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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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의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발행하였던 문학상 작품집.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1898~1961]는 공장공(恭莊公) 변종인(卞宗仁)의 후손으로 1898년 5월 9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에서 아버지 변정상(卞鼎相)과 어머니 강재경(姜在卿) 사이에 3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의 삼소(三蘇)’, ‘변씨삼절(卞氏三絶)’로 불린 변영만·변영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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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강장은 세조 때 판서를 지낸 변종인의 시호인 공장(恭莊)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공장’이 ‘강장’으로 소리가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밀양변씨대동보』에는 ‘공장’의 표기를 처음에는 공장곡(恭莊谷)이라 했다가 나중에는 공상(恭上)골로 바꿨다고 하였다. 1918년 만들어진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강상곡(綱常谷)으로 표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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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수령 5백여년 향나무. 강상골 향나무는 밀양변씨 공장공 변종인이 강상골에 살 때 심었다고 전해진다. 오랫동안 밀양변씨 집안에서 향목(香木)으로 사용해왔기 때문에 한쪽 가지가 말라죽고 다른쪽 한쪽 가지만 간신히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강상골 향나무는 부천시 고강동의 강상골 밀양변씨 종손인 변창순씨 집에서 밀양변씨 묘역으로 가는 산언덕 길 옆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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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고강동의 옛 지명은 고리울[古里洞]과 강장골[康莊谷]에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주로 높은 야산과 논, 밭을 갖춘 고을[谷]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앞으로는 서쪽으로 부평 평야, 뒤로는 동쪽 서울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관악산, 북쪽으로는 한강을 굽어보는 곳에 위치하였다. 고리울 내에 옛 마을 이름을 보면 강장골을 중심으로 강상골, 능골[陵谷], 아랫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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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속하는 행정동. 고강동의 옛 지명은 고리울[古里洞]과 강장골[康莊谷]에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주로 높은 야산과 논, 밭을 갖춘 고을[谷]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앞으로는 서쪽으로 부평 평야, 뒤로는 동쪽 서울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관악산, 북쪽으로는 한강을 굽어보는 곳에 위치하였다. 고리울 내에 옛 마을 이름을 보면 강장골을 중심으로 강상골, 능골[陵谷], 아랫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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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던 골짜기. 능골은 식골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봉배 능선의 골짜기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고리동에 속하는 ‘능곡(陵谷)’, 능골로 표기하고 있다. 소탈미[벌응절리 건넌말 뒷산의 이름]의 두 번째 골짜기였다. ‘능골’이란 ‘는골’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늘어진 골짜기를 말한다. 봉배산 줄기에서 늘어져 있는 골짜기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능골은 고리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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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고적을 시조로 하고 변예생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 세거 성씨. 밀양변씨는 초계변씨 시조 변정실의 증손 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고 있다. 『밀양변씨대동보』에 의하면 주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 변숙진이 노나라 변읍에 봉군되어 변읍의 이름을 따서 변씨 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변숙진의 후손 변원이 743년(경덕왕 2) 신라에 건너와 정착함으로써 우리나라 변씨의 시조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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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밀양변씨 묘역. 밀양변씨 묘역에는 변종인의 신도비를 비롯하여 변삼근의 유사비, 변혁조의 의헌비, 변영로의 시비가 있으며 변종인, 변삼근, 변혁조, 변영만, 변영태, 변영로, 변정상, 변강지, 변건원, 변해준, 변극찬, 변응모, 변희천, 변희눌, 변충원, 변희겸 등의 묘가 있다. 고강아파트 남동쪽에서 경인고속국도로 이어지는 해발 50m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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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국맥(國脉), 호는 정우공(正宇公). 밀양변씨 15세손이다. 부인은 의인(宜人) 청산김씨(靑山金氏) 김치제(金致齊)의 딸, 의인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수(李陲)의 딸이다. 아들은 합천군수를 지내고 좌통례(左通禮)에 추증된 변응몽[1519~?]이다. 아버지는 절도사와 공조판서, 순변사 등을 지냈고, 공장(恭莊)이란 시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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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변강지의 묘. 변강지(卞綱之)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국맥(國脈), 호는 정우공(正宇公)이다. 『밀양변씨대동보』에 의하면 1480년(성종 11)에 시행된 경자사마시(庚子司馬試)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역임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부인은 의인(宜人) 청산김씨(靑山金氏), 의인(宜人)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성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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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는 밀양변씨가 부천 지역에 정착한 것은 조선 초기 변예생(卞禮生)[?~1444] 때부터이다. 변예생은 밀양변씨 시조의 13세손으로 우군사정(右軍司正)을 거쳐 사후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밀양변씨는 부천에 들어온 이후 550여 년간 흑량리(黑梁里)[현 부천시 고강동]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본관은 밀양(密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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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학가. 변영로는 공장공(恭莊公) 변종인(卞宗仁)의 후손으로 1898년 5월 9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중추원부참의를 지낸 아버지 변정상(卞鼎相)과 어머니 강재경(姜在卿) 사이에서 3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의 삼소(三蘇)’·‘변씨삼절(卞氏三絶)’로 불린 변영만·변영태가 형들이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부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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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밀양(密陽). 변고적(卞高迪)의 13세손이다. 아내는 배천조씨(白川趙氏)이며, 아들은 공조판서를 지낸 변종인(卞宗仁)이다. 변예생은 우군사정(右軍司正)을 지냈으며,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정착하여 생활하였다. 세종 때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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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 고조부는 영안남도절도사와 공조판서·순변사 등을 지내고 공장(恭莊)이란 시호를 받은 변종인(卞宗仁)[1433~1500]이다. 증조부는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와 종사랑(從仕郞)을 지낸 변강지(卞綱之)[?~1493], 조부는 합천군수를 지내고 좌통례(左通禮)에 추증된 변응몽(卞應夢)[1519~?], 아버지는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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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원(子元). 밀양변씨 시조 변고적(卞高迪)의 14세손으로 고조부는 변중량(卞仲良), 증조부는 지풍주사를 지낸 변길상(卞吉祥), 할아버지는 판사헌감사를 지낸 변을명(卞乙明), 아버지는 우군사정을 지낸 변예생(卞禮生)이다. 산음현감 안진손(安震孫)의 딸 이천안씨(利川安氏)와의 사이에 변강지(卞綱之)·변기지(卞紀之)·변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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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공장공(恭莊公) 변종인의 묘. 변종인(卞宗仁)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원(子元)이다. 아버지는 변예생(卞禮生)이고, 어머니는 배천조씨(白川趙氏)이다.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하였고,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당상관이 되었다. 1473년(성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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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공장공(恭莊公) 변종인의 신도비. 구전에 의하면, 변종인신도비(卞宗仁神道碑)는 원래 다른 곳에 세워졌는데, 변종인 신도비가 세워진 직후부터 인근 지역에 화재가 빈발하여 많은 손해를 초래하여, 주민들의 공론으로 변종인 신도비를 옮기자 화재가 진정되었다고 한다. 고강아파트 남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밀양변씨 묘역에 있는 변종인 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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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익지(益之). 고조부는 밀양변씨의 부천 입향조로 우군사정을 지내고 이조참판에 추증된 변예생(卞禮生)[?~1444]이다. 증조부는 공조판서와 지중추부사를 지낸 공장공(恭莊公) 변종인(卞宗仁)[1433~1500], 조부는 정언을 지낸 변강지(卞綱之)[?~1493], 부친은 합천군수를 지낸 변응몽(卞應夢)[151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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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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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 있는 역사 전시관. 부천시의 역사와 선사시대의 유물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부천향토역사관은 다양한 테마 박물을 보유하고 있는 전시관 중 하나로 건립되어 부천의 향토 문화와 역사 자료를 한 데 모아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2000년에 건립되었다. 부천시 도당동에 위치한 백만송이장미원 내의 공원관리사무소가 있던 터를 새로 변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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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경기도 부천 지역의 옛 마을들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조성되었다. 이 때문에 음력 24절기에 따라 종자(種子)를 뿌리고 때를 맞추어 곡식을 거두어들였다. 제철에 추수한 곡물로 전래 음식을 마련하여 이웃과 정을 돈독하게 하고, 풍요로운 생활 문화를 추구해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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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한자로 식곡(植谷)이라고 표기하는데, 숨쉬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식곡(息谷)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나무가 우거진 골짜기라는 뜻이다. 부천문화원에서 펴낸 『부천문화의 재발견』에서는 시골[蒔谷]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는 심을 식(植)과 같은 골짜기라는 뜻이다. 모종을 심는 것이니까 씨앗이 있는 곳을 의미하므로 생명의 근원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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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입향한 성씨. 입향성씨(入鄕姓氏)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가문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입향성씨에는 입향조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많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촌락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혈연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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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하는 동성동본의 집성촌.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집성촌 형성이 일반화되는 객관적 배경으로는 상속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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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우물. 1433년(세종 15) 변종인이 강상골에 정착하면서 판 우물이다. 우물의 물맛도 고장에 따라 다른데, 특히 청수정은 물맛이 신선하고 청아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6년 도시계획 도로구역으로 편입되어 매몰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이 샘 줄기 위쪽으로 새로 조성하였다. 강장골은 예전 고강3동 29통 지역으로, 강장은 세조 때 판서를 지낸 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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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 부천시 고강동에 청동기시대 유적지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미 부천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까지 부천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기록은 미약하여 서술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조선시대의 경우 수도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 낙향하거나, 부천에 묘를 쓴 이들 중 국가에 충성을 다한 인물을 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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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해 온 토박이 성씨. 부천 지역에 마을이 형성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집성촌의 경우는 고강동에 밀양변씨가 입향(入鄕)한 조선 초기로 추정할 수 있다. 부천 지역에 있는 움집터나 고인돌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상고시대에도 자연부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자연부락의 거주민들이 현재의 부천 토박이들의 조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삼국시대와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