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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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堂 |
영어의미역 | Roman Catholic Church |
이칭/별칭 | 천주교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창홍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가톨릭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교회.
[개설]
천주교 마산 교구가 1997년 8월 20일자 교구 시행 공문을 통하여 교구를 4개 마산 지구, 창원 지구, 진주 지구, 통영 지구로 분할하였다. 이에 따라 통합 창원시에 위치하고 있는 본당은 마산 지구[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1지역의 양덕동 성당, 구암동 성당, 산호동 성당, 삼계 성당, 석전동 성당, 호계 성당, 회원동 성당, 2지역의 남성동 성당, 상남동 성당, 완월동 성당, 월남동 성당, 월영 성당, 진동 성당이다.
창원 지구 1지역은 가음동 성당, 대방동 성당, 사파동 공동 사목, 양곡 성당이며, 2지역은 명서동 성당, 반송 성당, 용잠 성당, 중동 성당, 팔룡동 성당이고, 3지역은 경화동 성당, 덕산동 성당, 여좌동 성당, 중앙동 성당, 용원 성당이다.
[변천]
1. 마산 지구 1지역 주요 성당
(1) 양덕동 성당
양덕동 본당은 1975년 12월 8일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오스트리아 그랏즈 교구 소속으로 대구 근로자 복지 회관 JOC를 지도하던 박기홍[Josef Platzer]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의 기틀을 잡고 사목회를 조직하고 각종 신심 단체를 설립하였다. 박기홍 신부는 1976년 마산 교구를 방문한 그랏즈 교구장 웨버 주교의 성전 건립 기금 협조 약속을 받고 현대 건축의 거목 김수근 건축가를 소개 받아 1978년 11월 25일 성당을 봉헌하였다.
교구는 마산 교구 설립과 함께 인준되었던 남성동 주교좌성당을 양덕동으로 변경하고 새로운 주교좌성당으로 인준하였다. 양덕동 성당 건물은 1980년대 표현주의 경향을 보인 건축물로 조선 일보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한국 현대 건축 20선을 선정했는데 양덕동 성당이 9번째로 뽑혔다.
1980년대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1987년 2월 3일 구암동 성당을 분가시켰다. 그리고 1991년 6월 28일 석전동 본당을 설립하였다. 양덕 본당은 마산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활발한 사목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1981년 1월 26일 상남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회원동 본당이 설립되었으며 마산 교구 설정 25주년 기념으로 1991년 6월 28일 중리 지역에 호계 본당을 설립하였다. 중리 지역이 마산의 새로운 주거 지역이 되면서 신자 수가 증가하여 2004년 1월 21일에는 삼계 본당이 호계 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2) 산호동 성당
산호1동 지역은 1960년대 초만 해도 속칭 ‘반내들’이라 불리는 쌀 경작지로서 마산시내에서 진해 부산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연결되어 있던 가촌 형태의 한적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중·후반에 수출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인근 한일 합섬과 수출 자유 지역이 가동됨으로써 1970년대부터 젊은이들과 산업 현장의 생산 연령층과 유동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이 되었다.
인구 증가와 지역의 특성상 본당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79년 4월 교구 참사회에서 상남 본당을 분할하여 산호동 본당 설립을 결의하고 부지 매입에 착수하여 부산 우유 처리장을 불하받아 1980년 1월 1일 산호동 본당을 설립하였다.
2. 마산 지구 2지역 주요 성당
(1) 완월동 성당
진주 본당의 타케(Emile Joseph Taquet)[한국명 엄택기] 신부는 새롭게 본당을 이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마산에 왔다. 당시 마산은 마산포로 개항한 국제항이었다. 1899년 5월 1일 개항하면서 외국인도 살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이미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와 살고 있었고 지금의 신마산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땅값이 치솟아 하는 수 없이 지금의 완월동 성지여고인 범골에 헛간이 붙은 다섯 간 본채와 세 칸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고 1900년 6월 29일 현재 완월동 성당이 된 마산 본당을 설립하였다.
이후 제2대 주임으로 뭇세(Germain Mousset.)[한국명 문제만] 신부가 부임하여 마산 지방에 전교하게 되자 신사조에 의한 지방 교육 사업과 민중 계몽에 필요한 교육 사업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현재의 성지 여자 중고등학교인 사립 성지 학교의 인가를 얻어 초등 교육을 실시하였다.
제4대 목세영[Julius Bermond] 신부가 1928년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9월 준공을 하고 1932년 6월 석조 성전[현 마산 성요셉 성당, 경상남도 문화재 제283호] 축복식을 가졌다. 1930년 완월 본당에서 구마산 성당 설립 기성회를 발족하고 1946년 구마산 본당구를 형성하여 1951년 옛 마산 본당[현 남성동 성당]을 설립하였다. 또한 마산 본당은 신마산 본당으로 개칭하였다. 그후 1964년에는 월남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다시 완월동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성지 여자 중고등학교 교정에 위치한 완월 성당은 학교가 점점 커지고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석조 성당을 마산 성요셉 성당으로 명명하여 남겨두고 1975년 4월 10일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 246-16번지로 신축 완월 성당 기공식을 갖고 12월 14일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1983년 6월 13일 완월 신용 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1991년 7월 30일에는 무료 급식소 한솥 밥집을 개설하여 밥 굶는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현재까지 실시하고 있다.
2000년 1월 31일 본당 설립 100주년에 맞추어 성지 여자 중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마산 성요셉 성당이 경상남도 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되었고 2000년 6월 29일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를 성지 여자 중고등학교 강당에서 봉헌하였다. 2001년 9월 1일에는 우리 농산물 생활 공동체를 발족하여 운영해 오고 있으며 2003년 본당 설립 100년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완월동 성당은 천주교 마산 교구 첫 번째 성당으로 마산항 개항과 함께 해온 마산의 역사이자 신앙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사목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 남성동 성당
1930년 완월동 본당에서 구마산 본당 설립을 위한 기성회가 조직된 후 1946년 완월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1947년 남성동 소재 가옥을 매입하고 임시 성당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완월동 본당 박성춘 신부가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1951년 7월 대구교구에서 구마산 성당의 설립을 결정하여 마산 지역에서 두 번째로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유선이 신부가 부임하여 1952년 남성동 158번지 소재 건물을 매입하고 신축 공사를 착공하였으나 자금난으로 중단되었다가 본당회장과 독지가의 희사금으로 1958년 8월 15일 준공하였다. 또한 1958년 9월 1일 성모 유치원 2학급 설립인가를 받아 개원하여 1989년 2월 14일 제30회 졸업을 끝으로 폐원될 때까지 마산 지역의 유아 교육에도 공헌하였다.
1960년대 동 이름으로 성당 명칭을 부여할 때 남성동 성당으로 개칭하였다. 1966년 마산 교구가 설립되면서 1978년까지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어 사목을 전개하였다. 1990년대 신마산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도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여 교세가 감소되기 시작하였다. 남성동 본당 출신 신부 중 1975년 2월 2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룩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안명옥[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가 현재 주교로 승품되어 제4대 마산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3) 월남동 성당
1945년 해방 당시 마산시의 인구는 6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1년 뒤에는 9만에 가까운 인구로 늘어났다. 해방과 더불어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대거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당시 마산 성당으로부터 ‘신마산 지역 성당 설립 계획’을 접한 부산 교구는 마산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해 본당 설립을 추진하였다.
우선 일제 강점기 조선 식산 은행[제일 은행]이 있던 곳에 부지를 마련하여 본 건물을 수리하여 임시 성당을 마련하였다. 완월 성당의 안달원 신부는 신마산 성당 건축에 심혈을 기울여 기성회를 조직하여 노력한 끝에 1964년 12월 29일 본당이 설립되고 유재국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65년부터 성전 건축에 매달려 1968년 3월 봉헌식을 가졌다. 1990년대에 들어 신마산 일대가 확장되어 새로운 성당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새 성당 건립에 착수한 결과, 1998년 해운동 본당[현 월영 성당]이 분리되었다.
2008년 새로운 성전을 건립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해운동 본당은 회원동 본당과의 명칭 혼란으로 2004년 월영 성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금산 공소 설립, 이후 금산 공소를 흡수한 삼진 공소의 설립으로 탄력을 받아 1993년 8월 17일 진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4) 상남동 성당
1966년 교구 사목 협의회가 발족되면서 상남동 성당을 병인 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으로 건립하기로 의결한 결과, 12월 28일 남성동 본당에서 분리하여 상남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1968년 5월 11일 김수환 주교의 주례로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병인 순교 100주년 기념 성당이라는 이름에 맞게 성 김대건 신부 유해 친견 묵상 및 순교자 유물 사진 전시회를 수차례 가졌다.
3. 창원 지구 1지역 주요 성당
(1) 가음동 성당
1968년 12월 건평 20평으로 출범한 상남 공소가 1977년 7월 5일 본당으로 승격되어 용지동 본당이 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미국 출신 임덕 신부가 부임하였다. 창원 지역의 안민 공소와 창곡 공소도 관할하였다.
1992년 9월 7일 신축 성전을 봉헌하였고 본당 명칭도 가음동 성당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창원시 도시 확장으로 인구가 늘어나면서 신자들도 늘어났다. 대방동 성당이 분리되었음에도 신자수가 4,600명을 넘을 정도로 창원을 대표하는 성당이 되었다.
1999년경에는 대방동 구역 주변의 생활 환경과 주거지 발달로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서 가음동 본당의 신자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가음동 성당의 평신도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1999년 3월 5일 기공식과 성전 건립 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1999년 12월 29일 성전을 봉헌하였다. 2000년 1월 18일 대방동 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노영환 신부가 부임한 이후 신자 수가 3,000명이 넘는 성당이 되었다.
한편 양곡동 본당이 1981년 1월 26일 설립되었다. 1984년 12월 23일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2) 사파동 공동 사목
1989년 6월 23일 사파동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립된 사파동 성당이 성장하면서 신자 수가 증가하게 되어 효율적인 본당 사목을 위해 4개 지역으로 분할하여 공동사목을 펼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사파동 본당, 신월동 본당, 토월 본당, 창원 상남 본당 네곳이 2005년 1월 5일 사파동 공동 사목으로 출범하였다. 이는 한 지붕 네 가족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한국 천주 교회 최초의 공동 사목이 실시되고 있다.
4. 창원 지구 2지역 주요 성당
(1) 중동 성당
창원 지역의 교세가 날로 확장되자 1971년 11월 9일 창원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1973년 5월 20일 성전 봉헌식과 함께 본당 명칭을 중동 성당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2001년 5월 24일 본당 설립 30주년 및 새 성전 봉헌식을 갖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산 교구 설정 25주년을 맞이한 1991년 6월 29일 반송 성당과 중동 성당에서 분가하여 명서동 본당을 설립하였다. 가장 최근에 신설된 본당으로 2007년 1월 2일 팔룡동 본당이 중동 본당과 명서동 본당에서 분가하여 설립되었다.
(2) 반송 성당
1980년 당시의 창원은 계속되는 인구 증가로 반송 지역에 새로운 성전 건립을 계획하게 되었고, 1981년 1월 26일 반송 성당이 설립되었다.
1989년에는 반송 성당에서 사파동 성당이 분가하였다. 2005년 12월 17일 새성전 봉헌식을 계기로 신자 수가 5천 명이 넘는 큰 본당이 되었다.
5. 창원 지구 3지역 주요 성당
(1) 중앙동 성당
1946년 3월 대구 교구는 신자 수 150 정도였던 진해 공소를 진해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인근의 사찰인 안민사를 매입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57년 8월 성전 봉헌식을 올렸다.
1965년 12월 경화동 본당이 분리되어 설립되면서 진해 본당은 현재의 동명을 따라 중앙동 성당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경화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켜 1965년 12월 27일 경화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2) 덕산동 성당
덕산동 본당이 설립되기 전까지 진해 지역에는 중앙동·여좌동·경화동 3개의 성당이 있었다. 진해시의 도시 발전 계획에 따라 덕산동, 이동, 풍호동 지역에는 시청 이전 계획과 함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1992년 8월 19일 경화동 본당에서 분리하여 덕산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이후 진해시와 국공유지를 교환하여 성전 부지를 958.7㎡에서 1,911㎡으로 확장하여 새성전 신축 계획을 수립하였다. 마침내 2001년 10월 11일 현재의 성당 모습인 새 성전을 봉헌하였다.
그 후 관할 구역 내에 아파트 단지 등 주택 단지가 새로 조성되어 전입 인구 증가에 따라 신자 수기 증가하였다. 한편 용원 지역의 신항만 건설에 따른 인구 3만 명의 신도시 조성으로 성전 건립이 시급해졌다. 성전 건립에 힘쓴 결과, 2007년 12월 26일 용원 본당이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