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개항기 청송 출신의 유생 만강 서석기의 유고집. 청송 출신의 유생이며,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의 문인 서석기(徐錫琦)[1869~1924]의 미간행 유고이다. 서석기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도언(道彦) 또는 재진(宰眞)이며, 호는 만강(晩江)이다. 1869년 3월 15일 청송군 파천면 이사리[현 덕천 3리]에서 아버지 서득곤(徐得坤)과 어머니...
-
근대 개항기 청송 출신의 학자 심면지, 심능규 부자의 유고집. 청송 출신의 학자인 심면지(沈冕之)[1828~1886], 심능규(沈能奎)[1850~1897] 부자가 근대 개항기에 쓴 유고집으로, 현재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면지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字)는 형언(亨彦), 호는 성재(省齋)이다. 아버지는 심열문(沈烈文), 어머니는 의성김씨(咸安趙氏) 조...
-
1914년 청송 방호정에서 간행한 조선시대 단종의 사적에 대한 내용을 모은 책과 책판. 정조는 1791년 단종에게 절개를 지킨 신하들의 배향에 대한 제도를 정하는 것을 계기로 사관을 시켜 단종에 대한 시말을 고찰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의봉(李義鳳)·윤광보(尹光普)에게 능지(陵志)를 찬집하게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 뒤 1796년 이서구(李書九)가 앞의 것을 토대로...
-
1936년 청송향교에서 편찬한 청송의 사찬 읍지. 『청기지(靑己誌)』는 1936년 청송향교에서 청송의 인문, 자연지리의 정보를 모아 편찬한 읍지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송향교의 임원인 조용주(趙鏞周), 남문수(南文洙), 심능기(沈能沂), 이규백(李圭白), 유연구(柳淵龜), 심상원(沈相元), 조광규(趙廣奎), 심상광(沈相光) 등이 공동으로 편찬하...
-
1938년 청송군의 인문, 자연지리 정보를 담아서 편찬한 사찬 읍지. 『청송군지(靑松郡誌)』는 1938년 신상기(申相祺) 등이 근대 청송의 인문·자연지리 정보를 엮어 청송군지출판소에서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송 출신인 신상기, 민동호(閔東鎬), 조성진(趙性璡), 권태로(權泰魯), 남기락(南基洛), 서유(徐游) 등이 편찬하였다. 일제강점기...
-
1929년 심일택이 청송심씨 출신 인사들의 행적을 엮어 편찬한 책. 『청송세고(靑松世考)』는 심일택(沈日澤)이 1929년 청송심씨 출신 인사들의 행적을 엮어 청송세고간행소에서 간행하였다. 전통 시대에 편찬된 읍지의 형태를 수용하였으며, 내용의 대부분은 인물과 관련된 것으로 되어 있다. 청송군 출신의 심일택이 편찬하였다. 청송심씨 가문의 선대 행적을...
-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서울에서 비롯된 3.1운동은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려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 인사들도 진보면, 현서면, 청송면[지금의 청송읍] 등 여러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비록 출동한 일본 경찰들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독립에 대한 청송인들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개일교회는 1918년 청송군 현동면에 최초로 설립된 교회이다. 청송군 현동면 지역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개일교회는 1918년 11월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의 개일교회는 신도들에 의해 교회의 모체가 되는 예배 모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윤자영(尹滋瑛)[1894~1938]은 청송이 낳은 걸출한 항일독립운동가이면서 공산당 조직에 몸담고 반제국주의 민족혁명에 헌신한 혁명가였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겪고 나온 후 청년운동에 진력하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에 가입하고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의열단(義烈團)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도 일시 가담하였고, 청년동맹회...
-
일제강점기 청송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 권영만(權寧萬)[1877~1950]은 일찍이 의병에 참여하였고, 1915년 음력 1월 결성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후원하는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주비단(籌備團)의 결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임시정부의 주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용이(權龍伊)[1903~1972]는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군 임동면 편항시장(鞭巷市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일제 통치기구인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구(龍九), 호는 송담(松潭). 1903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으로 흠치교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권중호(權重浩)[1887~1924]는 흠치교(吁哆敎)에 입교하여 조선의 독립을 기도하고, 교도 모집 및 군자금을 모금하여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1887년 9월 7일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廣德里) 357번지에서 태어났다. 권중호는 1920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수(金基洙)[1859~1925]는 1919년 3월 26일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뒤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기수는 개신교 장로파 전도 조사(助師)로 전도 활동을 하던 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경상북도 각 지역에서도 곧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1919...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용(金基庸)[1883~1938]은 1919년 3월 25일의 청송 진보시장 만세시위운동, 3월 26일의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그리고 1928년의 3월 장진홍(張鎭弘)의 영천경찰서 폭파의거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명숙(明淑) 또는 사실(士實), 호는 능백(能伯), 이칭은 김명숙(金明淑).1883년 5월...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달희(金達熙)[1890~1977]는 1920년 음력 8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입교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달희는 1920년 음력 8월 청송 본가에서 치성(致誠)을 올리고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입교하였다. 흠치교는 전라북도 정읍에 본부를 두었으며, 교주...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두진(金斗鎭)[1873~1944]은 청송군 진보 출신으로 1913년 안동 출신 의병장 유시연(柳時淵)의 지휘 아래 경상북도 안동·영양·영주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잡혀 징역 15년의 옥고를 치렀다. 김두진은 1912년경부터 유시연의 지휘 아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안동 출신 유시연은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
-
일제강점기 및 현대 청송 출신의 행정가. 김만천(金萬千)[1894~1975]은 일찍이 서울에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學校)를 졸업하고 면서기, 일제 경찰 등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민족의식에 눈을 뜨면서 3.1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다. 1927년 이후 안덕면 면장으로 근무하며 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신국가 건설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의 발전...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눌인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효자각. 눌인리 창효각(訥仁里彰孝閣)은 윤제영(尹悌榮)의 부인 달성서씨(達城徐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1934년 건립하였다. 달성서씨는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현동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6.2㎞ 가량 가면 좌측에 바깥유시내마을이 나타난다. 눌인리 창효각은 바깥유시내마을...
-
1915년 7월 대구에서 결성되고 경상북도 청송 출신 권영만(權寧萬)이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1910년대 민족운동을 대표하는 비밀결사 단체로 군자금 모집과 관공서 습격 및 친일 부호 처단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청송 출신으로는 권영만이 본부 요원으로서 경주의 세금 우편마차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광복회의 창립 목적은 조직...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도평교회는 1926년에 청송군 현동면 지역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5년 6월 10일 경북노회 정종윤이 청송지방교회 조사(助事)로 파견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26년 1월 6일 정종윤 조사 주도하에 교인들이 도평교회를 설립하였다. 1934년 12월 11...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항일운동. 독립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극복하고자 전개한 민족적 항일운동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독립운동은 청송 출신 인물들이 벌인 활동을 말한다.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선행 단계로 하고...
-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滿洲)로 망명한 경상북도 청송 지역 출신 인물들의 활동. 만주 망명은 일제 침략에 의한 민족 수난기에 만주 지역으로 나가 구국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 출신 인물로는 박영산(朴榮山)과 남우락(南佑洛) 등이 이 길을 걸었다. 만주는 압록강(鴨綠江) 및 두만강(豆滿江)을 경계로 중국 동북 지방의 랴오닝성[遼寧省], 지...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춘기(閔春基)[1922~생존]는 1922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에서 수학하였고, 학업 도중 교토한국인유민생회[京都韓國人留民生會]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키웠다. 민춘기는 1939년경부터 신문점 배달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지들과 회합하며 독립의식 고취와 비밀결사 조직에 노력하던 중...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무여(武汝). 1927년 8월 2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828번지에서 아버지 박해진(朴海振)과 어머니 김시목(金時睦)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박동열(朴東烈)[1927~2008]은 1935년 4월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의 임하공립보통학교(臨河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열녀. 능주구씨(綾州具氏)는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낸 퇴우당(退憂堂) 박승종(朴承宗)[1562~1623]의 10대손인 박병렬(朴炳烈)의 아내이다. 능주구씨는 열다섯 살 때 박병렬에게 시집왔다. 남편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명문가의 자제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윗대 조상에서 관직이 삭탈되고 가산이 적몰(籍沒)되어 파산이...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산(朴永山)[1887~1931]은 일제 관헌의 기록에 한자 이름이 박영산(朴榮山), 박영산(朴英山)으로도 남아 있다. 또한 박병곤(朴炳坤), 박용찬(朴容讚)이라는 이명을 쓰기도 하였다. 1887년 1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태어났고, 1910년대 초에 만주로 망명하여 부민단(扶民團), 서로군정서(西路軍...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주한(朴柱翰)[1893~1923]은 1920년 음력 7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오산동(梧山洞) 오항산 제실(祭室)에서 치성을 하고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잡혔으나 면소(免訴) 처분으로 풀려났다. 박주한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음력...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춘식(朴春植)[1928~1987]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농림학교 제10기 재학 중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박춘식은 1928년 1월 16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태어났다. 안동농림학교 제10기 학생으로 입학하여 1944년 10월 말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
-
일제강점기 청송에서 활동하던 종교인. 박치환(朴致煥)[1878~1968]은 경상북도 의성에서 출생하여 1919년 3월 의성군 춘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한 뒤 망명하였으며, 1923년 귀국하여 청송군 현서면 화목교회(和睦敎會)에서 봉직하여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강제 공출에 저항하는 등 기독교인으로 신앙을 지켰다. 1946년 화목교회 초대 장로로 추대되었다. 본관은 밀양(...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주거 건축. 감연리에 있는 배재창 가옥(裵在暢家屋)은 1928년경에 배희직(裵熙稷)[1868~1942]이 건립한 민가이다. 배희직의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경래(敬來)로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군자금 50금을 낸 의병이자 부호였다. 현동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따라 청송군청 방향으...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경안노회에 속한 교회. 복동교회는 청송군 안덕면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1915년에 설립되었다. 1915년에 청송군 안덕면 복리의 소대마을에서 처음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때 예배를 주도했던 인물이 선교사 제임스 애덤스(James E. Adams)[한국명 안의와]였다. 1921년 5월 18일에는...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부남교회는 1923년 감연교회라는 명칭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로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에 설립되었다. 청송군 부남면 지역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부남교회는 부남면 지역 최초의 교회로, 1923년 3월 7일 남승화 전도인을 중심으로 60여...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있던 공립초등학교. 송생국민학교의 교육 목표는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어린이’, ‘자기의 임무를 다하고 협동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슬기롭게 생각하며 공부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개척하는 어린이’였다. 1937년 5월에 송생간이학교(松生簡易學校)로 인가받아 1944년 4월 1일에 송생국민학교[6...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 지역에서 시온산제국 신도들이 독립운동을 펼치다 체포된 사건. 시온산제국사건은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의 수행 과정에서 전쟁 동원과 종교 탄압에 직면한 기독교 장로교 신자들이 일본의 패망을 전망하고 펼친 반일반전운동이다. 1944년 4월 25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출신의 목사 박동기(朴東基)가 시온산제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헌법을 공포하였다...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동환(申東煥)[1891~1958]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1891년 1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신동환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겉으로는 종...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두환(申斗煥)[1880~1958]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1880년 11월 30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381번지에서 태어났다. 신두환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범희(申範熙)[1892~1929]는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신범희는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1892년 3월 13일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겉으로 종교 활동을 표방...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두(申相斗)[1871~1969]는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선두에서 주동하다가 잡혀 징역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청송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5일 청송군 진보장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상두는 청송군 파천면 출신으로 이웃 고을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선(申相宣)[1887~1969]은 1920년 음력 8월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였다. 신상선은 흠치교에서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었지만, 대구복심법원의 면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신상선은 1920년 음력 8월경 청송에서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였다...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용(申相鎔)[1876~1925]은 1920년 음력 7월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흠치교의 힘으로 국권을 회복한다는 신념으로 교도 조직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잡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신상용은 상위자인 신규환(申圭煥)의 권유를 받아 1920년 음력 7월 청송군 합강리 마을 거주지에서 치성(致誠)을 행하고...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희(申喆熙)[1895~1965]는 1920년 음력 8월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잡혔으나 1921년 11월 대구복심법원의 면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본관은 평산(平山).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 1895년 7월 4일 신상기(申相琦)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철...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태휴(申泰烋)[1870~1931]는 1919년 3월 26일 조현욱(趙炫郁)과 함께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평산(平山). 이명은 신태걸(申泰杰). 1870년 8월 3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신태휴는 전국 각지에서 3.1...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사회활동가. 심상완(沈相完)[1899~?]은 1899년 4월 28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동(德川洞)에서 자산 60만 엔을 보유한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대 전반기에 국내 사상 단체와 국외 독립운동 단체에 일시 가담하였다가 물러난 후 기업을 설립하여 운영하며 광산 개발 및 경영에도 전념한 사업가였고, 경상북도 평의회(評議會) 의원을 두 번...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송(靑松). 창씨명은 청전훈(靑田勳). 1929년 1월 16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상만(沈相万)과 어머니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6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김헌춘(金憲春)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1942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의 파천국민학교(巴川國民學校)를 졸업하고, 1942년 4...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 출신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항일 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가 일으킨 항일운동.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는 1933년 4월에 설립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유일한 중등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원하고 전쟁에 동원될 군인을 양성...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택락(禹宅洛)[1878~1946]은 1920년 음력 7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가입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우택락은 면서기(面書記)로 재직하던 중 1920년 음력 7월 청송 진보에서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흠치교는 종교를 표방...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백자리에 있는 운사정(雲沙亭)은 윤정벽(尹鼎璧)[1653~1697]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윤정벽의 본관은 파평(坡坪)으로, 숙종 연간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역임하였다. 운사정은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의 모래실마을의 야산 자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운사정은 1917년 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창씨명은 송강동행(松岡東幸). 1927년 11월 20일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면 월막동에서 아버지 윤자기(尹滋琦)와 어머니 영해박씨(寧海朴氏) 박근이(朴根伊) 사이에서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버지 윤자영(尹滋瑛)은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학생지도부 일원이었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滿洲總局)과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성택(尹成澤)[1926~1957]은 16세 때인 1941년 6월부터 일본 교토[京都]의 토목공사장에서 일하던 중 동포 공원(工員)인 동지들과 함께 만 3년 동안 독립운동을 은밀히 벌이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1여년 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5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이현동(泥峴洞) 170번지에서 태어나...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영(尹滋瑛)[1894~1938]은 20대 중반 때 서울에서 3.1 독립만세운동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고 나온 후, 초기 청년운동 및 사상운동 대오의 선두에서 활동하다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들어가 곧 중요 인물이 되어, 국민대표회의 때 개조파(改造派)의 거두로 활약한 후 청년동맹회(...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사회운동가. 윤주학(尹周鶴)[1905~1956]은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사회운동가로 1920년대 후반기 청송 지역의 청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40년대 이후 경상북도 평의원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신국가건설운동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도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청송중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원태(元泰), 호는 송정(松井). 19...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백(李起白)[1899~1971]은 1920년 음력 7월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독립자금 모집과 교세 확장에 노력하다 잡혔으나 1921년 11월 대구복심법원의 면소(免訴) 판결로 풀려났다. 이기백은 1920년 음력 7월 청송 본가에서 치성(致誠)을 하고 흠치교에 들어갔다. 흠치교의 본부는 전라북도 정읍에 있었고, 교주(...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순(李琦淳)[1918~1999]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1년부터 도쿄[東京]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동지 규합에 힘쓰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43년 체포되어 옥고를 겪고, 고문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오랫동안 앓았다. 호적명은 이명수(李明秀), 창씨명은 벽산명수(碧山明秀), 호는 천애(天涯). 1918년 3월 19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서화(李瑞和)[1885~?]는 한족회 회원으로 국내로 잠입하여 고향인 청송을 비롯하여 안동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서화는 1885년 11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목계리(木溪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이동화(李東...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세기(李世紀)[1882~1911]는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1906년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였으며, 1908년 최세윤(崔世允) 대장이 잡힌 뒤부터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1909년 7월 일본군에게 잡혀 3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1년...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에 있었던 공립초등학교. 이전국민학교 내룡분교의 교육 목표는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애국]’,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자극]’, ‘생각하며 행동하는 어린이[창조]’,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건강]’, ‘예절 바른 어린이[도덕]’였으며, 교훈은 ‘정직, 성실’이었다. 1932년 5월 1일에 부동 공립보통학교 부설 내룡...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李瀅)[1886~1949]은 1919년 3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형은 일찍부터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며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였다. 그러던 중 조현욱(趙炫郁)과 신태휴(申泰烋) 등이 1919년 3월 26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
-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의 공포에 이어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 관제(官制)가 실시되었다.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였던 청송 지역은 1895년 23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안동부(安東府) 청송군(靑松郡)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道制)에 따라 경상북...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전개되었던 노동운동. 청송군에서 청송노동공제회가 중심이 되어 야학을 운영하고 봉건 의식 타파를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는 활동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은 1910년대에 부두 노동자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전개되었다. 본격적인 노동운동은 1920년 4월 서울에서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가 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노동공제회의 강령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여성들의 계몽과 권익 옹호를 위해 펼친 운동. 청송군에서 청송여자청년회가 결성되어 대중운동의 흐름에 호응하여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등 여성들의 계몽과 권익 옹호 등을 목표로 한 다양한 여성운동을 벌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민족운동 세력은 3.1운동을 포함한 그 동안의 민족운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민족운동의 방략과 노선을 모...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청년들이 벌인 사회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운동 세력은 그동안의 민족운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운동의 방략과 노선을 모색하였다. 민족운동 세력은 3.1운동이 국내외에서 각계각층이 참여한 거족적인 민족운동이었으나, 비조직적이고 고립 분산적으로 전개되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총체적...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임용상(林龍相)[1877~1954]은 1905년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합류하여 활동하다가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었다. 1908년 이후 청도, 청송,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잡혀 10여 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출옥 후 의열단(義烈團)과 독립군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규영(趙奎永)[1897~1950]은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도하고, 교도(敎徒) 모집 및 자금을 모집하여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관은 함안(咸安). 1897년 2월 28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내면[지금의 현서면] 두현리 375번지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국(趙柄國)[1883~1955]은 1919년 3월 26일 조현욱(趙炫郁), 신태휴(申泰烋) 등과 같이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튿날 다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조병국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 조현욱으로부터 궐기를 촉...
-
1920년부터 1922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군자금 모집 활동. 중국 만주(滿洲) 서간도(西間島)의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고자 1920년 9월경 경상북도 김천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後援義勇團)이 1922년 12월 일제 경찰에 발각될 때까지 경상북도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는데, 그...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성태(趙性台)[1858~1928]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4월 29일 참모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응삼(應三), 호는 존심정(存心亭). 다른 이름으로 조성대(趙性臺)를 사용하기도 했다. 1858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長田里)에서 아버지 조연식(趙蓮植)과 어머니 오천정씨(烏川鄭氏) 사이...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옥제(趙玉濟)[1923~1999]는 1923년 5월 24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34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4월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3학년 재학중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비밀결사 문예부(文藝部)에 가입하였다. 문예부는 일찍부터 민족의식이 담긴 역사와 문학 관련 서적을 읽기 위...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원(趙鏞元)[1899~1979]은 1920년 흠치교(吘哆敎)에 들어가 경상북도 청송 일대에서 교도 모집과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조용원은 1920년 음력 9월 흠치교에 입교하였다. 흠치교는 전라북도 정읍에 본부를 두고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표면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실제로는 한국 독립을 목적으...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학이(趙學伊)[1890~1953]는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平洞) 편항(鞭巷)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경상북도 안동군에서도 안동읍과 예안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이웃한 임동면에서는 유연성(柳淵成) 등이 3월 2...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현욱(趙炫郁)[1854~1922]은 1919년 3월 26일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목산(牧山). 1854년 1월 2일 대구 성당동(聖堂洞)에서 아버지 조경화(趙敬和)와 어머니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나 조명화(趙命和)에게 입양되었다. 16...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서 청년운동을 주도한 단체. 진보청년회는 청년운동을 목적으로 진보면의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설립된 청년 단체이다. 지역민을 계몽하고 지역 사회의 발전 방안과 산업 진흥 대책 마련을 위해 활동하였다. 진보청년회는 청송군 진보면 청년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지역 발전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진보면은 청송군 가운...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주거 건축. 덕천리에 있는 창실 고택(昌室古宅)은 1917년 심호택(沈琥澤)[1862~1930]과 재종간인 심영택이 건립한 가옥이다. 청송읍에서 지방도914호선을 따라 길안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3.2㎞ 가면, 도로 우측에 하덕천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창실고택은 하덕천마을 서북쪽에 있다. 주변에 송소...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효자각. 창양리 효자각(昌陽里孝子閣)은 조규명(趙圭明)[1860~193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이다. 조규명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순화(舜和), 호는 일송(逸松)으로 1896년 함창 태봉(胎封) 전투에 참전한 청송 출신의 의병이다.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 사람들이 조규명의 효...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건립된 일제강점기의 주거 건축. 덕천리에 있는 청송 송정 고택은 1914년에 건립된 심상광(沈相光)[1886~1964]의 살림집이다. 심상광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화(純華), 호는 송정(松庭)으로 심부자라 불리는 만석꾼 심호택(沈琥澤)[1862~1930]의 둘째 아들이다.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파천면사무...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주거 건축. 창양리에 있는 청송 후송당 고택은 1937년 후송(後松)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한 근대 가옥이다. 조용정은 현재 청송 후송당 고택을 소유하고 있는 조창래의 조부이다. 청송 후송당 고택은 현동면사무소에서 국가지원지방도68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안덕면으로 가는 길목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에 설립된 금융기관. 청송군 부남면 식산조합은 지역 농민에게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예금 및 농촌에 유리한 사업을 진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5년 청송군 부남면의 유지 서정윤(徐廷潤), 우도훈(禹導勳), 정현유(鄭賢悠)는 지역 농민들이 영농자금을 원활히 마련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금융기관 설립...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사회운동을 벌였던 개신교 청년 단체. 청송기독청년회는 청송군 청송면 예배당에서 창립된 청년 단체이다. 1925년 2월 창립되었으며, 창립 당시 회장은 윤우영이었다. 청송기독청년회는 개신교를 매개로 하여 종교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년을 비롯한 지역민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벌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 청송노동공제회는 1920년대에 청송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단체로, 민족 현실과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청송 지역 노동자의 권익 옹호와 교육 활동 등을 통해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목적...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주거 건축. 덕천리에 있는 청송심씨 찰방공 종택은 청송심씨 찰방공파의 종택으로 1933년에 건립되었다. 찰방공(察訪公) 심당(沈鐺)[1606~1674]의 자는 자경(子警)으로 벽절공(碧節公) 심청(沈淸)의 손자이자,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9세손이다. 파천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타고 남쪽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여성운동을 펼친 단체. 청송여자청년회는 1920년대 초반 청송군에서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사회 운동 단체이다. 여성들의 사회 인식을 고양하기 위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개최하고, 여성들의 권익 옹호와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청송여자청년회는 여성의 교육 사상 보급과 이상적인 여성 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장로회 소속 교회. 청송읍교회는 1910년에 장로회 소속 교회로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설립되었다. 청송읍 지역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청송읍교회는 1910년 5월 20일에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의 초막골 가정집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에 속한 교회를 설립하여 첫 예배를 올린 것에서...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청송청년회는 설립 초기에는 문화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대 중반에 혁신하여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1920년대 초반에는 봉건의식을 타파하고 근대 지식을 전파하는 등 문화운동을 펼쳤고,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에게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목적으로 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에 있던 공립초등학교. 현남초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예절 바른 어린이’, ‘탐구하는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 ‘자주적인 어린이’, ‘부지런한 어린이’였으며, 교훈은 ‘현남 어린이 다짐’이었다 현남초등학교는 1941년 5월 1일에 화목공립국민학교 부설 수락간이학교로 처음 인가받아 7월 28일에 개교하였다. 1944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립된 조선형평사의 분사. 형평사 청송분사는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백정 출신 인사들이 백정들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여 저울처럼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내걸고 설립한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의 하부 단체이다. 형평사 청송분사는 백정의 자유와 평등, 권익의 쟁취를 통한 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백정 출신의 주도로 전개된 사회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진주에서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가 조직되어 1935년 대동사(大同社)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12년간 전개된 백정(白丁)들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이다. 백정은 전통 사회에서 최하층 천민이었다. 1894년 제1차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백정들에 대한 사회적...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에 있던 공립초등학교. 화목국민학교 수락분교의 교육 목표는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슬기롭게 공부하는 어린이’, ‘서로 돕는 어린이’, ‘아껴 쓰며 저축하는 어린이’, ‘튼튼한 어린이’였으며, 교훈은 ‘성실한 어린이가 되자’였다. 1940년 4월 15일에 수락간이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5월 1일에 개교하였으나, 1943년 9...
-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화목장터에서 1919년 3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비록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해산되었지만 청송 지역 3.1운동을 대표할 만큼 규모가 컸고 격렬하였다.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의 주도층 인사들은 만국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