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3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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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洞 |
이칭/별칭 | 돌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석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정주 |
개설 시기/일시 | 1912년 5월 25일 - 마산부 진해면 석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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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석리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5년 9월 1일 - 석동 경상남도 진해시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10년 7월 1일 - 석동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로 개편 |
행정동 | 석동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석동 |
성격 | 행정동 |
면적 | 2.33㎢ |
가구수 | 6,768가구 |
인구[남,여] | 19,745명[남자 10,105명, 여자 9,730명]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석동의 고유명은 돌리여서 『호구 총수』에 돌리(乭里)로 차자 표기되어 있고, 웅천군 공토성책에는 석리동(石理洞)으로 차자 표기되어 그 사이 소리대로 차자 표기가 훈차 표기로 변하여 석동으로 표기되었다.
민간 어원은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진해구의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우리말의 북쪽을 뜻하는 ‘~ -’의 변이 형태 돌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로서 돌(乭)·석(石)을 썼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형성 및 변천]
1912년 5월 25일 마산부 진해면 석리였던 석동은 1914년 3월 1일에 창원군 진해면 석동리가 되었다. 1931년 진해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창원군 진해읍 석리가 되었다. 1955년에 진해시로 승격함에 따라 석동리가 석동이 되었다. 2010년 7월 창원시와 통합하여 창원시 진해구 석동이 되었다.
[자연 환경]
장복산의 서쪽 끝자락인 안민 고개에서부터 시작되어 석동의 뒤편에는 웅산이 길에 펼쳐져 있다. 산지와 인접하여 있으며 산지 부근에도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어 아파트에서 등산로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곳도 있다. 석동천이 흐르고 있으며 신이천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현황]
석동은 서쪽으로 병암동, 동쪽으로 자은동, 아래 이동으로 이어지는 진해구의 중부권에 위치해 있는 행정동이다. 면적은 2.33㎢이며 2012년 11월 30일 현재 가구수는 6,768 가구이며 인구는 1만 9745명[남자 10,105명|여자 9,730명]이다. 안민 터널의 입구에 위치하여 대형 쇼핑 타운과 멀티 플렉스 영화관이 소재하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으며 대단위 아파트가 소재하고 있다. 경찰서와 국민 체육 센터, 법원 및 등기소와 진해 기적의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창원 도시 철도가 건설되면 석동을 관통하게 되고, 제2 안민 터널도 계획되어 있어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