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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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魯谷洞 永慕齋 |
영어공식명칭 | Daegu Nogok-dong Yeongmoja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산7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건립 시기/일시 | 18세기 초 - 대구 노곡동 영모재 경로재라는 이름으로 건립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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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7년 - 대구 노곡동 영모재 중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7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14년 - 대구 노곡동 영모재 중수 |
현 소재지 | 대구 노곡동 영모재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산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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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재실 |
양식 | 홑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경주이씨 판윤공파 묵와공문중 |
관리자 | 경주이씨 판윤공파 묵와공문중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재실.
대구 노곡동 영모재(大邱魯谷洞永慕齋)는 묵와(默窩) 이후남(李厚楠)[1579~1631]을 추모하고자 조선 후기에 세워진 재실이다. 이후남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9세손이며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입향조이다. 이후남은 노곡동에서 거주하면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의 7세손인 김귀송(金貴松)과 함께 공자를 존숭하는 마음을 담아 마을 이름을 ‘노곡동(魯谷洞)’으로 불렀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대구 노곡동 영모재는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다. 남쪽은 금호강에 접하여 있고, 북쪽은 함지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백인관(白仁寬)을 추모하는 화암서원(花巖書院), 백촌 김문기를 기리는 김문기 태충각[백촌김선생유허비(白村金先生遺墟碑)]과 경의재(景毅齋), 김녕김씨 노곡 입향조 김귀송(金貴松)의 재실인 사성재(思誠齋) 등이 가까이에 있다.
대구 노곡동 영모재는 이후남의 8세손 이집길(李集吉)이 주동이 되어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뒷산에 있는 묘의 처음 비석은 약 300년 전에 세웠다고 한다. 처음 건립할 당시에는 ‘경로재(敬魯齋)’라는 이름이었는데, 1917년에 중건하면서 ‘영모재’라고 불렀다. 2014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대구 노곡동 영모재는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구 노곡동 영모재는 경주이씨 판윤공파 묵와공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구 노곡동 영모재 앞뒤에는 금호강과 함지산이 있어 자연 경관이 좋으며 주변에는 화암서원, 김문기 태충각, 경의재·사성재가 있어 역사문화경관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