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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631
한자 新方里東中學校敷地內遺蹟
영어의미역 Remains of Dong Middle School Site in Sinba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리 868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임동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생활유적
면적 9,405㎡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리 868 지도보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리에 있는 삼한에서 삼국시대 생활 유적.

[위치]

유적이 있는 신방리 동중학교 터는 창원시 북동쪽 외곽 지역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리 모암마을 868번지이며, 지형적으로는 산기슭 완만한 비탈면과 그 곡간 충적지에 분포하고 있다. 이 일대는 유적의 서쪽에 있는 구룡산(九龍山)[432.1m]의 북서 줄기에서 이어지는 모암마을 남쪽의 얕은 구릉 지대로 동북쪽으로 낙동강 배후 습지인 주남저수지와 동판저수지가 있고, 신방리 동중학교 부지내 유적 북쪽 600m 지점에 사적 제327호로 지정된 창원 다호리 고분군이 있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2004년 창원교육청동읍 지역의 과밀 학급 해소를 위해 동중학교 터에 대해 동아문화연구원에 발굴 조사를 의뢰하였다. 전체 터 9,405㎡에 대하여 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라 2005년과 2007년 2차에 걸쳐 유적 전체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유적 발굴 조사 결과 주거지 10동, 구덩 유구 25기, 우물 1기, 고상 건물 터 7동, 목주열 5열, 수로 1기, 저장구덩이, 부정혈수혈, 구상 유구, 혼토조개껍데기층 등의 생활 유구를 다수 발굴하였다.

[형태]

주거지는 모두 10동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반지하식 움집 터로서 평면 형태는 방형 또는 장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동서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372~668㎝, 너비 160~525㎝, 깊이 8~54㎝ 정도다. 내부 시설로는 고래, 부뚜막, 벽구, 기둥구멍, 노지, 출입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구덩 유구는 모두 25기가 확인되었는데 형태는 대부분이 부정형으로 장축 방향은 일정하지 않다. 규모는 길이 88~1,225㎝, 너비 56~760㎝, 깊이 6~270㎝ 정도이다. 공방 터, 작업장, 저장 시설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5호와 8호 구덩 유구 안에서는 목주, 목재 문손잡이, 반 가공 목재, 목재 가공 조각 등이 다량 출토되어 목기 제작을 위한 공방 시설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혼토조개껍데기층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나선형의 형태로 퇴적되어 있다. 모두 10개의 층위에서 각종 동물 유체와 조개껍데기류가 출토되어 당시의 식생 환경을 파악할 수 있다. 동물 유체로는 개·소·말·멧돼지·사슴·고라니·노루·너구리·강치·조류 등이 출토되었고, 조개껍데기류로는 주름다슬기·논우렁이·참굴·백합·새꼬막·피뿔고둥 등 담수와 해수의 영향을 받는 종류가 함께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1기에서는 연대를 결정할 수 있는 토기류가 출토되지 않아 시기를 알 수 없으나, 고상 건물의 부재로 여겨지는 문과 보 등의 목재 유물이 출토되어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2기에는 혼토조개껍데기층과 주거지에서 연질 옹, 호, 시루 등의 생활 용기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김해시 회원동 유적과 부원동 유적에서 출토된 예와 비슷한 형태이다. 회청색 경질 두귀항아리[양이부호]는 김해 대성동 29호분과 김해 양동리 235호분에서 출토되는 덧널무덤 단계의 이른 시기 유물로 최소한 4세기 전반~중반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3기에 해당하는 조개껍데기층에서 출토된 짧은목항아리는 아가리에 물결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김해시 봉황동 유적 출토품과 비교할 수 있다. 경질 광구소호[아가리가 몸통보다 넓고 크게 벌어진 작은 단지]는 김해 윗덕정 유적 출토품과 유사하여 5세기 전반~중반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범람과 퇴적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5호 주거지 바닥에서 출토된 발형 그릇받침편은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다호리 B-27호분 출토품과 동일한 형태로 5세기 후반~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

수로에서 출토된 유물 중 생활 용기로 사용된 대접, 시루 등은 김해 아랫덕정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비슷하여 6세기 후반~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물에서 출토된 인화문병을 비롯한 유물들은 8~9세기에 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신방리 동중학교 부지내 유적은 4세기 이후 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생활 영역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신방리 동중학교 부지내 유적 발굴 조사 결과 이 유적은 창원 다호리 고분군과 서로 가까이 있고 4세기에서 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생활 영역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로 보아 창원 다호리 고분군 주인공들의 생활공간이었으리라 추정된다. 또한 두귀항아리, 노형토기 등 덧널무덤 초기 단계의 유물에서부터 5세기에 만들어진 굽다리접시 등이 출토되어 유적의 조영 시기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중 4세기에서 5세기에 만들어진 토기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이 시기가 중심 연대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물은 김해 윗덕정 유적, 부원동 유적, 봉황동 유적, 창원 다호리 고분군, 가음정동 유적군, 성산 패총 출토품과 유사하여 조사 대상 지역과는 동일한 문화권으로 판단된다. 고대 다호리 사람들은 김해만에서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내륙 수계를 교통로로 활용하여 내륙과 해상을 연결하는 교류에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여 생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저습지라는 악조건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수변 활동을 통해 습지 환경을 극복하면서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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