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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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軍港-建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윤상 |
[정의]
일본 해군이 한반도 주변 해역을 방어하기 위해 1910년부터 1922년까지 진해에 건설한 군항.
[역사적 배경]
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대규모의 군대를 한국에 진주시켰다. 창원·마산·거제 등 진해만 일대 주요 지역을 사실상 강점하고 여기에 해군 방비대 등 임시 군사 기지를 설치하여 군사 훈련을 거듭한 끝에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요하여 한국을 식민지로 삼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하였다. 한편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하여 러일 전쟁 직후부터 한반도에 군항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은 해군 기지를 한반도에 설치하기 위해 조사 작업을 진행한 끝에 웅천군[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과 거제도, 진해군[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등 진해만 일대를 해군 기지 설립 부지로 선정하고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여 1906년 8월 진해만 일대를 군항으로 예정 고시하도록 하였다. 이후 현지 조사를 하고 헐값에 매수를 하여 1907년 10월 진해만 시설 조사 위원을 임명하는 등 군항 건설에 착수하였다. 범위는 웅천군 일대와 거제도 일부를 포함한 약 1,300만 평이었다. 1909년 6월부터 측량을 시작하면서 군항이 들어설 지역의 한국인 부락을 철거하는 등 공사를 시작하였다.
[군항의 건설]
군항 건설은 1910년 4월 임시 해군 건축부 지부를 설치하고, 6월에 시가 예정지에 대한 측량과 아울러 도로 및 하수도 공사에 착수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1911년 1월에는 일본 정부가 진해만에 건설되는 군항을 일본 해군 제5 해군구의 군항으로 확정했고 한반도 부근 해역을 담당시켰다. 1914년까지 ‘진해 진수부(鎭海 鎭守府)’라는 이름의 해군 기지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건설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와 동시에 군항을 보호하기 위해 마산포의 개항장을 폐지하여 허가 받지 않은 선박의 통행을 제한하는 조치도 취하였다. 1912년 4월에는 청사와 부두 시설이 일부 완성되자 거제도 송진포에 있던 해군 방비대가 이전해 왔다. 이처럼 군항 건설 공사가 진행되던 때 이곳의 지명도 본래의 웅천에서 ‘진해’로 바뀌었다. 즉 1912년 1월 당시 마산부에 속했던 웅중면 전부와 웅서면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해면’으로 하였던 것이다. 1914년에는 마산부에서 창원군이 다시 분리됨에 따라 진해면은 창원군의 관할 구역이 되었다.
1916년 3월 진해의 군항을 요항[당시 일본 해군의 규정상 군사상 경비를 요하는 항구로 군항 아래 등급]으로 지정하고 4월에 진해 요항부(要港部)를 개청하였다. ‘진수부’로 하기로 했던 해군 기지의 이름을 ‘요항부’로 바꾼 것이다. 1922년 3월 마침내 진해의 군항 설치 공사를 완료하고 1923년 3월 일본 제3 해군구의 요항으로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