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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천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향토지. 여수·여천발전사는 지역의 역사, 문화, 산업 등에 대하여 연대별 사건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향토사학자인 김계유(金鷄有)가 향토사를 정립할 목적으로 1988년 여수 반도문화사에서 발간했다. 국판 크기로 모두 856 페이지이다. 권두에 여수 관련 옛 사진과 축사와 격려사 그리고 서문을 실었다. 본문은 제1절 백제 때부터 고려 말까지,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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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대될 당시 여수 지역에도 「독립선언서」가 순천을 통해 율촌면과 여수읍 내로 전달되었다. 이후 4월 1일 쌍봉면·소라면·율촌면의 3개 면에서 산발적인 소규모의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또 그날 밤 돌산면·화정면·남면·삼산면 등 4개 면에서도 일부 어민들이 산발적인 시위 운동을 벌였다고는 하나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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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병담(康秉談) 목사는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도와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의 우학리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1940년 5월경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성삼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식민 정치의 종말을 말세론과 비유하여 설교하는 등 교인들에게 일제의 국체(國體) 변혁과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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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화선(康華善)은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의 우학리교회, 제주특별자치도의 모슬포교회 등 7곳의 교회를 개척한 강병담(康秉談) 목사의 6남매 중 장녀이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1907년부터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성장하였다. 강화선은 전라남도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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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에 있던 전래 지명. 여수시 고소동 지역으로 옛 고소장대 동쪽 골짜기의 이름이다. 시가지 형성 전에 동물의 사체를 버리면서 개장골이라 불렀다. 개장골이란 말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데 개나 짐승의 사체를 버리면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개의 송장을 버리는 골짜기라는 의미로 개장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전라좌수영 시절 공동묘지가 있었으며 지금은 시가지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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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전투함의 하나.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은 3척으로 추정되는데, 명칭은 본영거북선, 방답거북선, 순천거북선으로 모두 여수에서 만들어졌다. 제작 지역은 본영선소[중앙동]와 방답진선소[돌산읍], 그리고 순천부선소[시전동]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그림으로 전해지는 거북선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충무공전서』에 실린 통제영 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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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여수 지역에는 삼한시대 마한연맹체의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백제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에 위치한 여러 소국들은 백제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여러 소국들을 곧바로 군현(郡縣)으로 편제하거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소국의 족장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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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중등 교육기관. 중등 교육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고등학교의 입학 자격은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법령에 의해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에 한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는 교육 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나, 일반계와 실업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종합 고등학교도 있다. 그 외 특수 목적 고등학교인 과학 고등학교, 외국어 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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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설립되었던 일본인 회사. 한일합병이 되자 일본 정부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본격적인 식민 작업에 들어갔고, 고뢰농장이 여수에 진출한 것도 이 식민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후 고뢰농장은 일본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등에 업고 자본다운 자본이 없던 여수 지방에서 많은 축재를 하였다. 1911년 3월 다카세[高瀨]명명회사(命名會社) 여수지점의 이름으로 여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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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0년 3월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 재학 중 윤경현(尹炅鉉)·이용기(李容起)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비밀결사가 결성되었다. 동 단체 역시 그와 같은 배경에서 조직되었으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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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찬신(郭贊信)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광주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6월 조길룡(曺吉龍) 등이 비밀리에 조직한 독서회에 가입해 독립 의식을 키우며 항일 운동을 모의했다. 1929년 11월 12일 전개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93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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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과 화양면에 걸쳐 있는 간척지. 『전라남도 여수군읍지(全羅南道 麗水郡邑誌)』 ‘제언조(堤堰條)’에 나오는 “석보해언(石堡海堰)은 여수면 20리에 있으며, 걸망해언(乬望海堰)은 소라면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여수 지역에서는 18세기 전부터 간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간척이 실시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다. 관기평야는 전라남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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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여수 지역의 독립운동은 주로 청년과 학생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여수 지역에서는 일부 면에서 산발적 시위는 있었으나 대규모 만세시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3·1운동에 가담했던 재경 여수유학생들이 조직한 맞돕회를 비롯한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항일의 기운이 유지되었는데, 이는 곧 태평양전쟁 후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1942년에 벌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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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사회 개조의 수단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육은 내부의 자연적 성장의 힘과 외부 영향력과의 합력(合力)에 의하여 성립되는 인간 형성의 작용을 의미하며,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참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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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설립된 제일은행의 지점 건물. 여수관광 중심지인 여수시 중앙동 691[통제영5길 7]에 위치해 있다. 구 제일은행 여수지점의 건물은 일제강점기 말까지 조선식산은행 여수지점의 건물이었다. 조선식산은행은 해방 후 한국식산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4년에 한국저축은행은 한국식산은행의 건물과 직원을 승계하여 한국산업은행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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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일제강점기 때 해외로 갔던 동포들이 여수로 귀환하면서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일대에 만들어진 정착촌. 1945년 광복이 되자 일본 등 외국에서 돌아온 동포들 중 오갈 데 없던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귀환촌 또는 귀환정(歸還町)이라 하였다. 귀환촌은 일본을 비롯한 만주나 해외에서 많은 귀환동포들이 쏟아져 들어와 여수건국준비위원회에서는 구항 부두에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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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화폐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은 경제상 자금의 수요·공급 관계, 즉 가치 이전의 수단으로서 통화(通貨)의 순환에서 발생되는 자금의 유통을 말한다. 즉 가계, 기업, 정부 등의 경제 주체가 자금 모집을 통하여 자금을 배합하고 사용하여 생산하는 자금 유통 모두를 일컬어 금융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 사이에 금융이 이루어지는 채권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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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금융 거래의 중개를 주요 업무로 하고 있는 기관의 총칭. 예금 등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업 또는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총칭해서 금융기관이라 한다. 한국의 금융기관은 취급하는 금융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은행, 비 은행 예금 취급 기관, 증권 회사, 보험 회사 및 기타 금융기관으로 대별된다. 여기서 은행은 다시 일반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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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향토 사학자. 김계유(金鷄有)는 1925년 8월 15일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세포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여수리 소라면 가사리 농곡마을로 이주하였다. 19세에 일본 오사카의 송전중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때인 1944년 여천군청 공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보성군청을 거쳐 1969년 퇴직하였다. 광복 전 김계유는 일본인 편강의가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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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프로 권투 세계 챔피언. 함경북도 북청 출신으로 월남하여 여수에 정착하였다. 방호남 사범의 지도로 권투를 시작하여 전국을 석권하고, 국가대표를 거친 후 1966년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고, 여수여항중학교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복싱에 입문하였다. 방호남 사범의 지도하에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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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정치인 및 경제인. 은행 근무를 시작으로 경제인으로 활동하다가 국회의원과 여수군수를 지낸 정치인이다. 여수시 서교동에서 출생하여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고, 해동은행, 한성은행, 동아일보 여수지국 등에서 근무했다. 1948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제헌국회의원을 역임하였고 여수군수를 지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의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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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병희(孫秉熙), 강기덕(康基德) 등의 지휘 아래 각 학교에 독립선언서가 교부되던 1919년,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김백평(金柏枰)은 경성고등보통학교(京城高等普通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김백평은 학교에 도착한 독립선언서 중 200매를 할당받아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3월 1일 오후 2시 탑골 공원에서 대한 독립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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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순배는 전라남도 광주(光州)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여수읍(麗水邑)교회 신도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시킨 인물이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전라남도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는 천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김순배를 필두로 한 기독교인과 숭일학교 및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光州川)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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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양호(金良浩)는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1930년 3월 하순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백인렬,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의 창립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윤경현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동시에 다수가 만날 경우 경찰에 발각될 우려가 높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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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기업인.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난 김영준은 15세에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갈 기회를 얻어 일본에서 고무 배합 기술을 익힌 뒤, 1926년 부산에 천일고무공장을 세워 천일표 고무신을 생산함으로써 기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일본 회사 마루다이[丸大]로부터 유사상표 사용이란 트집에 몰려 전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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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항일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인물이다. 김용환(金龍煥)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고 있을 때 여수보통학교에서는 동조 시위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1930년 1월 25일 항일 격문 80여 매를 작성하여 교실 및 교정 등에 살포한 후 일본 경찰에 피체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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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광주 독립 만세 운동에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의 대표로 참석했던 인물이다. 당시에는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에 살고 있었으며 광주 독립 만세 운동의 숭일학교 각 학년별 대표 5인 중의 1인이었다. 1919년 3월 10일 숭일학교 대표자 중 한사람으로 독립 선언문 20여 매를 받아 배부하고 모여든 1,000여 명의 군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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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석은 1929년 12월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 재학 시 광주 학생 운동에 이은 각지의 동맹 휴교에 동참하여 신용우(申用雨), 강대성(姜大成) 등과 함께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을 조직하고 격문의 인쇄 배부 및 동맹 휴학·만세 시위 등을 주동한 인물이다. 1929년 12월 7일 중동학교 교실에서 “동지들이여 싸우자. 우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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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화가이자 독립운동가. 김홍식은 여수시 교동 234번지[진남상가길 21-1]에서 1897년 1월 11일 김한익과 유목임 사이의 7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 때인 1910년 여수보통학교[현 여수서초등학교]가 문을 열자 1회로 입학하여 신학문을 익혔다. 5학년 때인 1914년 정재진과 결혼했다. 191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유지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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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동산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여수시 청년회관 뒷골목으로 보광사와 구 세무서 사이에 있던 꾸리샘이란 우물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꾸리샘 골목 등으로 불리며 우물이 깊어 실타래 한 꾸러미(꾸리)가 다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땅이름이다. 물이 맑고 좋아서 모기가 없었다고 전해온다. 우물은 없어지고 지금은 새 도로명 사업으로 이 일대가 골샘골길로 도로명이 부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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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신월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신월동의 한국화약 여수공장이 들어선 부지의 바닷가 이름이다. 1940년대 초 일제는 이 지역에 있던 신근정마을, 봉양마을, 물꾸미마을을 강제로 이주하고 일본 해군의 수상비행장을 건설하였다. 비행장이 건설된 이 지역을 넙너리로 불렀다. 어원은 파도가 닿는 해변이란 뜻의 해안지명 너리와 넓다는 뜻이 결합된 말로 너븐너리가 줄어 넙너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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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병주는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간의 충돌 사건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강당에서 향후의 행동 방침을 세우기 위해 열었던 집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5학년 대표였던 노병주(盧秉柱)는 이형우(李亨雨) 등의 제의를 받아들여 가두시위 투쟁을 결정하고 대오를 정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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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인간의 경제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차 산업이다. 농업은 유기적인 생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토지와 기후 등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그 방법과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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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당머리는 남산동 남쪽 해안으로 예암산 자락이 닭머리 모양으로 뻗어 내린 지형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곳에 영당이 있어 수산업을 주업으로 하던 어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당굿이 자주 열렸으며, 당집머리가 줄어 당머리가 되었다는 유래도 전해온다. 같은 의미의 당머리 지명이 율촌면 여흥리, 화양면 나진리, 화양면 세포리에도 전해오며 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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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의 진남관 앞 비각 안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여수시에는 도치뿔샘[공화동에 있는 큰 샘]과 큰샘[군자동 남쪽에 있는 큰 샘]이라고 불리는 큰 샘 두 곳이 있다. 이 중 정확히 어느 샘을 파고 나서 대정서변립비(大井西邊立碑)를 세웠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현재까지 군자동 아래에 남아 있는 샘을 큰샘이라 부르며, 주변 지역을 큰샘골이라고 부르는 등의 정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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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덕충동은 덕대와 충민사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덕대는 삼일의 신덕과 마찬가지로 언덕이 있는 지형에 붙는 땅이름으로 덕대의 사투리 말인 떡더골이란 땅이름으로 불려지던 곳이다. 이를 충민사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덕과 충을 합하여 덕충동이라 하게 되었다. 충민사가 있던 북쪽 골짜기는 시내의 중심에서 벗어난 지역이어서 외얏골 또는 욋골이라 하였는데 이를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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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독은 돌의 방언으로 독다리는 돌로 만든 다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여수에는 동문독다리와 서문독다리 두 곳이 알려져 온다. 동문독다리는 지방기념물인 여수청년회관 부근에 있던 돌다리로 지금은 골목길로 변하였다. 동문독다리는 좌수영의 동문이 있던 지금의 관문동 여수청년회관 부근이며 서문독다리는 이비당골이라는 골목길 입구로 전라좌수영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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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내세웠으며, 유·불·선은 물론 민간 신앙과 천주교를 포용한 당시 사회사상의 합성체로 평민은 물론이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동학의 교리에는 개벽과 평등의 반봉건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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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에 있던 옛 지명. 바닷가에 거친 바윗돌이 많아서 부르게 되었다. 좌수영 시절 종포마을이 있던 지역으로 마을 앞 바닷가 일부에 전해오던 지명이다. 1980년대까지도 어민이 많았던 종화동 지역은 수산 자원의 고갈로 어업이 쇠퇴하면서 어가와 어선도 감소되었으나 2012여수세계박람회 이후 여수권 관광이 활성화 되면서 카페와 펜션 거리가 되었다. 야경이 아름답고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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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 청년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운동 단체. 3·1운동 때에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학생들은 여수향우회를 만들어 활약하였다. 3·1운동의 후유증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하고 피신한 여수향우회 소속 학생들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여수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잡고 돕자는 뜻으로 맞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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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국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조선시대 국동과 봉산동 사이는 굴강 형태의 만을 이루고 있었으며 목덕골, 목대 등으로 불러왔던 이곳은 만의 서쪽을 감싸는 반달 모양의 돌출형 지형이 시작되는 목에 해당되는 지역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1970년대 어항단지와 수산물 가공단지의 조성으로 매립되어 지금은 그 형태를 알기가 어렵게 변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인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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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던 옛 지명. 전라좌수영의 연못인 덕지(德池)가 있어서 유래된 지명이며, 덕지가 있던 동문 부근이 언덕형의 등성이를 이루고 있어 연못이 있는 등성이의 뜻으로 못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좌수영성을 허물게 되자 여수청년회 회원들이 이 연못을 사들여서 매립을 하여 여수청년회관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여수청년회 활동인 맞돕회가 결성되어 활동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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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수출 및 수입 활동. 무역은 한 국가의 기업 또는 개인과 외국의 기업 또는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거래 행위, 즉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적 거래를 총칭하는 말이다. 초창기의 무역은 주로 상품 거래만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현재에는 단순한 상품 교환과 같은 보이는 무역(visible trade)뿐만 아니라 기술, 용역 등과 같이 보이지 않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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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균(文均)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본 동경 소재 동양대학 경제학부 학생이던 1928년 7월 12일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면의 청년동맹회관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여 ‘임시대회를 맞아’라고 하는 취지를 담은 문서를 제작하여 회원들에게 배부하였고, 7월 22일에는 동회관에서 개최한 청년동맹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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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채영(朴采永)은 1930년대 노동자, 농민 중심의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노동자, 농민 중심의 항일 민중 의식 고취와 조직화된 저항만이 유효한 항일 투쟁 방법임을 확신하고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하였다. 1934년 1월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2년의 옥고를 치른 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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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개인이나 조직이 기계의 도움으로 익명의 집단 혹은 대중에게 음성과 영상을 통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대중매체의 총칭. 방송은 적절한 수신 장치를 갖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동시에 청취하거나 시청할 수 있도록 오락·정보·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방송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2월 일제에 의해 경성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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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세동(裵世彤)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이지만 1919년 당시 전라북도 김제군 수류면 구월리에 살고 있었다. 1919년 3월 13일 전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후인 같은 월 20일 전도명(田道明)·전도근(田道根)·전부명(田富明)·이병섭(李秉燮)·김성수(金成守) 등 8명과 함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장날을 기하여 만세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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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종과 순종의 장례식에 통곡단을 조직하여 참석한 사건. 1864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왕조 제26대 왕에 등극한 고종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퇴위하기까지 43년 동안 실로 내우외환이 겹치는 국난 가운데서 초의한식(草衣寒食)으로 편할 날이 없다가 1919년 1월 일본인에 의한 독살설이 나도는 가운데 서거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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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백인렬(白仁烈)도 1930년 3월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독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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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에 있는 상설시장. 1982년 3월 2일 여수시 봉산동의 시유지에 민간 자본으로 착공하여 1983년 12월 14일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275칸으로 지어졌다. 1985년 7월 15일 상설시장으로 등록하였다. 2017년 11월 전기시설 개선공사를 진행하였으며, 2018년 2월 시설현대화사업[전기, 소방]을 진행하였다. 봉산시장은 횟집, 식당,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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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연기를 이용한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봉(烽, 횃불)과 수(燧, 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이다.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일정한 간격의 산을 지정하여 밤에는 불빛으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낸다. 우리나라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도는 기록상 고려 후기인 12세기에 처음으로 보인다. 봉수는 역마(驛馬)나 인편(人便)보다 시간적으로 단축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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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 오동도에 있는 해안지형. 삐달구통은 오동도에 전해오는 통의 이름으로 비둘기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통은 해안 절벽이 둘로 갈라져서 사람이 건널 수 없는 바위 해안을 말하는 해안 지명으로 삐달구는 비둘기의 여수 지역 방언이다. 수정동에 있는 오동도에 있는 해안으로 관광객의 이용 편의를 위해 관람을 할 수 있는 보행로가 조성되어 있다. 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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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넓은 의미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사회적 유통 활동을 촉진·조성하는 금융업, 운송업, 보험업, 창고업 등도 넓은 의미로는 상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상업은 단지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재화의 매매 활동만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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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서민과 소규모 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고 저축을 증대하기 위하여 설립된 금융 기관. 1972년의 「상호신용금고법」의 제정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지역 금융기관으로 본래의 명칭은 상호신용금고였으나 2001년 3월 「상호신용금고법」이 「상호저축은행법」으로 개정됨과 더불어 2002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업무는 기존 상호신용금고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각각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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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자금의 조성과 이용 및 회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지역 사회 개발 등을 위하여 설립된 주민 협동조합. 새마을금고는 「신용협동조합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1963년 재건국민운동의 향토 개발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민족 고유의 품앗이, 두레, 계, 향약 등에서 나타나는 상부상조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호 유대를 가진 사람들이 협동 조직체를 만들고 자금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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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신월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한국화약 공장 부근에 있던 생끼미는 해안에 샘이 있는 기미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일제강점기에 신근정마을 주민이 이곳으로 강제 이주되면서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였고, 생끼미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생금(生金)마을이 되었다. 본래의 생끼미는 신월동과 국동 사이에 있던 해변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었으나 1940년대 일제의 수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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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와 대포리에 조성된 간척지. 1922년 여수에서 활동한 일본인 소유의 고뢰농장에서 화양면 백초리 소백초마을과 소라면 가사리 사이의 해안을 방파제로 연결하여 그 안쪽 걸망개를 간척지로 조성하였다. 조성 면적이 2.479㎢로 당시 여수에서는 가장 넓은 간척지가 되었다. 1925년 소라면 대포리와 삼일면 화치리[현 여수시 화치동]를 잇는 간척지가 조성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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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양원(孫良源) 목사는 1902년 6월 3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손종일 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칠원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1915년에는 일제의 궁성요배(宮城遙拜)를 거부하여 퇴학당했으며, 서울 중동중학교에 재학 중 아버지가 3·1운동으로 투옥되자 다시 퇴학 처분을 받았다. 1917년 10월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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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던 옛 지명. 여수시 관문동에 전해 내려오는 지명으로 지금의 여수여자중학교와 여수여자고등학교 부근을 이르는 이름이다. 전라좌수영의 수군이 훈련하던 활터의 과녁이 있었던 연유로 활을 쏜다 하여 ‘쏠탕’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고, ‘솔탕’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사례로, 방답진이 있던 돌산읍 군내리 ‘솔통’도 활터의 과녁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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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전해 내려오는 전래 지명. 여수시 동산동과 덕충동 사이의 산등성이 이름으로, 생긴 모양이 수박처럼 둥글게 생겨서 수박등이라 하였다. 1786년에 만들어진 전라좌수영 전도에도 표기되어 있는 지명이다. 여수시 덕충동 종고산 동쪽 산등성이로 옛날에는 여수 충민사 입구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비탈이 심한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충민로를 끼고 주택지가 되었다. 여수시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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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산업 중 수산물의 채취·어획·양식·가공과 관련되는 업종. 수산업은 수산물을 생산하는 업태에 따라 어업·양식업·수산 가공업 등으로 구분된다. 어업과 양식업은 유용 동식물을 생산하는 1차 산업으로서 어업은 천연의 수산물을 채취·어획하는 것이고, 양식업은 수산 자원의 번식과 성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증식시키는 수중 농업이다. 그리고 수산가공업은 수산물을 원료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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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에 있던 옛 지명.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으로, 해안가에 숭어가 많이 드나든 데서 유래되었다. 전라좌수영성지의 동북쪽 해안 지역으로, 1930년대에 여수역 청사가 들어섰다.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위해 새로운 여수역이 2009년 말에 완공되어 덕충동으로 이전되었다. 여수역이 있었던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 1번지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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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던 옛 지명.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으로, 숲이 우거진 곳에서 길이 여러 갈래 나누어진 데서 유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여수읍 동정(東町)에 속하였다. 1930년대 이전에 이미 시가지로 조성되었으며, 지금도 대로변의 상가 건물이 있는 지역이다. 지금의 동문로에서 흙산로가 갈라지는 부근이다. 1980년대 이 부근에 귀거래다방이 있었다. 전라남도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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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 일본 어민들을 식민시키기 위해 만든 집단 이주촌. 1900년 전후로 일본에서 조선 이민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식민어촌 건설이 주창되었다. 식민어촌은 일제가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본국 어촌의 과잉 인구를 분산하기 위한 식민지 어업 정책으로서 한국 연안에 이주시킨 일본 어민의 취락이다. 당시 식민어촌 조성 조건으로서 가장 중시한 것은 어장 근처의 적당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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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신월동에 전해 내려오는 전래 지명. 여수시 신월동에 있던 마을 이름으로, 신근정이란 이름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신근정은 현재 한국화약 공장이 들어선 신월동에 일제강점기 이전에 있던 마을 이름이다. 당시 봉양·물구미·신근정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으며, 1940년 당시 239호에 인구는 1,339명으로 동정과 서정 그리고 봉산리 다음가는 큰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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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산업 중 수산물을 채취·포획하는 업종. 일반적으로 자연계에서 서식하는 수산 동식물을 채취하거나 포획하는 일을 어로(漁撈)라 하며 사업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어로 활동을 어업이라 한다. 어업은 채취 또는 포획하는 대상물에 따라 해수어업(海獸漁業), 채패업(採貝業), 채조업(採藻業) 등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어장(漁場)에 따라서 크게 내수면어업(內水面漁業)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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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도현(呂道玄)은 1929년 3월 23일 전라남도 광주보통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졸업식장에서 일본인 교장을 응징한 사건으로 192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으로부터 징역 6월 집행 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또한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모체인 비밀 결사 성진회 사건의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여수공립수산학교 학생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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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설치된 행정구역. 통일신라시대는 통일 후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면서 자연히 지방 행정구획의 재편성을 단행하였다. 이 지방 행정조직의 개편은 대개 677년(문무왕 17) 무렵 당의 세력을 밀어내고 687년(신문왕 7)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9주(九州) 5소경(小京)의 제도 형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라가 단일 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고구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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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기독교 교회. 1911년 광주에서 건립된 광주나병원은 1926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새로운 터를 마련하고 이주하였다. 광주나병원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처음에는 비더울프 나환자 수용소라 하였다. 1928년 비더울프 나환자 수용소는 환자 600여 명을 수용하는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용된 환자들의 신앙 생활을 신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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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역 청년운동의 본거지. 여수시 관문동 여수경찰서와 여수엑스포역을 잇는 대로변 우리은행 여수지점(구, 한일은행) 뒤에 있다. 은행 뒤쪽 소로를 끼고 자리를 잡고 있다. 전라좌수영성에 ‘덕지’ 혹은 ‘못물동’이라고 부르는 400평~500평 가량의 연못이 있었다. 1930년 이 연못을 메우고 좌수영 밑에 있던 좌청[일명 취방청-당시 우체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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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터널. 여수 마래 제2터널은 길이 630m, 높이 4.3m, 폭 4.5m이다. 터널 내부에는 100~110m 간격으로 5곳의 대기 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마래 제1터널은 1926년 일제가 군량미 창고로 쓰기 위하여 설계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 마래 제1터널 옆에 쌍둥이처럼 나란히 파들어 간 터널이 여수 마래 제2터널이다. 여수 마래 제2터널은 1차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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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기독교 교회.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우리 군대를 해산시키고 경찰권을 빼앗아 가는 등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율촌면 조화리 지역의 선각자들은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직 기독교를 통한 민중 계몽 운동밖에 없다는 자각을 하고 교회를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05년 10월 15일 율촌면 여흥리에 초가 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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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이순신 장군의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는 일제강점기에 여수경찰서장 마쓰키[松木]가 1942년 봄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대첩 비각을 헐고 대첩비와 타루비를 반출했던 것을 1946년 경복궁 뜰에서 김수평이 발견하여 1948년 5월 24일 여수에 복구하였다.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는 충무공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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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철도역. 일제강점기인 1930년 12월 25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여수 지역 간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여수시 공화동에 여수역(麗水驛)이 건설되었다. 같은 날인 1930년 12월 25일 여수항에서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 간의 뱃길도 열리게 되었다. 이는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를 목적으로 전라선을 개통하고, 일본과의 뱃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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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918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940년(태조 23)에 전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행정구역을 개혁하였다. 따라서 신라시대에 해읍현(海邑縣)[여수]·여산현(廬山縣)[돌산]이라 불리던 여수 지방의 이름도, 여수현(麗水縣)·돌산현(突山縣)으로 바뀌었다. 이때 처음으로 ‘여수(麗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나, 모두 승평군(昇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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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운종(呂運鍾)은 1930년대 민중 속에서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30년 1월 25일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고 있을 때 유독 여수보통학교에서는 동조 시위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독립 선언서 80여 매를 작성하여 교실 및 교정 등에 살포한 후 일경에 피체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에는 당시의 국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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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오놀보(吳㐗甫)는 전라남도 완도 사람으로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 당시인 1930년 3월 항일 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이용기, 정학조와 함께 제1조에 편성되었다.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다수의 회원을 독서회에 가입토록 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1931년 9월에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속·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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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에서 오동도를 연결하는 방파제. 오동도방파제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4월 조선총독부 여수토목출장소에서 수정동 지역에 신항만을 건설하려는 계획으로 발주하여 착공되었다. 당시 98만 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방파제 공사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지연되어 1945년 8·15 광복 무렵 완공되었고, 이후 방파제 보수를 위해 수차례의 보강 공사가 진행되었다. 오동도방파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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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우홍(吳宇鴻)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노동 운동 및 청년 항일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31년 여수공립수산학교 3학년 재학 중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교육 철폐 운동, 동맹 휴학 등을 주도하다가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그리고 1932년 7월에는 여수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 조건 개선 투쟁, 항일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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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화물 또는 여객의 수송을 담당하는 업종. 운수업은 일반적으로 화물 또는 여객의 운송을 영업 목적으로 하는 산업을 총칭하는 용어로 교통사업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수송 목적물에 따라 화물 운수업과 여객 운수업으로 분류하기도 하며 수송 영역에 따라 육상 운수업, 해상 운수업, 항공 운수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육상 운수업은 크게 철도 운수업과 자동차 운수업으로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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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옛 절터.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옛 절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불교가 한참 성행했던 때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암사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의 당촌 서북쪽 운암마을에 절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서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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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일원상의 진리를 믿는 종교 활동과 그 조직. 원불교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대각으로 1916년 4월 28일에 창립된 한국의 민족 종교이다.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인 법신불 일원상(○)을 진리의 종지로 하고 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일체중생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함을 목적으로 하는 후천 개벽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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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항일운동가. 원세학은 1858년 2월 19일 삼산면 덕촌리에서 출생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제주수문장을 지냈으며, 1914년 임병찬의 유배 생활 도중에 이루어진 어린이 교육을 도왔다. 임병찬은 구한말 독립의군부를 결성하여 항일운동에 앞장섰고, 그 결과 1914년 음력 6월 1일 감금형을 받아 원세학이 있던 거문도로 유배되었다. 임병찬의 유배 생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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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원정상(元正常)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가이자 상록수 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노동 쟁의 사건인 1929년 원산노동연합회 총파업 주모자(당시직책: 원산노련 상무집행위원)로 체포되었다. 이후 법원으로부터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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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9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에서 원세학의 5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원종상(元鍾常)은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동맹휴학’ 가담으로 퇴학당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 고향의 덕흥학원 교사 및 삼산면사무소 서기로 근무하면서 덕흥학원에서 청소년 100여 명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하였다. 야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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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평양 천도 후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蓋鹵王)을 살해하고 수도를 빼앗았다. 수도를 점령당한 백제는 공주로 천도하였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에게 빼앗겼다. 그 뒤 성왕이 즉위하여 538년(성왕 16)에 수도를 금강 유역의 부여로 옮겼다. 이때 백제는 사비를 중심으로 전국을 오방제로 나누어 다스렸다. 중방은 고사성(古沙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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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봉목(兪鳳穆)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1919년 8월 서울에 머물면서 독립 운동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아 귀향한 후 여수간이수산학교 학생 이선우 등과 함께 청년회를 조직하고 같은 해 12월 20일 오후 1시 여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봉목 일행은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김여진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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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경현(尹炅鉉)은 전라남도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 당시인 1930년 3월 일제 식민 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 위해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매주 1회 모임을 가지면서 항일 투쟁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면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1931년 9월 독서회 활동이 발각되면서 결사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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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환(尹滋煥)은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천도교 신자였다. 1919년 3월 2일 전라남도 순천군 순천면 저전리에 있는 천도교 교구에 독립 선언서 35매를 배포하고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윤자환은 독립 선언서를 일반인에게 알려 독립 사상을 고취하고 대중을 규합하기 위해 전라남도 순천군 해룡면 면사무소와 여수경찰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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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및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협의하여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0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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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예금을 받거나 대출·어음 거래·증권 인수 등을 주 업무로 하는 금융기관. 예금 등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업 또는 개인에게 대부하거나 증권 투자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총칭해서 금융기관이라 한다. 한국의 금융기관은 취급하는 금융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은행,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 증권 회사, 보험 회사 및 기타 금융기관으로 대별된다. 여기서 은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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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항일운동가. 이병현(李炳鉉)은 1909년 전라남도 도서 지방을 중심으로 한 의병 부대에서 활동을 했다. 1909년 음력 5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와 여서도 등에서 ‘완도 삼림 문제’와 어민들의 경제적 착취를 위한 ‘어업법’ 시행 등으로 경제적 침탈이 심해지자 어민들의 생계 위협에 맞서 황준성 의병장 휘하의 김성택의 군사들과 함께 의병 활동을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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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동교 학생들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봉금(李奉錦)이 전라남도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광주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시위 군중에게 태극기, 독립 선언서, 격문을 나눠주면서 독립 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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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던 옛 지명. 일제강점기 여수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진 군자동 골목을 이르는 지명이다. 예배당이 있다 하여 예배당골이라 불렀으며 점차 이비당골로 변하였다. 여수예배당은 1906년 김암우(金岩于)가 군자동 꼭대기에 방을 빌려 예배를 하다 1910년 조의환 전도사가 파견되어 4칸짜리 초가를 사들여 문을 열었다. 이 예배당이 있던 군자동 골목을 이비당골이라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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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선우(李善雨)는 항일운동가로 1919년 12월 12일 여수공립수산학교 기숙사에서 유봉목의 뜻에 따라 생도 김종력 등과 함께 12월 20일 조선 독립 만세 운동을 결의하였다. 12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생도 복습소에서 태극기를 제작하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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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영(李亨永)은 1919년 3·1운동 이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항일 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 부속 공업전습소 1년생이던 이형영은 경성의학전문학교의 한위건(韓偉鍵)·김형기(金炯璣), 경성공업전문학교의 김대우(金大羽), 경성전수학교의 전성득(全性得)·윤자영(尹滋瑛) 등과 함께 학생 대표로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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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 경성여자 사범학교 졸업 후 여수서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여수여자고등학교 등에서 15년간 교사로 봉직하고 제1대 전라남도 교육위원을 지낸 교육자이며, 한국부인회 여수지회장과 사단법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여수에서 민족 교육과 항일 운동을 전개한 이상호의 딸로 1942년 경성여자사범학교 졸업하였다. 여수서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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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 도서 지방에 돌산군이 신설되고, 1897년 육지 지역에 여수군이 신설됨으로써 순천도호부에서 분리 독립되어 여수·율촌·삼일·소라의 4개 면을 관할하였다. 후에 여수면이 현내면과 쌍봉면으로 분리되는 등 7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1914면 돌산군이 폐지되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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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에서 전해지는 옛 지명. 잉구부는 연등동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의 옛 이름이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오림동부터 이어진 도로는 반달 모양으로 크게 휘어져 있다. 왼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하여 왼구부라고 하였는데, 여수 지방에서는 ‘왼’이란 뜻은 ‘인’으로 발음하여 왼구부를 ‘잉(인)구부’로 하였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인’을 음이 비슷한 ‘연’으로, ‘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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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평완(張平完)은 1930년대 여수사회과학연구회, 여수청년전위동맹, 여수적색노동조합전우조직 등을 결성하여 투쟁한 항일 운동가이다. 1929년 8월에 조직된 독서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30년 여수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회계 책임자를 맡아 활동하였다. 1931년 1월에는 전라남도 여수읍 서정 자택에서 오우홍, 최준모, 강동주, 김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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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고소동·동문동에 있는 조선 전기 전라좌수영 성지. 1479년(성종 10) 전라좌수영이 창설됨에 따라 전라좌수영성 축조와 함께 관내 청사도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전라좌수영성은 창설 당시에는 둘레가 1.7㎞나 되는 성터로서 여수 진남관 외 78개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 기록에 남아 있는 전라좌수영성 내 청사(廳舍) 34개 동은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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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사회활동가. 정경수(丁敬秀)는 1901년(고종 38)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미평동 소정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수공립간이수산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전라남도 장흥, 광양, 고흥, 진도 등지의 어업조합에서 이사를 역임하고 수산업 발전을 위해 기여하다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전남어업연맹 이사장으로서 무질서했던 수산업계를 정돈하였다. 1946년 제2대 여수읍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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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두범(鄭斗凡)은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나 1919년 광주에서 만세 운동에 참가하는 등 독립 운동에 적극 가담한 항일 운동가이다. 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3월 10일 광주 장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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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정보한(鄭輔漢)도 1930년 3월 백인렬,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독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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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항일운동가. 정용수(丁龍洙)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대표 유림이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정용수를 비롯한 정충섭, 김병순, 정영민, 정병훈 등 전라남도 여수 지역 유림 42명(여성 6명 포함)이 백기통곡단(白旗痛哭團)을 조직하여 상경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수 유림들에 대한 평판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3·1운동과 같이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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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충조(鄭忠朝)는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인식하여 노동자와 농민 중심의 항일 민중 의식 고취와 조직화된 저항만이 유효한 항일 투쟁 방법임을 확신하고, 민중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는 항일 노동 운동을 주도하였다. 1934년 6월 일본 경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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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정학조(鄭學朝)도 1930년 3월 백인렬,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진자미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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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각종 원료를 가공하여 물품을 만드는 업종. 제조업이란 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 활동을 의미한다. 즉 농업, 수산업, 임업 등 제1차 산업에서 생산된 원료를 가공하여 제2차적 생산을 수행하는 산업으로서 광업, 건설업 등과 함께 제2차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표준산업분류표에 의하면 제조업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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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인물. 조대는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인물이나 자세한 가계와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환여승람』에 곡식을 풀고 학문을 장려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1797년(정조 21)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양곡을 풀고 돈을 지급하여, 궁핍한 구민 구호에 주력했으며 또한 학문을 권장하는 선정을 베풀었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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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말기 돌산군수 조동훈의 영세불망비. 여수가 한창 복군(復郡)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초대 돌산군수로 임명된 조동훈이 종포에 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방 유지들은 조동훈에게 돌산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여수에서부터 돌산까지 다스려 달라고 청원하였다. 이에 조동훈은 조정에 여수 네 개 면(面)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줄 것을 건의하는 한편,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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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병호(趙炳浩)는 전라남도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 당시인 1930년 3월 항일 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 조직인 독서회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다가 1931년 9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속 수감되었다. 그리고 1931년 9월 4일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독립 유공자 공적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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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에서 1945년 해방 후 조직된 치안과 행정 활동을 위한 임시 행정기구. 중앙의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 체제로 바뀌자 대부분의 지방에서 건국준비위원회는 인민위원회로 개조되거나 인민위원회에 흡수되었다. 인민위원회는 초기에 미군정에 협조하고자 하였으나 미군정은 이를 배척하였다. 결국, 미군정과 인민위원회 간에는 갈등 대립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상당수 많은 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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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배를 설계하고 만드는 공업. 선체를 건조하고 기관과 의장품을 조립·고정시켜 배를 완성하는 것을 고유의 업무로 하는 산업이며, 기관·의장품을 제작하는 공업을 조선 관련 산업이라고 한다. 선박 건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래 되었으며, 철강업과 기계 공업의 발전에 힘입어 종합 공업으로서 근대적 조선업이 확립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이다. 한국에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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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에 있던 포구. 핸드릭 하멜이 전라좌수영을 나와 조선을 탈출하고자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향하는 배를 탄 곳이 종포 해변으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에 집필된 이광수의 『충무공전서』에선 종포를 새복개로 기술하였다. 종포는 조선시대에 현재의 종화동에 있던 포구를 이르는 지명이다. 종고산(鐘鼓山) 밑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포구라 하여 종개 또는 종포라 하였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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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과 서교동 사이의 도로. 2005년 새주소 사업을 위한 도로 이름을 부여하면서 좌수영의 관문의 의미를 살려서 좌수영로라 하였다. 좌수영로는 시민들이 아랫길이라 부르는 도로이다. 1975년 이전 여수 도심으로 이어진 도로는 ‘윗길’인 충민로가 유일하여, 국동 지역의 경우 시내를 한 바퀴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이러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하여 연등천을 정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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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원석(朱元錫)은 1930년대 당시 조선일보 기자이자 항일 운동가로서 여수공립수산학교 생도들의 항일 운동을 배후 조종한다는 혐의를 받아 경찰에 수차례 구속되었다. 이 때 일제가 내린 25일 구류의 언도가 부당하다고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등 조선총독부 재판부에도 철저히 항거하였다. 1932년에는 여수적색노동조합준비회를 조직하여 정미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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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재년은 194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최연소 항일 지사로 1929년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작금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43년 돌산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5세 때 조선 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수시로 하고 다니면서 마을 담장 밑 큰 돌 4개에 ‘일본과 조선은 다른 나라(朝鮮日本別國), 일본은 패망한다(日本鹿島 敗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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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교동에 있는 상설시장. 1949년 2월 여순사건이 수습된 후, 이승만 정부는 여수 지역에 1억 8500만 원의 이재민 구호 자금을 지원하였다. 같은 해 3월 당시 읍장이었던 김정식은 이재민들에게 영구적인 생활 수단을 마련해 주고자 구호 자금 중 4천만 원을 투입하여 시장을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10월 10일 여수시 교동 400번지에 시장이 준공되었다.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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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초등학교에서 배운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 보통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로 고등학교 교육의 전단계로서 3년 과정으로 되어 있다. 「초·중등교육법」에는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 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입학 자격은 초등학교 졸업자 또는 외국에서 6년 이상의 학교 교육을 이수했거나 교육위원회가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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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는 상설시장. 1983년 7월 서재호는 공사비 약 11억 원을 투입하여 진남시장을 착공하여 1985년 5월 28일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현대식 2층 건물을 완공하였다. 여천시의 승격을 앞둔 시점에서 당시 여천지구출장소 당국은 배후 도시에 인구 유치를 위한 시책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진남시장의 개장은 이러한 시책과 일치되는 것이었다. 진남시장 개설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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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면서 각 급 학교에서는 독서회 형태의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당시 여수공립수산학교(麗水公立水産學校)에 재학 중이던 진자미(秦者味)도 1930년 3월 백인렬, 정보한, 윤경현, 이용기, 김양호, 오놀보, 정재석, 정학조 등과 함께 여수 등대산(燈臺山)에서 비밀 결사인 독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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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초등학교는 국가에 따라 초등학교, 보통학교, 기초학교, 소학교 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현대 학교 교육의 제도상 가장 먼저 취학하는 학교로서 국민생활에 필요한 초보적인 일반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따라서 설립자나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의 목표 아래 동일한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근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 교육이 국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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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학문을 장려했던 인물. 최완은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서 쿤 공을 세웠던 인물이나, 자세한 가계와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환여승람』에 학문 장려의 치적이 있어 비를 세운 내용만 보일 뿐이다. 최완은 1720년(숙종 46)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여수의 동쪽에 동서재(東書齋)를, 서쪽에 서서재(西書齋)를 세우고 학문을 장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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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최완의 청덕비. 전라좌수사 최완은 1720년(숙종 46)에 부임하여 여수의 동쪽에 동서재(東書齋)와 서쪽에 서서재(西書齋)를 세우고 학문을 장려하였다. 제주목사로 전임하자 고장 백성들이 청덕비를 세워 그의 공을 기렸다. 여수시 군자동 여수 진남관 입구 비각 안에 있다. 개석은 없어지고 비신이 장방형의 비좌 위에 서 있다. 비의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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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완규(崔完奎)는 1940년 6월 일본 동경 소재 목백상업학교(目白商業學校)에 재학하면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있었다. 이 때 같이 근무하던 안명수(安明洙)로부터 영향을 받고 항일 독립 운동 행동 강령을 정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42년 6월 30일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5개월 간 옥고(獄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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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오림동과 덕충동 사이의 도로. 1975년 아랫길(좌수영로)이 만들어지면서 윗길로 부르게 되었으며, 2005년 새주소 사업을 위한 도로 이름을 부여하면서 충민로라 명명하였다. 3억여 원의 공사비가 소요되었으며, 1967년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12월에 완공하였다. 일명 윗길로 불리므로 여수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탈 때에는 윗길과 아랫길로 구분된 표지판을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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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전해오는 옛 지명. 군자동·충무동·교동이 갈라지는 지점에 위치한 큰샘골은 마을에서 사용하던 큰 우물이 있어서 전해오는 지명이다. 지금도 콘크리트로 주변을 막은 큰 우물은 전해오지만, 식수로 사용을 하지는 못한다. 큰샘골[大井]은 전라좌수영이 설치된 이후에 사용하던 마을의 공동 우물로, 1970년대까지 식수로 사용했었다. 큰샘골은 큰샘 지역 주변 골목 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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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운용되었던 널빤지로 지붕을 만든 군선(軍船). 조선 전기의 군선은 조운(漕運)을 겸하는 맹선(猛船)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군용으로서 제구실을 못했다. 특히 16세기에는 삼포왜란·사량왜변·을묘왜변 등 변란이 속출했는데, 맹선으로 왜구를 제압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군선 개발에 부심한 결과, 1555년(명종 10)에 새로 개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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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선박은 민가의 어선뿐만 아니라 전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예부터 여수가 어항이면서 조선 초기에 설진된 진례만호진·돌산포만호진·내례만호진, 성종 때 설진된 전라좌수영, 중종 때 설진된 방답첨사진의 관방이 있었고, 여수 근해에 풍부한 어장과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본격적으로 여객선이 운행된 것은 1950년대부터이며,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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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확대된 영토를 통치하는 데 있어 자연히 지방행정 구획의 재편성을 단행하였다. 지방 행정조직 개편은 677년(문무왕 17) 무렵 당의 세력을 밀어낸 후 687년(신문왕 7)에 걸쳐 완성되었다. 9주(九州) 5소경(五小京)의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라가 단일정부로서 중앙에서 백제·고구려의 옛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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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 허문마을에 전해오는 옛 지명. 문수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인 허문쟁이는 허문마을의 본래 이름이다. 마을 주변의 지형이 험해서 생긴 말이지만, 후에는 허씨와 문씨가 많이 살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뜻이 변하였다. 허문쟁이는 본래 농촌 마을이었으나, 1980년대 도시가 확장되면서 택지 지구가 되어 지금은 아파트와 주택지로 변하였다. 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 허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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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949년 6월 여수항의 개항이 선포되고, 같은 해 8월 여수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이 되어 여수시와 분리되었다. 1973년 여천군 돌산면 경호리가 여수시에 편입되어 경호동이 신설되었다. 1980년 12월 1일에 돌산면과 삼일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월 1일 여천지구 출장소가 여천시로 승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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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조선 후기 누각. 흥국사의 천왕문과 법왕문 사이에 있다. 흥국사 봉황루는 1646년(인조 24) 창건되어 일반 대중의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임진왜란 기간에 불탄 것을 1729년(영조 5) 팔도도총섭인 승려 덕린(德燐), 승통대장(僧統大將) 찬민(贊敏), 팔도도총섭 자헌(慈憲) 등 300여 명의 승병이 중창하였다. 1729년 제작된 『영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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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일주문. 사찰에 들어서면 맨 먼저 통과해야 하는 문이 바로 일주문이다. 이곳에서부터 절의 경내이니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일주문이 없는 사찰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일주문 중 오래된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행해진 복원 공사 시 건립된 일주문이 오래된 일주문에 속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