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3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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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午東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변천 시기/일시 | 1910년 - 오동동 지역 지역 마산부 외서면으로 편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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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오동동 지역 마산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90년 - 오동동 마산시 합포구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97년 5월 12일 - 오동동과 중성동을 통합, 행정동인 오동동이 됨 |
변천 시기/일시 | 2001년 1월 - 오동동 마산시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2010년 7월 1일 - 오동동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로 개편 |
행정동 | 오동동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
성격 | 행정동 |
면적 | 0.43㎢ |
가구수 | 2,785호 |
인구[남,여] | 5,245명[남자 2,646명, 여자 2,599명]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합에 따라 동성동, 오산리, 상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오산’과 ‘동성’의 이름을 따라 오동리라 한데서 오동동의 지명이 생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산리는 ‘오산’에서 연유한 지명이며 오는 중심을 뜻하는 ‘’을, 산은 뫼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로 중심이 되는 산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오산’은 용마산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형성 및 변천]
합포현의 지역에서 조선 태종 때 창원부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합에 의하여 동성동, 오산리, 상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오동리라 개칭하였으며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1989년에 합포 출장소를 설치하고 1990년에 구로 승격함으로써 합포구에 속하는 동이 되었다. 1997년 5월 12일 오동동과 중성동을 통합하여 행정동인 오동동이 되었다. 2001년 구제가 폐지되어 마산시 오동동이 되었고 2010년 7월 1일 마산시가 창원시와 통합되면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이 되었다.
[자연 환경]
구마산의 중앙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상남동과 접하고 있다. 남으로는 마산만과 면하고 있으며 마산만 건너에 창원시 의창구와 성산구가 있다. 서쪽은 성호동과 이어져 있고 북쪽은 합포동과 접한다.
[현황]
2012년 8월 31일 현재 오동동의 면적은 0.43㎢이고 2,785세대가 분포하고 있다. 인구는 총 5,245명으로 남 2,646명 여 2,599명이 거주하고 있다. 오동동은 상남동 및 중성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인의 거주지였으며 상남천을 따라 발달한 상업 및 유흥 업소의 밀집지역이다. 북마산에서 오동동으로 뻗은 간선 도로변에는 보석, 시계, 양품점이 많이 입지한 상업 중심지였다. 최근 도심지 공동화 현상과 주거 환경의 열악으로 도시 재생 사업에 힘쓰고 있다.
3.15 대로, 합포로, 해안 대로 등 주요 간선 도로가 관통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아구찜 거리, 통술 거리, 복국 거리로 유명하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북3길 22[오동동 71]에서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이 탄생했으며, 오동동 타령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3.15 민주화 의거 발상지로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