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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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忠胤 |
영어공식명칭 | Park Chungyun |
이칭/별칭 | 언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후기 달성군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언술(彦述). 고조할아버지는 사육신(死六臣) 중 한 명인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박순(朴珣), 증조할머니는 군수(郡守)를 지낸 이철근(李鐵根)의 딸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司僕寺) 정(正) 박일산(朴一珊), 할머니는 참판(參判)을 지낸 김백형(金伯亨)의 딸 증 숙인(淑人) 고령 김씨(高靈金氏)이다. 아버지는 소격서(昭格署) 참봉(參奉)을 지낸 박계창(朴繼昌), 어머니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건(李謇)의 딸 증 정경부인(貞敬夫人)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부인은 첨정(僉正) 이광복(李光復)의 딸 광주 이씨(廣州李氏)이다. 박충후(朴忠後)·박충예(朴忠裔)·박충서(朴忠緖) 세 명의 형제가 있으며, 큰아들은 학자로 이름을 드러낸 박종우(朴宗祐)이다.
[활동 사항]
박충윤(朴忠胤)[1557~1638]은 대구 도호부 하빈현(河濱縣) 묘골[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출신이다. 1586년[선조 19] 관직에 처음 나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박충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7월 6일 대구 도호부 지역 인사들이 팔공산부인사(符印寺)에서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의병장과 유사(有司)를 선발하였다. 이때 박충윤은 하빈현 북면(北面) 지역의 의병장을 맡았다. 이후 1596년 팔공산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1597년에는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화왕산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나중에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봉해졌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서사원(徐思遠) 등과 교유하며 학문 연구에 힘썼다. 관직은 통훈대부 제용감(濟用監) 주부(主簿)를 지냈다.
[묘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독지촌(禿旨村)에 묘소가 위치해 있다.
[상훈과 추모]
통정대부(通政大夫)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