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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643
한자 盤溪洞遺物散布地
영어의미역 Archeological Site in Changwon Bangye-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반계동 산55-4
시대 선사/청동기,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물산포지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 산55-4 지도보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개설]

창원시는 정병산[566.7m], 장복산[582.2m], 팔룡산[일명 반룡산 582.2m], 천주산[일명 첨산 638.8m] 등 500~600m의 고봉들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의 북서쪽에 형성되어 있는 저위도의 독립 구릉지와 그 사이의 충적지에 해당한다. 이 일대는 이미 반계동 조개더미, 반계동 유물산포지(1), 반계동 유물산포지(2), 명곡동 유물산포지 등 많은 유적이 조사됨에 따라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거주 활동 무대였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창원분지의 북서쪽에 위치한 독립 구릉인 떡뫼[183m] 북서쪽 사면 말단부에 있다. 창원대로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북쪽에는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의 복합 유적인 창원 남산 유적이, 북동쪽으로는 삼국시대 고분 유적인 도계동 고분군이 입지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3년 창원대학교 박물관 지표조사에서 소규모의 조개더미가 확인된 이후, 1995년 창원시의 의뢰를 받아 창원대학교 박물관이 시행한 창원시 문화유적 정밀지표조사에서 반계동 돌틈마을 주변 기절토된 단애면에서 파손된 돌덧널무덤 1기와 조선시대 기와요지가 확인됨에 따라 한국수자원공사 차룡지구 조성 공사에 대한 학술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조사는 시굴 조사를 거쳐 Ⅰ, Ⅱ 구역으로 나누어 1996년 9월부터 약 9개월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Ⅰ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1기, 삼국시대 구덩 유구 86기, 고상 건물지 21동, 우물 7기, 배수로 10기, 폐기장이 조사되었고, Ⅱ구역에서는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독무덤 35기와 수전지가 조사되었다.

[형태]

고인돌은 좌우 양쪽으로 받침돌이 놓여 있고 그 위에 330×210×45㎝ 크기의 덮개돌이 남서향으로 기울어져 놓여 있다. 하부 구조는 2단 구덩이의 형태를 띠는데, 335×365㎝ 크기의 타원형 무덤구덩이를 먼저 판 후 254×134㎝의 타원형의 무덤구덩이를 남서쪽으로 치우치게 팠다. 받침돌로 추정되는 괴석이 1차 구덤구덩이 외곽부에 배치되어 있다.

구덩 유구의 평면 형태는 주로 타원형이며 말각 장방형, 부정형, 구상의 형태도 있다. 규모는 90~664×54~402㎝이며, 주축 방향은 남-북 방향이다. 깊이는 면적에 반비례하는데, 소형 구덩은 깊이가 깊어 저장 시설과 관련한 기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은 대부분 따로 정면하지 않은 듯 거칠며, 일부 구덩 내부에서는 목탄과 소토가 출토된다.

고상 건물지는 2×2칸(10동), 2×1칸(4동), 1×1칸(6동), 3×2칸(1동)의 구조를 가지며, 기둥구멍간의 거리는 170~200㎝으로, 정면 150~430㎝, 측면 140~420㎝이다. 장축은 북동-남서 방향이다. 기둥구멍 일부는 목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목주의 최하단부를 톱과 같은 도구로 평평하게 처리하여 사용하였다. 21호 고상 건물지는 목주 아래에 방형상의 판석을 깐 특이한 양상도 보인다.

우물은 구덩 유구와 고상 건물지에 인접하여 확인되며, 평면은 원형이다. 상광 하협형의 구덩을 파고 할석의 넓은 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벽면을 만들고, 최하단석을 돌렸으며 바닥은 그대로 이용하였다. 이 후 벽석과 구덩선 사이에 할석을 끼워 외벽을 보강하였다.

배수로는 등고선 방향에 직교하게 조성되었고 단면은 U자상이다. 입수구와 출수구의 유실로 인해 고상 건물지와 구덩 간의 관계가 불명확하다. 고분군은 넓게 이어진 능선상의 저위 평탄면에 입지한다. 돌방무덤은 파괴가 심하여, 최하단석과 시상석 정도만 남아 있으며 입구나 널길은 확인되지 않았다.

돌덧널무덤은 적갈색 점토층을 굴착하여 세장방형, 장방형의 무덤구덩이를 파고 화강암제 할석을 이용하여 최상단은 평적 기법, 하단은 수적 기법으로 석축하였다. 등고선과 나란하게 조영되며 두향은 동침이다.

돌덧널무덤의 규모는 무덤구덩이의 크기가 140~423×75~184㎝, 돌덧널의 크기가 125~310㎝이다. 독무덤은 모두 합구식이며, 3기는 구덩이, 2기는 돌덧널무덤에 해당한다. 또 합구부 좌우에 할석을 좌우 1매씩 보강한 흔적이 보이는 독무덤도 있다. 독무덤의 규모는 41~82㎝×102~155㎝이며, 옹관은 적갈색 연질 장란형 토기이다.

수전은 유적의 가장 동쪽인 곡부에 위치한다. 수전에 대한 확인 조사는 벼화분 분석과 plant-opal 확인에 의해 논층임이 확인되었는데, 토층은 23개의 기본 토층에서 30~33개로 세분되며 그 중 11, 12층을 평면 조사하였다. 11층과 12층은 논→밭→논→밭으로 반복 사용되었으며, 면적은 각각 423.13㎡+α, 497.61㎡+α이다. 평면에서는 논·밭·수로·기둥구멍이, 논과 밭 면에서는 주적과 족적·경작구 흔적이 확인되었다. 반계동 유적의 논은 반건·반습답으로, 연대는 고분군과 비슷한 시기인 6~7세기이다.

[출토유물]

출토유물은 대부분 구덩 유구와 폐기장, 고분군에서 출토된다. 발·가락바퀴·뚜껑 등 연질 계통의 토기와 굽다리접시·굽다리 달리 긴목항아리[유대장경호]·뚜껑 있는 굽다리접시[유개고배]·짧은목항아리·손잡이잔[파배] 등 도질 계통의 토기, 쇠화살촉·도자·쇠낫 등 철기류가 대표적이다. 특이한 사항은 대가야 계통의 토기가 출토되어 고령계 세력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으며, 24호 돌덧널무덤에서 망치·모루·집게의 단야구가 동반되어서 24호분 피장자가 철 생산과 관련이 깊은 집단 출신임을 추측할 수 있다.

[현황]

발굴 조사 후 아파트형 공장 지대가 입지하면서 유적의 현상 변경이 이루어져 유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창원 반계동 유물산포지는 6세기 이래 삼국시대 후기 취락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유적은 주거 공간과 폐기장, 매장지, 생산 공간 등 제 시설물이 인간을 중심으로 한 공간적 배치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조사 지역 배후인 구릉 사면 일대의 군사 보호 구역에서 민무늬토기가 채집되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반계동 배후의 구릉지는 청동기시대부터 장구한 기간 인간 삶의 터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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