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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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君言 |
영어공식명칭 | Baek Gune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출생 시기/일시 | 1857년 - 백군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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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백군언 독립공채 모집 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1월 - 백군언 일제 경찰에게 체포 |
출생지 | 남성정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백군언(白君言)[1857~?]은 185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책방을 경영하던 중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공채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20년 8월 대구 출신의 이현수(李賢壽)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북교통사무특파원에 임명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독립공채 모집 활동을 펼쳤는데, 백군언은 김봉도(金奉道)·정팔진(丁八鎭)[정덕진(丁德鎭)] 등과 함께 이에 동참하였다.
백군언 등은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위한 경고문을 비롯하여 물품 불구매 고지서, 납세 거절 협박문, 각종 포고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공채 모집에 관한 인정서 등을 인쇄하여 경상북도 관내 한국인 군수·면장 등과 부호들에게 우송하는 한편, 한밤중에 대구 시내의 한국인 가게 앞과 거리에서 독립운동 문건을 뿌리기도 하였다. 또한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미국에서 열리는 워싱턴 군축회의에 맞추어, 대구·평양·전주·부산 등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조선 독립 청원과 지지를 요청하는 영문 책자를 우송하였다. 백군언은 1923년 1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제령 7호」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