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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학관 맹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398
한자 大成學館盟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2년 6월연표보기 - 대성학관맹휴 발생
전개 시기/일시 1922년 6월 23일 - 대성학관 맹휴 대성학관 학생들이 달성공원에서 선전 활동 전개
종결 시기/일시 1926년 6월 26일연표보기 - 대성학관맹휴 종결
성격 학생운동

[정의]

1922년에 대구의 대성학관 학생들이 교사의 유임을 위하여 벌인 학생운동.

[역사적 배경]

1921년 12월에 강습소로 개관한 대성학관이 1922년 건물 신축과 함께 학관의 규칙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교사들과 의견 갈등 끝에 교사들이 사직하게 되자 대성학관 학생들이 교사들의 유임을 요구하였다.

[경과]

1922년 6월 대성학관 학생들의 교사 유임을 위한 활동이 뜻대로 되지 않자 학생들은 단체로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6월 23일에는 200여 명의 학생들이 달성공원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선전하는 연설을 진행하였으나 일제 관헌에 의하여 옥외 집회라며 해산당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맹휴를 벌였다. 학생들의 맹휴 소식을 들은 경상북도 도청의 학관과 대구경찰서 고등과장이 나서 학생 대표와 회담하고 맹휴 철회를 설득하였다.

[결과]

1922년 6월 교사 사직을 막기 위한 대성학관 학생들의 맹휴는 1922년 6월 26일 학생들이 대성학관 맹휴에 대하여 사과하고 다시 등교하면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대성학관의 3명의 교사들은 사직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의의와 평가]

1922년 6월 발생한 대성학관 맹휴는 학생들이 교수권 확보를 위하여 벌인 학생운동으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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