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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077
한자 都興
영어공식명칭 Do Heu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도성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80년 - 도흥 광주, 능성, 화순에서 왜구 격퇴
활동 시기/일시 1380년 - 도흥 사근내역 전투에서 패전
활동 시기/일시 1384년 - 도흥 양광도 상원수로서 왜구 58명을 베고, 말 60여 필 노획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92년 - 도흥 개국원종공신에 녹훈
활동 시기/일시 1392년 - 도흥 밀직부사로 재임 시 유배
활동 시기/일시 1393년 - 도흥 개성윤 역임
활동 시기/일시 1396년 - 도흥 상의문하부사, 참지문하부사 역임
출생지 읍내동 -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읍내동 -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개성 - 북한 개성특별시
사당|배향지 연화사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산60
성격 무관
성별 남성
본관 성주(星州)
대표 관직 상원수|문하부사

[정의]

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무관.

[가계]

도흥(都興)[?~?]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할아버지는 도원적(都元迪)이고, 아버지는 왜구에게 점령당한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2등 공신에 책록된 도천우(都千遇)이다. 성산군(星山君) 도유덕(都有德)의 고손자이며, 세종 때의 명장인 최윤덕(崔潤德)의 장인이다.

[활동 사항]

도흥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에서 태어났다. 1373년(공민왕 22)에 전라도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로 재임 중 침입한 왜구를 잘 방어하지 못한 죄로 파면되었으나 곧 다시 기용되었다. 1379년(우왕 5) 찬성사 양백연(楊伯淵)이 최영(崔瑩)을 죽이고 스스로 문하시중이 되고자 한다는 밀고가 있자 관련자들을 국문한 뒤 귀양을 보냈다가 귀양지에서 죽였다.

도흥은 1380년 원수(元帥)가 되어 광주(光州)·능성(綾城)·화순(和順)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방어하였으며, 8월에는 사근내역(沙斤乃驛)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구를 배극렴(裵克廉)·지용기(池勇奇)·정지(鄭地) 등과 함께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다. 1383년 양광도(楊廣道)에서 노략질하던 왜구를 격퇴하였고, 8월에는 계룡산에 주둔하고 있던 왜구를 공격하여 공주 반룡사(盤龍寺)에서 8명을 죽였다. 1388년(창왕 즉위년) 광주에서 왜구를 물리쳤으며, 양광도 상원수(上元帥)로 남원에서 58명을 죽이고 말 66필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1392년(공양왕 4) 밀직부사 재임 시 정몽주(鄭夢周)가 피살될 때 한편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도흥은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1393년(태조 1) 개성윤이 되었다. 1396년에는 상의문하부사와 참지문하부사를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도흥은 2015년 준공한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산60의 연화사(蓮花祠)에 배향되었다. 연화사는 사근산성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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