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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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谷寺大雄殿-庫房 |
영어공식명칭 | Daeungjeon Hall and Shed of Bonggok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632번길 138[유곡리 59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석용현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에 있는 봉곡사의 조선 후기 불전 건물과 창고.
[개설]
봉곡사 대웅전은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곡사 경내에 세워진 조선 후기 불전 건물이며, 고방 역시 조선 후기에 지어진 요사채 일부의 창고 건물이다.
[위치]
봉곡사대웅전및고방은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의 봉곡사 경내에 있다. 흔히 ‘봉수산 봉곡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봉수산[535m]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산능선을 따라 1.8㎞ 남짓 떨어진 지점에 있는 갈매봉 북동쪽 중턱에 봉곡사가 있다. 비교적 경사가 심한 지형에 동남향으로 터를 닦아 전각을 건립하였다. 국도 39호선의 유곡1리 앞 도송로 분기점에서 도송로를 따라가다 900여m 지점 삼거리에서 왼쪽 마을길로 접어들어 800여m를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소나무 숲길로 500여m 올라가면 봉곡사 경내에 다다른다. 대웅전은 절 마당 가운데 왼쪽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봉곡사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봉곡사는 신라 말기인 887년(진성여왕 원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모연 고찰(貌然古刹)이라고 하나 근거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1170년(의종 24년)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석암사(石巖寺)’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지눌(知訥)[1158~1210]이 13세 때이니 타당성이 없다. 유서 깊은 절임을 강조하면서 붙여진 이야기로 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암사(石菴寺)는 송악산(松岳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곡사’라 바뀐 것은 1794년(정조 18)의 일이다. 봉곡사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인조 때 중창하고, 정조 때 중수하였으며, 고종 때 대웅전 및 요사를 수리했다고 한다. 봉곡사 고방은 ‘ㅁ’ 자 형태의 요사채 건물 중 북쪽 모서리 부분의 창고 건물을 가리킨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절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근거로 하여 정조 때 또는 고종 때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형태]
봉곡사 대웅전은 절의 북서쪽 산기슭의 지형을 이용하여 이중의 3단 석축기단으로 조성한 높은 기단 위에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축물이다. 기둥은 자연미를 살린 점이 눈에 띄며 내부는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이다.
봉곡사 고방은 요사채의 일부로 되어 있으나, 고방만을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정면의 모서리 한 칸은 칸살이 좁아 툇간으로 볼 수 있다. 내부는 2층 구조이며, 2층 바닥은 마루로 꾸며졌다. 외벽은 인방을 기준으로 아래쪽은 길고 위쪽은 짧게 각각 두툼한 나무 판자을 잇댄 판벽이며, 모서리 툇간의 2층 부분은 판벽 대신 물품 출납 편의를 위해 문을 달아 놓았다. 벽의 맨 윗부분은 통풍을 위해 터 놓았다.
[현황]
봉곡사 대웅전의 지붕에는 청기와를 올렸다. 내부에는 뒷벽 가운데 앞에 불단을 마련하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주불로 모셨다. 그 좌우에는 영산회상도와 지장보살도가 봉안되어 있다. 천장은 대부분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인데, 불단 위에만 우물천장으로 하여 닫집 기능을 하도록 꾸며져 있다. 외부의 양 측면에는 풍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래쪽 단편이 수평의 직선을 이루고 있다. 측면에서 보면 기둥이 기울고 벽체와 기둥 사이에 틈이 보여 하루바삐 보수 공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의와 평가]
봉곡사는 인취사, 세심사, 오봉사와 함께 충청남도 아산시에 현존하는 하는 고찰 중 한 곳이며, 전통사찰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곡사의 전각 중 역사성을 지닌 건축물로 봉곡사대웅전및고방이 1993년 7월 2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절 분위기를 고풍스럽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유적임은 분명하지만 연혁이 불확실하여 아쉬움이 크다. 중심 불전인 대웅전은 17세기, 특이한 구조의 고방은 18세기 또는 19세기의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건립 연대가 확인되지 않아서 정밀한 조사가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