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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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宣城金氏 |
영어의미역 | Seonseong Gim Clan |
이칭/별칭 | 예안김씨(禮安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김복영 |
세거지 |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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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고려시대 |
성씨시조 | 김상(金尙) |
[정의]
김상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선성김씨는 고려 때 예안호장을 지낸 김상(金尙)을 시조로 하여 선성(宣城, 예안의 옛 이름)을 본관으로 하는 안동 지역 토성의 하나이다.
[연원]
시조 김상의 2세 김존성(金存誠), 3세 김돈부(金敦富), 4세 김희보(金希寶)도 호장직을 지냈고 5세 김성세(金成世)는 밀직사상호군, 6세 김뉴(金紐)는 대호군, 7세 김방식(金方軾)이 정용장군을 지냈다. 8세 김로(金輅)는 보승장군으로 파평윤씨(坡平尹氏)인 윤백기(尹伯奇)의 사위가 된다. 윤백기의 아버지 윤인희(尹仁喜)는 진사로서 지안산군사를 지냈고 조부 윤혁담은 집의를 지낸 사족이다.
[입향경위]
김상의 생존 시기와 선성김씨의 발원 시기도 불분명하여 입향 경위도 미상이다. 김상 이후 8세에 거쳐 본관지에서 살아가던 선성김씨는 9세손 김소량(金少良, 1384~1449)이 영주에 살던 판서 황유정(黃有定)의 사위가 되어 예안에서 영주로 이거하게 되었다. 이후 김소량의 아들 김증(金潧)과 김담(金淡, 1416~1464) 형제가 1453년(세종 17) 문과에 올라 각각 금산군수와 이조판서를 지내고 그 후손 중에서 형조참판과 안동부사를 지낸 백암(柏巖) 김륵(金玏, 1540~1616), 정랑을 지낸 김우익(金友益) 등 많은 문신을 배출하면서 영주 지방의 명문가로 번창하였다.
[현황]
현재 안동에 살고 있는 선성김씨는 김륵의 증손으로 진사시에 합격한 김박(金鎛, 1621~1709)과 김옥(金鋈) 시대에 다시 고향 예안으로 돌아와서 현재의 임하면 천전리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각지로 흩어져 나가고 남은 몇 집이 산 중턱으로 옮겨 살아가고 있다. 세거지의 수몰과 함께 관련 유적도 모두 수몰되었다. 기타 지역의 선성김씨는 영주시 문수면, 이산면, 부석면, 장수면과 봉화 문단, 물야 등지에 세거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