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376
한자 鎭管制
이칭/별칭 진관 체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57년연표보기 - 진관제 실시

[정의]

조선 전기에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포함하여 지방에 두었던 군사조직.

[개설]

1457년(세조 2) 중앙에 오위(五衛) 체제를 정비하면서 지방 군사조직으로 진관(鎭管) 체제를 정비하였다. 진관 체제는 세조 이전에 있었던 군익도(軍翼道) 체제를 더욱 보완·발전시킨 것이다. 진관 체제는 지휘관이 지휘하는 곳에 주진(主鎭), 내륙 군사적 요충지에는 거진(巨鎭)을 각각 설치하고 주변 여러 고을을 소속시켜 전국의 국방력을 일원화한 지역 중심 방어 체제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었던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은 홍주진관(洪州鎭管)에 소속되어 홍주목사(洪州牧使)의 지휘를 받았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전기 방어 체계는 연해(沿海) 지역에 진을 설치하여 방어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연해 지역의 진이 돌파된다면 내륙은 그렇다 할 방어 병력이 없었다. 이러한 약점은 세종 말부터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여 지방군 체제 개편의 필요성이 논해지기 시작하였다.

[내용]

각 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는 주진에서 지휘하고, 주진 아래 거진에는 지방 수령들인 부윤(府尹)·목사(牧使)·부사(副使) 등이 절제사(節制使)와 첨절제사(僉節制使) 등의 군사적 업무를 겸임하였다. 또 말단의 진에서는 군수(郡守)·수령(守令)·현감(縣監) 등이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절제도위(節制都尉) 등을 겸하였다. 충청도의 경우 충주와 해미에 주진이 설치되어 있었고, 충주·청주·공주·홍주에 거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충청남도 아산시에 해당되는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은 홍주진관에 소속되어 홍주목사의 지휘를 받았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아산현 소속 군병은 2,956명, 신창현 소속 군병은 1,408명, 온양군 소속 군병은 1,789명이었다. 이를 통해 『여지도서』가 발간되었던 18세기 아산 지역의 군병은 총 6,153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1455년(세조 원년) 조선은 방어 체제의 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개혁을 단행하였다. 내륙지방에도 거진을 설치하여 여러 고을을 분속시키는 조치였다. 전국의 각도를 군익도로 나누고, 각 군익도는 중·좌·우의 3익으로 이루어졌다. 1457년 군익도 체제는 다시 진관 체제로 개편되었다.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중익, 좌익, 우익으로 편성했던 체제를 주요 지역을 거진으로 하여 주변 지역의 여러 진을 속하게 하였다. 1458년(세조 4) 중익의 기능이 주진으로 옮겨가고, 우익과 좌익의 구분이 없이 거진으로 통합되면서 진관 체제는 완성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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