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서울에서 비롯된 3.1운동은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려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 인사들도 진보면, 현서면, 청송면[지금의 청송읍] 등 여러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비록 출동한 일본 경찰들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독립에 대한 청송인들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靑松義陣), 의성의진(義城義陣), 이천의진(利川義陣)이 연합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관군과 벌인 전투.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 의성의진, 이천의진이 연합하여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고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관군과 벌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의성연합의진은 관군 10여 명을 사살하는 등 크게 이겼다....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용이(權龍伊)[1903~1972]는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군 임동면 편항시장(鞭巷市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일제 통치기구인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구(龍九), 호는 송담(松潭). 1903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권유현(權有鉉)[1876~?]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陣)과 정해일의진(鄭海日義陣)에 가담하여 경상북도 안동(安東)·풍기(豊基)·순흥(順興) 등지에서 활약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안동(安東). 1876년 음력 2월 30일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북면(北面) 흥구리(興丘里)에서 태어나...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수(金基洙)[1859~1925]는 1919년 3월 26일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뒤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기수는 개신교 장로파 전도 조사(助師)로 전도 활동을 하던 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경상북도 각 지역에서도 곧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1919...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용(金基庸)[1883~1938]은 1919년 3월 25일의 청송 진보시장 만세시위운동, 3월 26일의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그리고 1928년의 3월 장진홍(張鎭弘)의 영천경찰서 폭파의거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명숙(明淑) 또는 사실(士實), 호는 능백(能伯), 이칭은 김명숙(金明淑).1883년 5월...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완이(金完伊)[1881경~?]는 1906년 3월부터 4월 24일까지 이하현의진(李夏鉉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완이는 1881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북면 병옥리[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경상북도 진보·영양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하현의진에 참여하였다....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의성(金義聖)[1880~1909]은 청송군 진보 출신으로, 신돌석의진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 안동 등지에서 일본군 헌병 1명을 비롯하여 일본군에 협조한 조선인을 처단하였으며,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경성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김의성은 1880년경 경상도 진보군(眞寶郡) 북면(北...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재수(金在洙)[1876~1909]는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어난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자 의성의 박연백(朴淵伯) 의진에 들어가 소모장(召募將)으로 영천, 안동, 신녕 등 여러 지역에서 군자금 확보에 주력하다 체포되어 1909년 4월 교수형으로...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인(南錫仁)[1878~1907]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였고, 1906년에는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팔(禹八), 이명은 남우팔(南又八). 1878년(고종 18)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도평리(道坪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 의병이 전국적으로...
-
1915년 7월 대구에서 결성되고 경상북도 청송 출신 권영만(權寧萬)이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1910년대 민족운동을 대표하는 비밀결사 단체로 군자금 모집과 관공서 습격 및 친일 부호 처단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청송 출신으로는 권영만이 본부 요원으로서 경주의 세금 우편마차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광복회의 창립 목적은 조직...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항일운동. 독립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극복하고자 전개한 민족적 항일운동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독립운동은 청송 출신 인물들이 벌인 활동을 말한다.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선행 단계로 하고...
-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滿洲)로 망명한 경상북도 청송 지역 출신 인물들의 활동. 만주 망명은 일제 침략에 의한 민족 수난기에 만주 지역으로 나가 구국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 출신 인물로는 박영산(朴榮山)과 남우락(南佑洛) 등이 이 길을 걸었다. 만주는 압록강(鴨綠江) 및 두만강(豆滿江)을 경계로 중국 동북 지방의 랴오닝성[遼寧省], 지...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춘기(閔春基)[1922~생존]는 1922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에서 수학하였고, 학업 도중 교토한국인유민생회[京都韓國人留民生會]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키웠다. 민춘기는 1939년경부터 신문점 배달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지들과 회합하며 독립의식 고취와 비밀결사 조직에 노력하던 중...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박수찬(朴壽燦)[1867~1922]은 1906년 3월 처남 신돌석(申乭石)과 함께 경상북도 영덕에서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일으키고 참모장(參謀將)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 박덕술(朴德述)의 지극한 효행으로 풀려났다.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양정(養亭). 1867년 10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출생하였...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산(朴永山)[1887~1931]은 일제 관헌의 기록에 한자 이름이 박영산(朴榮山), 박영산(朴英山)으로도 남아 있다. 또한 박병곤(朴炳坤), 박용찬(朴容讚)이라는 이명을 쓰기도 하였다. 1887년 1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태어났고, 1910년대 초에 만주로 망명하여 부민단(扶民團), 서로군정서(西路軍...
-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 출신의 의병. 박용태(朴容台)[1888~?]는 경상북도 진보에서 신돌석의진에 참여한 이후 1908년 음력 3월 17일경 이 참봉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진보군 남면 감곡동(甘谷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용태는 1888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상리면(上里面)[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
개항기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경주 및 경상남도 울산, 밀양 일대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190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일대를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 정환직(鄭煥直), 최세윤(崔世允)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였다. 의진은 처음부터 관동(關東)을 향한 북상을 목표로 정하고 활동하다 1907년 9월 입암전...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종락(徐鍾洛)[1874~194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청송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창의(倡義) 이후에는 1차 산남의진의 후봉장(後鋒將)에 이어 선봉장(先鋒將)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에는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특히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성택(尹成澤)[1926~1957]은 16세 때인 1941년 6월부터 일본 교토[京都]의 토목공사장에서 일하던 중 동포 공원(工員)인 동지들과 함께 만 3년 동안 독립운동을 은밀히 벌이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1여년 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5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이현동(泥峴洞) 170번지에서 태어나...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윤학이(尹學伊)[1873~?]는1908년 6월 경상북도 영덕에서 창의한 신돌석 의진(申乭石義陣)에 입진하여 울진, 영해, 청송, 영양 등지에서 군량미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 강제 체결에 격분한 신돌석은 1906년 3월 13일 경상북도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해...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이석이(李石伊)[1879~1910]는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산남의진의 정용기(鄭鏞基) 대장이 전사하자 독자적으로 의병을 이끌고 일본인 및 친일파 처단과 군자금 징수 활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1910년 3월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10년 당시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 거주하였던 것으...
-
1920년부터 1922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군자금 모집 활동. 중국 만주(滿洲) 서간도(西間島)의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고자 1920년 9월경 경상북도 김천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後援義勇團)이 1922년 12월 일제 경찰에 발각될 때까지 경상북도 일원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는데, 그...
-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학이(趙學伊)[1890~1953]는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平洞) 편항(鞭巷)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경상북도 안동군에서도 안동읍과 예안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이웃한 임동면에서는 유연성(柳淵成) 등이 3월 2...
-
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동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靑松東部陣徐鍾洛部隊)는 최세윤(崔世允)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대(支隊)로서 1908년 2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다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에서 패하고 해산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때...
-
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서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서부진 남석구부대(靑松西部陣南錫球部隊)는 1908년 3월 철령(鐵嶺)을 근거지로 경상북도 청송 서부 지역을 지키기 위해 편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역 부대였다. 일본군과 여러 차례 격전을 벌인 뒤 1910년 청송군 안덕면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고종...
-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화목장터에서 1919년 3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비록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해산되었지만 청송 지역 3.1운동을 대표할 만큼 규모가 컸고 격렬하였다.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의 주도층 인사들은 만국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