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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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景𥙿 |
영어음역 | Gwon Gyeongyu |
이칭/별칭 | 군요(君饒),자범(子汎),치헌(痴軒),효강공(孝康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부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개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무오사화 때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죽임을 당한 조선 전기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사림이며 문인이다. 사림 성장기에 권주(權柱), 권달수(權達手), 이주(李胄) 등과 함께 안동 지역 사림파의 의리 정신을 조정에서 떨쳤다.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요(君饒)·자범(子汎), 호는 치헌(癡軒). 권집지(權執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영화(權永和), 외할아버지는 이승손(李承孫), 아버지는 광주판관(光州判官) 권질(權耋), 처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허혼(許混)의 딸이다.
[활동사항]
권경유는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했다. 1483년(성종 14) 진사가 되고 148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에 등용된 뒤 홍문관정자를 거쳐 1490년에는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부모를 공양하기 위하여 외직으로 나갈 것을 요청하여 제천현감으로 나갔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유자광(柳子光), 이극돈(李克墩) 등의 모함을 받아 7월 27일 권오복(權五福), 김일손, 이목(李穆), 허반(許磐)과 함께 처형되었다.
권경유는 평소 성품이 강직하였다. 일례로 김일손이 권경유 서재의 이름을 치헌(癡軒)이라 짓고 “그대는 외딴 고을의 현감을 자청하였으니 벼슬살이에서 바보짓이다. 그대는 조용히 앉아서 못된 토호와 간사한 향리를 무찌르며 홀아비와 과부를 어루만지는 데에만 마음을 두고 세금 걷는 데에 서투르니 정사에 어리석다”라고 역설적으로 칭찬하였다. 또 남효온(南孝溫), 김일손, 강경서(姜景敍) 등과 함께 사장(詞章)·정사(政事)·절의(節義)·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예컨대 남효온은 권경유에 대해 “성품이 강의(剛毅)하고 일을 만들기를 즐기지 않았다”라고 평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강(孝康)이며, 중종반정 후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1874년 형 권경우(權景祐, 1448~1501)와 함께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수곡리에 있는 수곡서원(水谷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