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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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世泰 |
영어음역 | Yi Setae |
이칭/별칭 | 계통(季通),동병(東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배종석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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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성별 | 남 |
생년 | 1698년 |
몰년 | 1760년 |
본관 | 진성 |
대표관직 | 장례원판결사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 진성(眞城). 자는 계통(季通), 호는 동병(東屛).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 이주(李柱), 아버지는 통사랑 이수약(李守約),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로 통덕랑 김위(金瑋)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세태는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이미 『효경(孝經)』의 대의에 통달하고, 9세 때 사서(四書)를 외웠으며, 12세 때 도장시(都場試) 복시(覆試)에서 장원하였다. 1744년(영조 2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를 거쳐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사간원정언을 지내고 벼슬이 장례원판결사에 이르렀다.
관직에 있을 때는 청렴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일례로 충청도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있을 때 어사 채제공(蔡濟恭)이 왕에게 “세태는 3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녹봉을 저축하여 민역(民役)을 보충하고 궁핍함을 다스렸으므로 이민(吏民)이 깊이 신뢰하고 있다.”라고 아뢰었다. 그 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에 『동병집(東屛集)』이 있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