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에 있는 산. 산의 이름은 산 정상부가 마치 가마처럼 평탄하게 생겼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풍화된 육산으로, 해발고도 367m의 산이다.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르나 산정부는 평탄한 지형이 나타난다. 황새봉과 함께 쌍봉천 수계에 속하는 소라천의 주요 발원지이다. 소라천으로 유입되는 지류가 이곳 가마봉에서 남쪽...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에 있는 생태환경 교육시설. 어린이와 청소년, 시민을 위한 다양한 생태환경 교육과 자연생태 체험 활동, 기후 보호와 에너지 교육을 목적으로 여수YMCA가 1만 6000㎡ 부지에 36억 원을 투입하여 2011년 건립하였다. 대지면적 6,400㎡, 연면적 2,527㎡[본관 및 별관 3동]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시설로 본관에 교육프로그램실, 세미나실, 강당...
-
일제강점기에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마을이 농촌 지역 배후 도시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소라면 일대에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 대단위 농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여수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덕양마을 부근은 평지보다는 산이 많고, 간척 사업이 이루어지기 전 마을 입구 해안가는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덕양은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나 갯벌에 나가 어패류를 채취하는 것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관마을과 하관마을을 포함한 관기리(館基里)는 관 터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 부르는 이름으로, 화양면 지역에 있던 곡화목장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이 묵어가던 여관이 있어서 관(館) 터라 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며, 옛날부터 관리들이 살았던 터이기 때문에 관(官) 터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관기리 지역 주변을 살펴볼 때, 성본마을과 화양...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배움을 즐기며 스스로 학습하는 어린이, 꿈과 소질 계발로 나를 가꾸는 어린이,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나눔과 배려로 함께 어울려 사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9년 3월 5일 관기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되어 4월 1일 문을 열었다. 1984년 3월 8일 관기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이 개원하였다. 19...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과 화양면에 걸쳐 있는 간척지. 『전라남도 여수군읍지(全羅南道 麗水郡邑誌)』 ‘제언조(堤堰條)’에 나오는 “석보해언(石堡海堰)은 여수면 20리에 있으며, 걸망해언(乬望海堰)은 소라면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여수 지역에서는 18세기 전부터 간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간척이 실시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다. 관기평야는 전라남도 여...
-
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동구(李東耉)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받드는 성씨이다. 신라 호족의 후예인 이자성은 고려 건국과 더불어 회안호장(淮安戶長)으로 강등되었다. 이에 따라 후손들은 처음에 회안을 본관으로 삼았다가 회안의 현재 지명인 광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국사암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절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주변마을은 물론 율촌면과 화양면, 멀리 여수 시내에서까지 많은 신도들이 찾아오고 있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국사암의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는 없다. 현재의 국사암은 박후남이 일으킨 것이다. 박후남은 불문에 눈을 떠 살림집에서 부처님을 모시...
-
임비를 시조로 하고 임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나주임씨(羅州林氏)는 고려조에서 벼슬을 지내고 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상장군에 오른 임비를 시조로 받든다. 그 후 시조의 9세손 임탁(林卓)이 고려 말에 해남감무를 역임한 후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이 되어 나주 회진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에 따라 후손들은 나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임탁의...
-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했던 덕양마을이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930년 여수-광주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덕양역이 설치되고 1933년 면 소재지가 옮겨오면서부터이다. 덕양은 이때부터 소라면의 중심지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소라면에는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막아 조성한 농토가 있었는데 복산간척지가 446,283㎡, 관기...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 있는 섬. 다리섬이라는 이두음에서 유래되었다. 사면이 바다로 싸여 있고 둥근 달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월천(月川)이라 부르다가 달천도로 바뀌었다. 최고 지점은 88m 구릉으로 대체로 완경사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북동쪽 만입부와 동쪽 해안 일대에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썰물 때는 섬 전체가 육지와 이어진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중성화산암류가 대부분을...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정리인 대포리에는 대포1구, 대포2구, 대포3구라는 행정리가 있는데 원대포, 구족도, 남해촌, 이상촌, 가마등, 신기, 장전, 노촌, 마전이라는 각각의 마을 이름이 있다. 대포2구에는 구족도와 남해촌, 가마등, 이상촌마을이 있다. 구족도마을은 간척지가 들어서기 전 마을이 해안으로 개의 꼬리 모양으로 늘어서 있어 개꼬랑지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신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소라면 대포리 신기마을 호신제는 매년 공동으로 모시는 마을 제의이다. 제를 지내는 날짜는 음력 8월 15일(추석)로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제를 모신다. 제주는 제를 모시기 일주일 전에 마을회의를 통해서 선정한다. 궂은일을 하지 않은 깨끗한 사람으로서 제주 1명과 집사 3명이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장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대포리 장전 칠성제는 음력 7월 7일 오전 8시부터 9시 사이에 마을회관 앞에 있는 당산나무(귀목나무)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의이다. 이를 ‘칠석제’라고 한다. 당산나무는 ‘당산할머니’ 또는 ‘당산님’으로 부른다. 제관은 제일(祭日) 일주일 전에 마을에서 제일 깨끗하다고 판단되는...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에 있는 저수지. 대포저수지는 소라면 대포리 지역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1929년 착공하여 1934년 축조되었다. 대포저수지는 토언제 형식으로 50만 톤 이상을 보유할 수 있다. 유역면적 1,440㏊, 만수면적 22.6㏊, 수혜면적 260.6㏊이다. 대포저수지의 길이는 177m, 폭은 4.5m , 높이는 13.9m이다. 저수량은 1380.998천...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황새봉과 율촌면 수암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하천. 하천 중·상류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중성화산암류가 관입되어 있으며, 하류쪽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인 낙동층군하부에 속하는데 유로를 따라 엷은 충적층이 발달하였다. 많은 지류가 발달되어 있으며, 하류에는 제방을 쌓아 간척한 소라평야가 있다. 하천 연장은 약 13.5㎞로서 여수반도에서 가장 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서 돼지 곱창과 갖은 야채를 넣어 볶은 향토음식. 곱창이 언제부터 조리되어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문헌상으로는 조선 순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徐有榘)가 만년에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1938년 발간된 『조선요리법』에 등장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안주를 하든지 밥을 말아먹든지 다 좋다”라고 두 문헌은 소...
-
덕양시외버스정류장에서 장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 가보면 좌우로 식당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곳이 유명한 덕양곱창 식당가이다. 이 식당가에서는 음식 가격이 1인분에 소곱창전골 7,000원, 돼지곱창전골 5,000원, 새끼보 7,000원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평일에도 덕양곱창 식당가를 찾는 손님 차량들이 시장터와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고, 식당 안에는 곱창전골 냄...
-
덕양역 앞에 너른 광장과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덕양장터이다. 오일장의 기능이 사라진 지가 10여 년이 되서 그런지 시장터의 흔적이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장터에 있는 식당 간판들은 밝고 활기차 보이고, 식당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식당 입구에는 큰 고무통 안에 돼지 곱창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종업들이 물로 씻고 있는 모습...
-
덕양장터 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과 화양면 일대에서 농산물을 내다 팔거나 농기구나 일용품을 사기 위하여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 당시에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덕양장터나 덕양역까지 오려면 농촌 지역에서는 지게에 짐을 지고 걸어와야 했다. 특히 소 거래는 새벽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장에 나온 사람들은 아침을 해결해야 했고, 장터에 일 보러 온 사람들은 농산...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곱창전골 거리. 1917년 여수-순천 간 신작로가 완공되면서 세동[현 소라면 덕양리]에 우시장인 덕양장이 개설되면서 음식점도 함께 번성했는데 그중에서 주종을 이룬 것이 바로 곱창전골 식당이었다. 이후 2017년 7월 20일 화양면 나진리 소장마을에서 굴구지마을 간 도로를 확포장하여 교통이 원활해졌으며, 2019년 나진-안포 간 도로 신설, 20...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서 2002~2005년까지 개최되었던 곱창 축제. 1930년 9월 소라면 덕양리 하세동마을[현 소라면 덕양리 덕양2구]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됨에 따라 덕양리 1270-1번지를 비롯한 5필지 일대에 세동장[현 덕양장]이 들어섰다. 1931년에는 세동장에 우시장을 유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음식점도 함께 번성했는데 그중 주종을 이룬 것이 바로 곱창 식...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양리 지역에는 덕양1구에서 덕양6구까지 여섯 개의 행정리가 있다. 덕양1구로 불리는 상세동마을은 하세동과 더불어 바다로 이어지는 가늘고 긴 골짜기가 있어서 가는 골이라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 적어서 세동이라 하였다. 1921년 소라공립보통학교와 1925년의 대포 간척지 등이 조성되면서 지금과 같은 마을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193...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조산마을에 있는 원삼국시대 후기 주거지. 덕양리 조산 주거지는 1991년 지방도로 확·포장 공사 때 훼손된 채 확인되어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긴급히 조사되었다. 수혈 주거지로 깊이는 60㎝이고, 장축은 동서 방향이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이 유적을 조사할 당시 현장 주변에는 상당량의 소토(燒土) 및 탄화맥(炭化麥)과 함께 주거지 내부가 파괴되면서...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조산 주거지의 화덕자리에서 출토된 원삼국시대 탄화 보리. 덕양리 조산 주거지 출토 탄화맥은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여수반도에서 최초로 조사된 원삼국시대 후기의 주거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탄화맥은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여 길이 6.5~8.5mm, 너비 3~4mm, 두께 2~3mm로 측정된다. 계측치로 본 장폭비는 2.3㎜ 정도이다. 덕양리 조산...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흑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덕양리 흑산 당산제는 음력 7월 15일 백중날 낮 12시경에 마을 앞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지내는 마을 제의이다. 신격은 목신님이며 당산할아버지로 인식하고 있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지낸다. 예전에는 당산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난 후 샘에서도 샘제를 지내고 샘굿을 쳤다. 그런데 10여 년...
-
덕양이라고 하면 행정구역상 덕양리에 속해 있는 상세동·하세동·삼거리·성재·통천·가장·흙산·내기·덕곡·가산·중승골 등 11개의 자연마을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덕양역과 삼거리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네 개의 마을을 말하기도 한다. 네 개의 마을을 덕양이라고 한정한 것은 당초 한 개의 마을에서 인구가 증가하고 주변에 새로이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네 개 마을은 행정구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전라선과 여천선의 역.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여수 지역에는 역원이 없고, 1486년(성종 17)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3개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무상원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덕양역으로 이동한 것 같다. 덕양역은 오수역(獒樹驛) 관할로 리(吏) 222, 노(奴) 86, 비(婢) 47,...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던 전통 재래 시장. 덕양역 인근에 형성된 덕양장은 주로 농수축산물을 거래하는 시장이었으며, 3일·8일·13일·18일·23일·28일에 장이 섰다.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덕양장, 서시장, 동시장이 만들어졌다. 덕양장은 여수 지역 중 북부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동시장은 여수 지역 동부권과 서시장은 여수 지역 중부...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에 있는 호랑산(虎狼山)에서 발원하여 석창들을 관류하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하천. 덕양천은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128번지를 기점으로 유로를 형성하여 소라면 덕양리와 여천동·화장동에 걸쳐 있는 지방 2급 준용하천이다. 하천 상류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중성화산암류가 관입되어 있으며, 중·하류 쪽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인 낙동층군하부에 속하는데 유로를 따라 엷...
-
오늘날 도시에서 생활하는 나이 드신 분들은 옛 정취를 느낄 수 없다고 한다. 도심은 삭막하고 농어촌 지역은 옛 정취를 느낄 수는 있지만 적막하다고 한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나이든 사람들이 삶의 질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덕양과 돌산읍 군내리를 예로 많이 든다. 그래서인지 덕양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자식들을 따라 여수나...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에 있는 사회복지 시설. 동백원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 동백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입주자들을 위한 재활 치료, 장애 인식 개선, 건강 증진 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여수 지역 장애인이 함께 거주할 공간의 필요성을 느낀 사회복지법인 동행에서 1986년 부지를 마련하여 장애인 거주 시설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1987년 국고 보조로 공사를...
-
농촌 마을에서 요즈음처럼 하루 세 끼 걱정 없이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생존해 있는 노인들 말에 의하면 정말로 먹기 위해서 살았다고들 한다. 노인들이 기억하는 어려운 시기는, 물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까지 거슬려 올라간다. 본래 한국 농촌 경제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소수의 지주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일...
-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의 치소가 그 지역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행정의 치소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게 마련이다. 1897년 5월 여수군이 설군되었을 당시에는 면 소재지가 덕양에서 남쪽 방향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는 지금의 관기리에 소재하고 있었다. 설군 당시 면 소재지였던 관기리에서 떨어져 있었던 지금의 덕양 일대에는...
-
덕양곱창 식당이 몰려 있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시장 터 2층 슬라브 건물의 아래층에는 덕양2구 경로당이 있다. 이 경로당에는 70~90세 되는 할머니들이 매일 모여서 소일하고 있었다. 먼 객지에서 와서 덕양에서 오랫동안 사신 할머니를 찾으니 금년(2008년) 90세 되는 두 할머니를 가리켰다. 한 할머니는 화양면 출신 90세 진종심 할머니와 동갑인 해주 출신 허광엽...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만든 산이 있으므로 조산 또는 복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복산리의 조산마을에는 전주이씨와 창녕성씨, 대곡마을에는 밀양박씨와 달성서씨, 마산마을은 해주오씨, 달천마을에는 김해김씨·창원황씨·상주박씨, 섬달천에는 경주김씨와 경주최씨가 처음 들어온 입향조로 알려지고 있는 성씨들이다. 본래 여천군 덕안면 지역으로서 1914...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이름은 마을 뒷산이 길지로 알려진 황새봉과 연결되어 있고, 황새봉의 머리에 해당되어 봉두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여천군 구산면 지역으로서 비봉산 머리쪽이 되므로 봉두 또는 봉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백수·당촌·풍곡리와 덕안면의 의곡·금대·운암리를 병합하여 봉두리라 하여 소라면에 편입되었다. 1998년 4월...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 당촌마을에서 마을 아이의 무탈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봉두리 당촌 칠성제는 음력 7월 7일 오전 10시 마을 창고 옆에 있는 공터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칠석날에 칠성제를 지내는 마을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대포리 장전 칠성제이다. 봉두리 당촌 칠성제는 15세가 된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제물을 장만하여 ‘칠성님’에...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 원봉두마을과 백수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봉두리 원봉두·백수동 당산제는 매년 섣달 그믐날 모시는 마을 제사이다. 제관은 깨끗하고 착실한 사람으로 매년 3명을 정한다. 제관은 주로 제를 지내기 10여 일 전에 마을회의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제관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노인회원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순번...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소라포면 사기마을[沙器閭]로 기록되어 있다. 사기를 굽는 곳이란 뜻의 사구실이란 마을 이름을 사기(沙器)라 하다가 여수군 신설시 사곡(沙谷)으로 개칭하였다. 전라북도 옥구에 살던 진주강씨가 1690년경 정착했다고 전하는데,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도자기 가마터가 많아 오랫동안 사구실마을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분청사기 도요지. 사곡리 도요지에서 출토되는 분청사기는 주로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인데, 수습되는 대부분의 문양은 돼지털이나 말총으로 묶은 큰 붓으로 문양을 낸 귀얄문이 대부분이나, 유약에 도자기를 흠뻑 담그는 덤벙 기법과 인화 기법, 조화 기법도 발견되고 있다. 조화 기법을 이용한 기면 장식은 항아리나 병 등에서 볼 수 있으며, 간...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복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 및 아이의 무탈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사곡리 복촌 당산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오전 10경에 마을 뒤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지내며 당산굿이 뒤따른다. 지금까지 중단된 적은 없지만, 만약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정월 보름에 지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상사·하사·망동 마을(사곡1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사곡리 상사·하사·망동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오전 11시경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이다. 마을 주민 모두가 협심하여 정성으로 이루어지며, ‘정자나무에 제 모시러 간다’는 표현을 쓴다. 당산나무 그늘 아래 모정이 있어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으며,...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2구 장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사곡리 장척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아침 10시에 마을 주민 모두가 협심하여 정성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제까지 마을에 큰 우환이 없고 크게 번성한 것이 다 당산제를 잘 모셔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장척마을의 당산나무와 관련된 일화를 살펴보면, 1946년경 250여 년 된 당...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에 있는 저수지. 사곡저수지는 1962년 소라면 사곡리 지역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유역면적 0.28㎢, 수혜면적 0.072㎢이다. 사곡저수지의 길이는 97m, 폭은 2m, 높이는 6.3m이다. 저수량은 11.32천 톤이다. 사곡저수지는 유수(流水)를 저장하여 물의 과다 또는 과소를 조절하는 인공 시설로, 관리는 여수시청에서 맡고 있다....
-
삼거리마을은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3구이다. 덕양마을은 마을의 중심부를 간선도로가 관통하고 있는데, 화양면 방면으로 연결되는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이 국도 17호선과 연결되는 도로와 이 마을에서 갈라지는데 바로 이곳이 삼거리이다. 삼거리란 마을의 명칭도 예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삼거리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생된 명칭이 마을 이름이 된...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3구 삼거리마을에는 삼일면 낙포리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1977년부터 삼일면 낙포리에 남해화학공장이 조성되면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마을이 해체되자 600여 세대가 집단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 여천출장소에서는 집단 이주할 장소로 안산동을 권하였으나 그곳은 택지 분양가가 높은데다 보상받은 금액으로는 분양받기도 어려웠다. 대부분...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의 덕양 시내에는 네 개의 마을이 있는데 이 중 상세동과 하세동이 가장 먼저 형성되었다. 국도 17호선을 따라 여수공항을 거쳐 오른쪽 방향 지방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덕양거리가 나온다. 덕양거리 양쪽에 상가가 연이어 있는데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경계로 오른쪽, 즉 지도상으로 보면 서쪽에 해당되는 곳이 상세동이고 건너편 마을이 하세동이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마을에는 다른 면 소재지와 달리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소라초등학교는 1921년 6월 20일 개교한 소라공립보통학교의 후신으로 당시 여수군 내에서는 여수서정보통학교와 여수동보통학교 그리고 돌산초등학교에 이어 네 번째로 생겼다. 도로변 학교 교정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큰 히말라시다가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어 일제 때 건립된...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와 대포리에 조성된 간척지. 1922년 여수에서 활동한 일본인 소유의 고뢰농장에서 화양면 백초리 소백초마을과 소라면 가사리 사이의 해안을 방파제로 연결하여 그 안쪽 걸망개를 간척지로 조성하였다. 조성 면적이 2.479㎢로 당시 여수에서는 가장 넓은 간척지가 되었다. 1925년 소라면 대포리와 삼일면 화치리[현 여수시 화치동]를 잇는 간척지가 조성됨에 따...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행정면. 소라면(召羅面)의 지명 유래는 주삼천과 율촌면 신풍리의 신풍천이 봉두와 대포 지역을 지나 소라천에 유입되어 비단을 짜듯이 교차하면서 바다로 흘러가는 교류지 역할을 하는 포구였다고 하여 부를 소(召)자와 비단 라(羅)자를 따서 부른 소라포구(召羅浦口)가 면의 동북쪽 지역에 있어 유래하였으며, 또한 조선시대에 소라포면(召羅浦面)이라 부른 데서 유래를 찾...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총 10종의 보호수. 소라면 보호수는 노거수로서 1982년 12월 3일, 2001년 8월 1일, 2004년 8월 6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소라면 보호수로는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높이 20m에 이르며, 마을 부근 및 낮은 산과 하천 주위의 비옥한 저습지에서 자생한다. 뿌리가 발달하여 강풍과 해풍에 강하다. 느티...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 하관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관기리는 마을을 관통하는 지방도 제863호선을 중심으로 윗마을은 상관마을, 아랫마을은 하관마을이라고 한다. 지방도 제863호선이 개통하기 이전에는 상관마을, 하관마을이 한 마을로 당산제도 함께 모셨고, 당산제 후 놀이도 함께 하였으나, 도로를 중심으로 마을이 분리되면서 당산제도 따로...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소라면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여수군 소라면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1949년 8월 15일 여수시 승격으로 여천군 소라면사무소로 변경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천시·여천군·여수시의 삼여통합으로 여수시 소라면사무소로 변경되었...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소재지인 덕양에서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 상세동과 하세동 사이의 간선도로를 걸어가면 장터 입구에 허름한 슬라브 2층 건물이 있는데, 소라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막걸리 주조장이다. 아직도 건물에는 지을 당시에 외벽에 붙였던 타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을 당시에는 고급스런 건물이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막걸리가 소주나 맥주에 밀려 있지...
-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지역에 존속한 행정구역. 소라부곡은 전근대 사회에 존재했던 향·소·부곡의 특수 촌락 집단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지역에 존재했다. 사회 발전에 따른 공동체의 통합 및 붕괴 과정에서 국가 제도에 따라 설치되었다가 조선 전기에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순천도호부에는 부곡(部曲)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사회 복지 시설. 소라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주민의 복지 증진에 필요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여 여수시 소라면 일대 저소득층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소라종합사회복지관은 1999년 12월 3일 여수시가 복지관 위탁 운영 약정을 체결하고 2000년 1월 27일 개관하였다. 같은 해 12월 31일 여수시로부터 보육 시설인 아이사랑어린이집을...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황새봉의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화치동을 지나 광양만으로 유입되는 하천. 소라천의 주요 발원지는 황새봉 산록 일대이며, 쌍봉천 수계에 속한다.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 1258번지를 기점으로 유로를 형성하여 여수시 화치동 일대에서 쌍봉천과 합류하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지방 2급 준용하천이다.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하천이 흐...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설립된 공립 초등학교. 배려와 나눔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어린이, 배움을 즐기며 스스로 학습하는 어린이,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생각하고 느끼며 꿈과 끼를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1년 9월 17일 소라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39년 4월 1일 소라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하였다. 이후 1...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분교장. 몸이 튼튼하고 의지가 굳센 어린이, 바른 생활을 하는 심성이 고운 어린이, 기본 학력을 갖추고 창의성을 지닌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7년 12월 26일 신흥국민학교 달천분교장으로 인가를 받아 1968년 9월 12일에 신흥국민학교 달천분교장으로 개교하였다. 1996년 3월 1일에 신흥초등학교 달천분교장으...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분교장. 배려와 나눔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어린이, 배움을 즐기며 스스로 학습하는 어린이,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생각하고 느끼며 꿈과 끼를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9년 11월 31일 소라서국민학교 1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1984년 6월 4일에는 소라서초등학교 병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공립 초등학교 분교장 배려와 나눔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어린이, 배움을 즐기며 스스로 학습하는 어린이,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생각하고 느끼며 꿈과 끼를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5년 4월 25일 소라보통학교 현천간이학교로 설립되어, 1943년 6월 5일 소라남국민학교로 개교하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분교장. 몸이 튼튼하고 의지가 굳센 어린이, 바른 생활을 하는 심성이 고운 어린이, 기본 학력을 갖추고 창의성을 지닌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3년 3월 22일 소라남초등학교 신흥분교로 개교하였다. 1965년 11월 15일 신흥국민학교로 승격이 되어 1968년 9월 12일 달천분교를 관리하게 되었다. 1984년...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와 화치동 일대에 있는 평야. 고뢰농장(高瀨農場)이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에 소라면 대포리와 삼일면 화치리[현 화치동]를 잇는 방조제를 막아 조성한 평야이다. 방조제 길이는 약 4㎞에 달하며, 조성된 경작지는 500정보(150만 평, 4,958,677 m²)이다. 고뢰농장은 이 평야를 소작인들에게 분배하여 목화와 쌀을 거두어 갔으며, 수확량을 늘리기...
-
예로부터 막걸리는 관혼상제나 잔치 또는 노동 때 사용하는 술이었다. 웬만한 농가나 주막에서는 수수나 보리로 막걸리를 빚어 먹거나 파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일반 가정에서 술을 제조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제는 한말의 주조업을 중요한 재원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1909년 「주세법」을 공포하여 주조 면허제를 시행하면서 주조업의 규모화·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
-
1896년 2월 돌산군이 설치되고 1897년 5월 여수군이 설치되었는데, 이 지역은 모두 순천부에 속해 있었다. 순천부에 속해 있을 당시 여수 방면의 도로는 순천부에서 여수 방향 16㎞ 지점에 성생원[율촌면 소재], 24㎞ 지점에 무상원[쌍봉역], 32㎞ 지점에 내례원[국동 지역]이 있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3개의 역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수에는 세 갈래의 간선도로가 있었...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수군절도사 신택희의 불망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대로변에 있는 여감바위, 또는 역의암이라고 부르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비신만 있다. 높이는 100㎝이고, 너비는 37㎝이다. 비의 앞면에는 "수군절도사신공택희영세불망비(水軍節度使申公宅熙永世不忘碑)"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석의 석질이 사암이라 마멸의 속도가 빨라 시멘트로 보전(補塡...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와 율촌면 가장리 사이에 있는 산.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의 모양이 황새와 비슷하다 하여 황새봉이라고도 한다. 순천 계족산에서 시작되는 여수기맥이 앵무산을 지나 이곳을 경유해 화양면 백야곶까지 이어진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대포천과 연화천의 발원지이며, 남동쪽에...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중증 장애인 재활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에덴동산은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지적 장애인들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길러주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데 두고 있다. 아울러 사회적응훈련과 재활훈련을 통해, 사회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에덴동산...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위치한 시립 도서관. 여수 시립 소라 도서관은 여수 시립 도서관을 구성하는 7개의 도서관[여수 시립 쌍봉 도서관·여수 시립 현암 도서관·여수 시립 돌산 도서관·여수 시립 소라 도서관·여수 시립 환경 도서관·여수 시립 율촌 도서관·여수 시립 이순신 도서관] 중 하나이다. 여수시 소라면 관내 주민들의 지적·문화적 수요에 부응하는 동시에 정보화 시대가 요...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차동마을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의 고분 유적. 여수 죽림리 차동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가야계 토광묘, 가야계 석곽묘, 백제 석곽묘, 고려 석곽묘, 백제 와관묘, 조선 시대 토광묘 등이 조사되었다. 1997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여수 죽림 택지개발 사업지구에 대하여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죽림리 차동 유물...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국도 제17호선 여수-순천 간 자동차 전용 도로 구간에 설치된 여수 상징문. 여수문의 디자인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전라좌수영과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으로도 사용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된 여수 진남관을 모방하여 한옥 형태로 디자인하였으며, 현판은 한국예술총연합회 여수지회의 추천을 받아 여수시에서...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공립 중학교. 기본 생활의 바른 습관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 심신을 조화롭게 다듬어 슬기롭게 개성을 기르는 사람,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향상으로 창의력을 키우는 사람, 우리 문화와 내 고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자긍심이 높은 사람, 다양한 경험과 인간관계 형성으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사람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53년 6월 10일 삼일중학...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여수우체국 산하 우편·체신 금융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우체국을 관할하는 지방우정청과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시립 공원묘지. 여수 시민들의 장묘문화를 선도적으로 계도하고 불법 묘지를 사전에 예방하여 합법적인 묘지 설치 등을 유도함은 물론 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게 묘를 설치할 수 있는 시립공원 묘지이다. 여수시에 시립 공원묘지가 없어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됨에 따라 시립 공원묘지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87년 7월 10일 여수시 소라면 의곡길 4...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에 있는 공립 특수교육기관. 여수여명학교는 질서와 예절을 지키며 아름다움을 가꾸어 가는 학생, 기초학력을 길러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학생, 자기몸을 깨끗이 하여 건강하게 생활하는 학생, 자기능력과 소질을 계발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여수여명학교는 1990년 1월 31일 설립 인가를 받아, 3월 26일 유치부 1학급, 초등부 6학급으로 개교...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민주 정신이 투철하고 애국애족(愛國愛族)하는 사람, 기초 학력 신장으로 학력을 갖춘 사람,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바른 인성의 사람, 건전한 정신과 강인한 체력을 가진 사람, 근검 성실하고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6년 11월 19일 춘당학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69년 11월 2...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민주시민교육을 통한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 고운 심성 계발과 정서 순화로 원만한 인품을 갖춘 사람, 기본 학력 증진과 자기 주도적 능력을 배양하는 사람,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사람,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심신을 단련하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6년 11월 19일 춘당학원으로 설립 인가를...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바닷가 일원에서 갯벌체험과 노을을 주제로 2008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축제. 여자만은 바다 가운데 여자도(汝自島)라는 섬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여수, 순천, 벌교, 보성을 포함한 큰 바다이다. 여자만에서 바라보는 환상적인 저녁 노을과 해안도로에 군데군데 위치한 카페촌, 점점이 떠있는 아름다운 섬들을 바라보면서 저물어가는 가을바다를 거닐며, 낭만을 느...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소라면사무소에서 덕양시외버스정류장을 조금 지나 도로변 좌측 편에 바위산이 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역의암을 물으니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한다. 예로부터 전설이 있는 바위였지만 주변의 지형이 변해서 그런지 전설의 형상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의암 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정종순 할머니는 역의암...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공원 묘원. 전라남도 동부권의 유일한 사설 추모 공원으로 사회·문화적 혐오 시설로 인식되었던 기존 공원 묘원에 대한 이미지를 벗어나 편안한 공원의 분위기와 소풍 오듯 가족들이 찾아와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1977년 5월 24일 「민법」 제32조에 기초하여 재단을 설립하고 여순공원묘원을 건립하였다. 1978년 1월 31일 「매장 및...
-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하세동 경로당에 가서 옛날 결혼했던 이야기와 신혼 생활에 대해서 물으니 모두들 서로 눈치만 보면서 다른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연세 많은 분들은 기억이 가물거리고 덜 드신 분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가마 타고 시집갔지. 무슨 놈의 신혼 생활. 매일 일만 하다가 살았지.’였다. 계속...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옛 절터.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옛 절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불교가 한참 성행했던 때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암사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의 당촌 서북쪽 운암마을에 절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서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부사 이종의 불망비. 소라면사무소에서 대포 쪽으로 가는 덕양역 부근 도로변 여감바위 위에 수군절도사 신택희 영세불망비와 나란히 서 있다. 단순한 형태의 좌대와 훼손이 심한 상태의 비갓이 올려져 있다. 비의 높이는 173㎝이고, 너비는 65㎝이다. 비의 앞면에 "행부사이후종영세불망비(行府使李侯宗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비바람에...
-
지금 덕양거리에는 벚나무가 보이지 않으나 예전에는 많았다. 일제시대에 덕양거리에 벚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은 일제 강점 초창기 일본인들이 덕양마을에 이주하여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덕양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벚나무를 직접 심었는지 아니면 마을사람이나 또는 동원된 학생들이 심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직간접적으로 일본인들이 벚나무를 심었던 것은 확실하다. 일설에 의하면 소라공립보통학교가 들...
-
예로부터 농어촌 지역에서는 식량이나 생활용품을 거의 자급자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체적으로 생산이 어렵거나 필요한 물품은 봇짐장사로부터 구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생산자에게 주문하여 사용했다. 수요와 공급이 그다지 많지 않은 농촌 지역에서 장터가 형성될 수가 없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골 마을인 이곳에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개화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여수시 소...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와 가까운 화양면과 삼일면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서 뱃길 외에는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가 어려웠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뱃길로 여수장이나 광양장으로 나가야 했다. 이것은 여수반도가 예로부터 육상보다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내륙 지역까지 도로가 개설되고 육상 교통이 서서히 발달해지면서 뱃길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백(恭伯), 호는 곡구(谷口). 좌찬성(左贊成) 정지년(鄭知年)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정사익(鄭思翊)이다. 정빈은 여수시 소라면 현천에서 태어났다. 학덕이 높았던 우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생으로 몸가짐이 공손하고 근엄하였으며 문장이 훌륭하였다. 임진왜란 때 작은아버지 정사묘(鄭思竗)와...
-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사(靑莎). 송강 정철의 둘째 형이며, 큰누이는 인종의 귀인(貴人)이며, 둘째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이유(李瑠)의 부인이다. 정소(鄭沼)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18세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러나 1545년(명...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영한(鄭永翰)은 정주팔(鄭周八), 정영환(鄭永煥), 정영순(鄭永珣)으로도 불렸다. 정영한은 1908년 10월 20일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중촌2길 8[현천리 551]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5학년을 중퇴한 후 경성 중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퇴학당한 후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후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며 일제...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호(士浩).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청사(菁莎) 정소(鄭沼)이다. 동생은 정상명(鄭翔溟)이고, 송강 정철(鄭哲)의 조카이다. 정원명은 여수시 소라면 관기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훈련판관(訓練判官)으로서 동생 정상명과 함께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한산대첩 등에...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충조(鄭忠朝)는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노동자와 농민 중심의 항일 민중 의식 고취와 조직화된 저항만이 유효한 항일 투쟁 방법임을 확신하고, 민중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는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하였다. 1934년 6월 일본 경찰에...
-
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효자. 주정준은 유복아(遺腹兒)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나이 40세 되던 해 우연히 안질을 얻어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10년 만에 불행하게도 실명하고 말았다. 주정준은 어머니의 눈병은 이제 신령의 힘을 빌어 치유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매일 저녁 자정을 기해서 인근 우물에서 정화수를 입에 머금...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기록이 소실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원로 교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선교사 변요한이 순천과 우학리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시절 늘 역참(驛站)이 있던 덕양리에서 말을 바꿔 타고 다니면서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배와 전도, 교육, 봉사, 국내 및 국외 선교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림리의 이름은 말 그대로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서 지어졌다고 한다. ‘죽림청풍(竹林淸風) 고사용출(高士聳出)’이라 하여, 예로부터 뛰어난 선비가 많이 배출된 마을로 전해온다. 원죽마을은 죽림마을이 처음 터를 잡았던 곳이다. 신송마을은 저수지 부근에 있는 마을로, 마을 주변에 20여 기의 고인돌이 전해오고 있어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죽림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차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죽림리 차동 당산제는 마을 공동으로 음력 1월 중경 오후 4시경에 올리는 마을제사이다. 중경은 10일에서 20일 사이를 말하는데, 10일 안에 좋은 날을 받아서 당산제를 지낸다. 이를 ‘차동마을 촌제’라고도 하며, 마을의 수호신은 ‘당산할아버지’이다. 제관은 3명으로 그 중에 유사가 초헌관의 역할...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에 있는 소우산에서 발원하여 여자만으로 유입되는 하천. 죽림천은 소우산(蘇牛山)의 산록 일대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죽림리 일대를 흐르다 여수시 여자만(汝自灣) 해안으로 유입되는 지방 하천이다. 죽림천의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하천이 흐르고 있는 주변 지역 명칭인 ‘죽림리’에서 그 명칭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어린이, 다양한 질문과 배움을 즐기는 어린이, 참여와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 다양한 색깔을 찾아 행복을 그리는 어린이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25년 9월 25일 중흥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2000년 3월 1일 중흥초등학교로 개명하였다. 2012년 2월 29일 여수국가산업단지 확장으로 인한 이...
-
중승골은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덕양6구이다. 2008년 3월 현재 230세대에 564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1998년 12월 31일 기준 인구와 대비하면 61명이 감소하였다. 중승골은 덕양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상세동과 하세동이 도로변 상가와 접하고 있는 데 반해 중승골은 덕양에서는 외곽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관할은 1897...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주호와 강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진양강씨(晉陽姜氏)로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인 강진이 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殷烈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황치연의 처 김해김씨의 정렬비.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아버지는 김재택(金在澤)이고, 남편은 황치연(黃致淵)으로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김씨 부인의 정과 뜻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창원황치연처김해김씨정렬비(昌原黃致淵妻金海金氏貞烈碑)를 건립하였다. 창원황치연처김해김씨정렬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달천노인회 도로변에...
-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고 나서 한반도 통치와 대륙 진출을 위하여 남해안 주요 항구로부터 북으로 연결되는 철도를 부설하게 된다. 1905년 개통된 부산-서울 구간인 경부선을 비롯하여 1914년 개통된 목포-서울 구간인 호남선, 1930년 개통된 여수-광주 구간인 경전서부선 그리고 1936년 순천-이리 구간인 전라선 등이 개설되었다. 덕양 에 기차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차동 유적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갑옷. 철제갑주는 2008년 죽림리 차동 2지구 9호 석곽묘에서 발견되었다. 장방형 철판 다수를 상하로 연접하여 원두정(圓頭釘)[대가리가 둥근 못]으로 고정시킨 철판 갑옷으로 횡장방판정결판갑이다. 상부가 결실되어 정확한 형태는 파악할 수 없으나 현재 상하 4단이 남아 있다. 유사한 형태의 합천 옥전 28호분의 출토품을...
-
순천에서 국도 17호선 따라 여수 방향으로 내려오면 여수공항을 거쳐 오른쪽 방향으로 진입하는 지방도가 있다. 이 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도로 양쪽에 상가가 연이어 있다. 좌측에 덕양시외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정류장 뒤편에 덕양역과 덕양장터가 있고 좌측편으로 상가와 공공시설물이 연이어 있는 곳이 바로 덕양리 하세동이다. 원래 이곳은 대포간척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도로가 있는...
-
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한국음악협회 산하 여수지역 지부. 한국음악협회 여수지부는 지방 음악의 향상·발전과 지역 문화의 창달을 도모하고, 국제간 또는 중앙을 비롯한 국내 각 지부와의 음악 문화 교류를 통한 지방 음악인의 지위 향상과 권익 신장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4년 7월 한국음악협회의 정관에 의거하여 설립되었으며, 초대 지부장에 지정익, 부지부장에 김중배, 총무에...
-
덕양에 장이 개설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터가 해방 이후에도 존속했다. 오일장은 1·6, 2·7, 3·8, 4·9, 5·10과 같이 매월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개시되는 정기시의 성격을 가졌다. 덕양장도 열흘에 두 번 열리는 오일장이었다. 덕양의 오일장이 일회적·불규칙적 시장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오일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아 덕양은 상품의 공급과 수요가 있...
-
오후 늦을 무렵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하세동 경로당 옆을 유병길 할머니가 농기구를 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오늘도 밭에 가서 일해야 한다.’며 대답하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행상 안하시냐고 했더니 행상 안한 지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오랜만에 뵈었는데 경로당에 가서 행상했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했더니...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중촌마을에서 전해 오는 잡색놀이.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중촌마을은 장수마을과 쌍둥이마을로 유명하다. 장수마을 35가구에서 37쌍의 쌍둥이가 태어나 1989년 기네스북에 올랐는데, 장수마을 동쪽에 위치한 쌍봉산의 영향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중촌마을에는 현천 가장농악 외에도 현천 소동패놀이가 전하고 있고, 특별하게 유월 유두일에 당산제를 모신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쌍둥이마을과 소동패 놀이로 잘 알려진 현천리1구에는 선천·중촌·오룡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현천이라는 마을 이름은 본래 이름이었던 ‘가무내’를 한자로 바꿔 적은 이름이다. ‘가물(검을)현(玄)’과 ‘내천(川)’이라는 훈을 빌려 쓴 이두식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가무내’라는 마을 이름의 뜻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에 물이 적어서 가물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오룡마을에서 정초에 집집마다 마당을 밟으며 한 해의 안녕과 태평을 비는 풍물. 마당밟이굿은 굿패들이 풍물을 치며 마을 수호신인 당신을 모시고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집돌이 의식이다. 답정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풍물을 치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면 ‘터를 누른다’하여, 지신을 진정시키고 잡귀가 물러가며 가신의 축복을 받는다고 한다. 오룡...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오룡마을에 전해오던 신행맞이 때 벌이는 가무극 형태의 놀이. 신행맞이는 신부가 신랑집에 도착하여 행하는 의식이다. 조리박주벅놀이는 신행맞이, 「걸메당소리」, 조리박주벅놀이, 여흥풀이 순으로 진행한다. 처음 신랑집에 당도한 신부가 예를 마치면 그 마당에서 잔치가 벌어진다. 이 때 마을 사람들과 시부모가 함께 「걸메당 소리」[일명 「가마 소리」]를 하면서...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마을에서 소동패들이 협동하여 노동하는 모습을 엮은 전래 놀이. 소동패는 16세부터 19세까지의 소년을 말한다. 소동패는 농작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이들은 조직의 규약을 철저히 지키며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풀베기·김매기 등 공동 노동을 하였다. 소동패 놀이는 일의 능률을 올리고 노동의 고달픔과 지루함을 잊기 위하여 농악·노래·춤·놀이...
-
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호성공신(扈聖功臣) 효정공(孝貞公) 황진(黃璡)의 후손으로 황치연(黃致淵)과 김재택(金在澤)의 딸 김해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효자창원황공유수기행비(孝子昌原黃公遺秀紀行碑)에 따르면 황유수(黃遺秀)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과일, 채소와 같은 작은 것일지라도 밖에서 구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