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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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再祺 |
영어공식명칭 | Kwak Jaegi |
이칭/별칭 | 여수,현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여수(汝綏), 호는 현고(弦皐).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곽위(郭瑋), 할아버지는 성균관(成均館) 사성(司成)을 지낸 곽지번(郭之蕃)이다. 아버지는 황해도(黃海道)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곽월(郭越), 어머니는 목사(牧使)를 지낸 강응두(姜應斗)의 딸 진주 강씨(晉州姜氏)와 참봉(參奉)을 지낸 허경(許瓊)의 딸 김해 허씨(金海許氏)인데, 곽재기는 김해 허씨의 소생이다. 부인은 이심옥(李心玉)의 딸 광주 이씨(廣州李氏)와 선교랑(宣敎郞) 신여성(辛汝誠)의 딸 영산 신씨(靈山辛氏)이다. 곽재기에게는 곽재희(郭再禧)·곽재록(郭再錄)·곽재우(郭再祐)·곽재지(郭再祉) 네 명의 형이 있다.
곽재기(郭再祺)[1573~1649]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특히 형 곽재우(郭再祐)를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전란 도중 부인 광주 이씨가 왜적을 만나자, 물에 몸을 던져 순절(殉節)하였다. 이로 인해 선조 연간 광주 이씨는 열부(烈婦)로 정려(旌閭)되었다. 곽재기는 계공랑(啓功郞)에 올랐지만, 광해군 연간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자, 과거 공부에 뜻을 버리고 학문 연구에만 힘썼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 신당(新塘)에 묘소가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