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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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復命女子普通學校 |
이칭/별칭 | 복명학교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안로20길 8[범물동 129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인가 시기/일시 | 1926년 4월 - 대구 사립 복명여자보통학교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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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27년 - 복명여자보통학교에서 복명보통학교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41년 - 복명보통학교에서 복명국민학교로 개칭 |
현 소재지 | 대구복명초등학교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안로20길 8[범물동 1293] |
성격 | 사립학교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변천]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25년 12월에 명신여학교의 설립자를 김울산으로 변경한 뒤 1926년 4월 사립 여자보통학교로 지정을 받는 동시에 교명을 ‘사립 복명여자보통학교’로 변경하여 설립된 여성 교육기관이다. 복명사립보통학교는 1928년 5월 26일 대구복명공립보통학교로 인가되었다. 대구복명공립보통학교는 1941년 7월 30일에 일제의 국민학교제의 실시로 대구복명국민학교[현 대구복명초등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교육 활동]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26년 4월에 사립 명신여학교를 사립 복명여자보통학교로 개명 인가를 받아 설립되었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27년 4만 원의 예산으로 교사를 신축하였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27년 8월에 폐지될 대성학관의 학생 200여 명을 수용하여 남자부를 신설하면서 신축 교사에 남자부를 배치하였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남자부를 신설하면서 교명에서 여자를 빼고 사립복명보통학교로 변경하였고, 홍주일이 설립한 달성유치원을 인수하여 복명유치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함께 운영하였다. 하지만 남녀공학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명신여학교의 학부형이나 시민사회의 반대가 없지 않았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28년 3월에 신축 교사 낙성식을 거행하고,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였다. 복명여자보통학교의 재단법인 설립은 재단 이사에 야마자키[山崎] 대구부윤이 포함되면서 대구청년동맹과 같은 사회운동 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구청년동맹은 복명여자보통학교가 공립으로 전환하여 전통적인 사립학교로서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대구 각 단체 회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28년 5월에 대구부로부터 재단법인의 인가를 받고, 학급 수를 11학급으로 크게 늘려 학생을 받아들였다. 대구부의 조치에 따라 1930년에 종전 학급 11개에서 9개 학급으로 줄었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31년도 1930년과 마찬가지로 9학급에 학교 경비 예산을 8,050원으로 계상하면서, 수용 학생을 13개 교실에 900명으로 계획하였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33년 6월 20일 동교 출신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朴敬元)의 환영회를 열었다. 1934년 평의원회를 열어 김울산 여사의 동상 건립을 결정하고, 1936년 4월에는 건립식을 거행하였다. 복명여자보통학교는 1941년 일제가 국민학교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교명을 대구복명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현황]
복명여자보통학교는 2021년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 복명초등학교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