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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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地藏寺 碑石群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남지장사길 95[우록리 8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동락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남지장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들의 공덕비.
조선 후기 남지장사(南地藏寺)의 중창과 관련된 승려 세 명의 공덕비 3기가 경내에 보존되어 있다. 세 명의 승려는 운계당 대선사 축연, 모계당 대선사 취찰, 경운당 대선사 미화이다. 승려들에 대한 관련 기록이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아 생몰년과 이력은 자세하지 않다.
남지장사의 종루인 광명루의 동쪽에 왼쪽부터 운계당 대선사 휘 축연 송덕비, 모계당 대선사 휘 취찰 송덕비, 경운당 대선사 휘 미화 선덕비가 위치하고 있다.
3기의 비는 모두 비좌(碑座) 위에 규수형(圭首形)의 비신을 세웠다. 비좌의 하부는 매몰되어 있다. 운계당 대선사 휘 축연 송덕비는 비좌 길이 94㎝, 너비 47㎝이고, 비신 높이 101㎝, 너비 41㎝, 두께 15㎝이다. 모계당 대선사 휘 취찰 송덕비는 비좌 길이 81㎝, 너비 66㎝이고, 비신 높이 114㎝, 너비 47㎝, 두께 17.5㎝이다. 경운당 대선사 휘 미화 선덕비는 비좌 길이 80㎝, 너비 43㎝이고, 비신 높이 99㎝, 너비 31㎝, 두께 14.5㎝이다.
1. 운계당 대선사 송덕비
앞면 중앙에 '운계당 대선사 휘 축연 송덕비(雲溪堂大禪師諱竺演頌德碑)'라 쓰여 있으며, 앞면 오른쪽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서산십일상봉팔세(西山十一霜峰八卋)[서산대사의 11세손이요, 상봉 스님의 팔세손이시다 ]
한운청풍환모중건(寒雲淸風喚慕中建)[한운 스님의 맑은 기풍, 환모 스님이 중간에 세우셨네]
해영여음갱생이지(解影餘陰更生二枝)[혜영 스님의 넉넉한 음덕이 다시 두 가지가 더 생겨났네]
앞면 왼쪽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월유아사성본강개(粤惟我師性本慷慨)[아아 옛적 우리 대사께서는 성품이 본래 강직하고 기개가 있으셨네]
노심노력유공유덕(勞心勞力有功有德)[마음과 몸으로 애쓰고 노력하여 공덕을 이루셨네]
석면가어비전천조(石面可語俾傳千兆)[비석에 기록할 만하니 천억 년 후까지 전하리라]
오른쪽 옆면에 상원갑신유삼월일립법제동봉휘윤정(上元甲辛酉三月日立法弟東峯諱允定)이라 쓰여 있다. 신유년은 1801년을 말한다.
2. 모계당 대선사 송덕비
앞면 중앙에 '모계당 대선사 휘 취찰 송덕비(慕溪堂大禪師諱取札頌德碑)'라 쓰여 있으며, 앞면 오른쪽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운봉양구촉목개비(運逢陽九觸目皆非)[전쟁의 재앙이 다가오는 운세를 만나니, 눈에 뜨는 모든 것이 다 잘못 되었네]
금당훼괴옥호잠휘(金堂毁壞玉毫潛輝)[부처님의 법당은 훼손되어 무너지고, 부처님의 옥호는 빛이 사라졌도다]
만원질려전거아수(滿園蒺藜剪去阿誰)[마당에는 가득히 가시나무 자랐으니, 이것을 잘라 없앨 이 그 누구란 말인가?]
앞면 왼쪽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월유아사풍래탁석(粤惟我師風來卓錫)[아아 지난 날 우리 대사께서는 바람 따라 오셔서 석장(錫杖)을 높이 세우셨네]
고설수년담소이복(鼓舌數年談笑而復)[몇 년에 걸쳐서 예기하고 설득하여, 이야기하고 웃으며 절을 다시 지으셨네]
편석가어비수천억(片石可語俾壽千億)[한 조각 비석이 말을 할 수 있으니, 억천년 이 일을 전하게 하리라]
오른쪽 옆면에는 가경십칠년임신십이월일립(嘉慶十七年壬申十二月日立)이라 쓰여 있다. 임신년은 1812년이다.
3. 경운당 대선사 선덕비
앞면 중앙에 '경운당 대선사 휘 미화 선덕비(景雲堂大禪師諱未化善德碑)'라 쓰여 있으며, 앞면 오른쪽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정산위중유사지학(頂山爲重惟師之學)[최정산이 육중하니 대사의 학문과 같고]
조계우청유사지덕(曹溪尤淸惟師之德)[조계수가 더욱 맑으니 대사의 덕행과 같네]
상송반야명료자성(常誦般若明了自性)[항상 반야경을 읽어서 자성을 밝히고]
다음은 앞면 왼쪽에 있는 글이다.
자성참구불퇴보리(自性叅究不退菩提)[자성을 참구하니 불퇴전의 보리심이라]
수선가람불유불근(修繕伽藍不惟不勤)[가람을 고쳐 수리하니 부지런하지 아니함이 없으셨네]
편석가기비대유통(片石可記俾代流通)[한 조각 돌에 기록하여 대대로 이 사실 전하리라]
왼쪽 옆면에는 상원갑신유삼월일제자박보명성윤립(上元甲辛酉三月日弟子朴普明性允立)이라 적혀 있다. 신유년은 1801년이다.
남지장사 비석군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으나 모계당 대선사 취찰 송덕비는 전면의 일부가 훼손된 상태이다. 비문은 약간의 마멸과 일부 훼손이 있다. 남지장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 후기 남지장사의 중창에 관여한 승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관련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남지장사의 변모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