봉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엑스포 4대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하고 여수 시민들이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시민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엑스포 4대 운동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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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군에 거주하고 있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거나 해상에서 총살된 후 바다에 수장하여 유기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여순사건 이후 내무부·국방부·법무부 정부인사의 주도하에 1949년 4월 20일, 서울시경찰국에서 국민보도연맹을 창립하여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적인 조직이다.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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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여수군청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여수군청은 간숙당이라는 건물로, 1479년(성종 10)에 전라좌수영성과 같이 지어졌다. 역대 수군절도사들의 시무청인 운주헌으로 불려오다가, 1897년 여수군이 설치되면서 여수군청으로 사용되어온 건물이었다. 위치는 전라좌수영 역내 지금의 군자동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2.314m²의 부지에 결승당과 완경루 등의 두 부속 건물이 있었다. 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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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여수현을 다시 설치하기 위하여 벌인 동맹 운동. 1896년 2월 완도나 돌산 같은 섬마저 군이 되었으나 여수 만은 열심히 복현 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설군(設郡) 문제가 실패하여 여전히 순천부 관할에 묶이게 되었다. 이에 형편에 맞지 않은 조정의 처사에 분개하여 1896년 3월 18명이 고장의 비원을 풀기 위해 동맹하였다. 전라남도 여수현에서 발생한 삼복삼파 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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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여수수산학교 독서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운동. 1930년대 여수는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지식인들 사이에 유입되던 사회주의 사상이 민중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일제에 의한 현실사회의 모순을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수수산학교의 독서회는 사회주의의 함양과 보급을 통한 항일운동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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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와 순천 및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 인접 지역에서 광복과 제주4·3사건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 지역을 점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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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 여자만 해상에서 벌어진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50년 8월 9일 여수시 여자만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6.25전쟁 당시 전선이 여수 지방까지 남하하자 위기를 느낀 미군은 전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여자만 해상의 어민들까지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1950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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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세기에 걸쳐 일본의 해적 집단이 여수 지역을 수시로 침입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사건. 왜구는 일본의 해적집단으로 일본 중세기의 혼란기에 중앙 통치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할 때 가까이는 한국, 멀리는 중국 연안까지 침입하여 큰 해를 주었다. 이 해적들은 주로 서부 일본의 연해민으로서 생활필수품인 쌀 등을 구하기가 어려워 해적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 왜구의 침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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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에서 미군폭격으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 6.25전쟁 당시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 해상에서 미국 공군 전폭기에 의해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으로서 아직까지 종결이 되지 않은 사건이다. 1950년 8월 3일 미군의 불법적인 안도리 폭격의 희생자들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부산에서 남해안 도서로 소개되어 피난민 배에 탑승 중인 민간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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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남해안 지방에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자 조선 조정에서는 비변사(備邊司)라는 합좌기관(合坐機關)을 설치하여 대비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 조정 내부는 대체로 당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이(李珥)가 10만양병설을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정에서 각 도에 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성곽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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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중국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전라남도 여수에서 발생한 중국인 추방운동.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에서 발생한 만보산 사건이 국내의 일부 신문에 의해, 만주의 우리 동포들이 중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습격당했다고 전해졌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중국인들을 박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여수에서도 중국인 추방 운동이 벌어졌다. 일제는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만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